야구계의 마당발인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면 완전히 뜬소문일 가능성은 낮았다. SK 관계자에게 소문의 진위를 묻자 “시즌 중 감독 교체나 계약기간 종료 전 감독 해임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는 “구단 수뇌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파악한 바 없으나 감독의 계약기간을 지켜줘야 한다는 입장엔 변함없는 것으로 안다”며 “모그룹과 구단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밝혔다.
여기서 ‘실수’는 김성근 전 감독의 해임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 관계자는 “2011시즌 중반 김 전 감독의 해임 이후 모그룹과 구단 모두 거센 역풍에 직면했다”며 “만약 이 감독마저 계약기간 종료 전 팀을 떠난다면 ‘SK는 원래 감독 임기를 파리 목숨 정도로 아는 파렴치한 구단’이란 소릴 듣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구단 수뇌부는 “이 감독 교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소문이 계속 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역시 성적이다. SK는 2007년 이후 2012년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구단과 팬들의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불화설이다. 올 초부터 이 감독은 구단 수뇌부와의 불화설, 선수들과의 갈등설에 휩싸였다. 구단 안팎에선 “지난 2월 이 감독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신영철 사장이 물러난 이후 이 감독과 구단 수뇌부의 관계가 예전같지 않다”며 “몇몇 선수들이 이 감독의 팀 운영과 관련해 불만을 품고 있다”는 소리가 끊임없이 새어나왔다.
세 번째는 팬들이다. 전임 사령탑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을 잊지 못하는 SK 골수팬들의 이 감독에 대한 원망은 여전하다. 인터넷 야구 게시판이나 포털사이트 야구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이 감독을 예수를 배신한 유다에까지 비유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 감독으로선 억장이 무너질 소리였다.
감독실에서 만난 이 감독은 세간의 소문을 아는지 담담한 목소리로 “성적이 나쁘면 언제든 사표를 써야 하는 게 감독의 운명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사실 이 감독은 지난해까지 우승에 사활을 걸었다. 부상자가 즐비한 가운데서도 우승에 도전했던 건 그것이 전임감독의 유지를 계승하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시즌엔 내심 리빌딩을 구상했다. 원체 부상자가 누적되고, 6년 동안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유망주 육성과 과감한 젊은 선수 기용에 소홀했던 까닭이었다. 시즌 전 이 감독은 “SK가 항구적 강팀이 되려면 잠시 팀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올 시즌이야말로 리빌딩의 최적기일지 모른다”고 밝혔다.
예상이 맞았다. SK는 개막 3연패를 당하고서 5월 26일까지 5, 6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5월 30일부턴 아예 순위가 7위로 고정됐다. 8월 9일 기준 4위 넥센과 6.5경기 차라, SK가 4강으로 치고 올라가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감독은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팀을 재정비하고 싶지만, 팬들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경기를 보여주는 것도 프로의 의무”라며 “8월 중순까지 4강 진입에 도전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이 감독은 대화 말미에 “지난해까진 구장에 올 때마다 도살장으로 끌려오는 기분이었다. 혹시 나를 비난하는 현수막을 보게 될까봐 관중석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며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 ‘내가 왜 SK 감독을 맡아 이런 고난을 겪는가’하는 후회와 내 진심을 몰라주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곤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하지도, 누굴 원망하지도 않는다”며 “큰아들로부터 세상과 화해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SK 감독은 바보” 구직자 뽑아
큰아들은 아버지가 감독인 팀을 좋아한다는 말에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 지원자가 “SK 감독은 바보”라고 말하며 이 감독을 맹렬히 비난했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던 면접관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큰아들의 눈치를 살폈다.
잠자코 듣던 큰아들은 조용한 목소리로 “그가 바로 내 아버지”라고 밝혔다. 지원자는 깜짝 놀라며 고갤 숙인 채 면접장을 나갔다.
이 감독은 큰아들로부터 면접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답답했다. 한편으론 자신 때문에 억울한 이가 생겼을까 싶어 아들에게 “그 지원자가 면접에서 떨어졌느냐”고 물었다.
큰아들은 빙그레 웃으며 “내 아버지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지원자 가운데 영어실력이 가장 뛰어나고, 일을 잘할 것 같아 뽑았다”고 대답했다.
이 감독은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깨달았다. SK의 감독인 이상 팀의 현재와 미래만 생각하는 게 내 임무였다. 아들의 사연을 듣고난 이후, 더는 누굴 원망하지도 않고 외부의 비난에도 초연해졌다”며 “아들의 결정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고 밝혔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