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프로야구 10구단 KT는 ‘초대 사령탑으로 조범현 전 KIA 감독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KT는 “초대 감독 선임기준으로 파격보단 안정을 택했다”며 “한국시리즈 우승과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이끈 조 감독이 신생구단 사령탑을 맡기엔 최적의 인물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SK, KIA 감독시절 탁월한 육성능력도 초대 사령탑 선임의 중요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안정, 성과, 육성능력에 주목해 조 감독을 낙점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야구계는 “안정, 성과, 육성능력이라면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도 조 감독 못지 않다”며 “같은 기준이라면 김 감독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았겠느냐”고 고개를 갸웃한다.
KT는 왜 김성근(사진) 대신 조범현을 택했을까. 팬들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2011년 7월 23일 올스타전에서 만난 김성근 SK 감독과 조범현 KIA 감독.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KT 관계자는 야구계의 이런 반응에 대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라고 김 감독님의 탁월한 능력을 모를 리 있겠느냐”며 “마지막까지 ‘김 감독님이 초대 감독 적임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KT는 조 감독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조 감독은 되고, 김 감독은 안됐던 것일까. 야구계의 생각과 KT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구단과의 소통이다. KT 구단 수뇌부는 몇 차례 김 감독을 극찬한 바 있다. 비록 독립구단이지만, 엄연히 김 감독이 다른 팀 사령탑인데도 “감독님의 엄청난 예지력과 선수들을 보는 눈이 아주 정확하시더라. 왜 김 감독님을 야구의 신이라고 부르는지 확인했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KT는 김 감독이 구단과의 불협화음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던 전력에 주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KT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한 야구인은 “구단 비전과 체계를 확립해야 하는 신생구단으로선 프런트와 초대 감독의 긴밀한 관계가 절대적 요소”라며 “KT가 ‘좋은 감독님을 모시고도 혹여 김 감독과 마찰이나 불협화음이 생겨 신생구단 연착륙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하는 우려를 많이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KT가 수차례 초대 감독 선임 기준으로 ‘구단과 협조적이고 소통이 잘 되는 지도자’를 거론한 것도 ‘김 감독은 후보가 아니다’라는 자체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공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는 기존 구단들과의 관계다. KT는 신생구단 특성상 기존 구단들로부터 선수 수급을 받거나 트레이드를 통해 부족한 포지션을 채워야 한다. 기존 구단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따지고 보면 KT가 외국인 감독을 후보군으로 올려놨다가 곧바로 폐기한 것도 신생구단 감독과 기존 구단 감독의 유기적 관계와 친분이 두터워야 선수 수급에 이상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체 바른 소릴 잘하는 김 감독은 기존 구단 수뇌부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된 지 오래였다. 실제로 다른 구단 사장, 단장들은 사석에서 KT 수뇌부를 만나면 “김 감독만은…”하며 부정적인 조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 번째는 신생구단의 이미지였다. KT는 부영과 10구단 경쟁을 벌일 때부터 ‘젊은 구단’을 강조했다. 10구단 창단 주체로 선정되자 ‘젊음’과 ‘파격’을 화두로 내세웠다. 야구계는 그런 의미에서 KT가 71세의 김 감독 선택을 두고 장고를 거듭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일요신문DB
김성근 감독은 지난 6월부터 지인을 통해 KT에 “신생구단과 관련해 진심 어린 조언을 들려주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항간엔 김 감독이 KT행을 원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김 감독의 최측근은 “감독님은 답답한 10구단 창단 과정을 보며 야구 원로로서 조언을 들려주고 싶었을 뿐”이라며 “9구단 NC가 창단했을 때도 감독님이 NC 사장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덧붙여 “김 감독은 처음부터 KT행은 관심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감독은 KT 초대 사령탑으로 모 코치를 추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KT 주영범 단장은 “(김)감독님께서 모 야구인을 추천하신 건 사실”이라며 “감독님 자신은 원더스에서 후진양성에만 몰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고 귀띔했다.
김 감독은 1군 복귀에 큰 욕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 감독과 친한 야구인들은 입을 모아 “감독님을 뵐 때마다 ‘원더스에서 감독직을 마감하고 싶다’ ‘허민 원더스 구단주와의 의리를 끝까지 지키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며 “LG, SK 감독님이실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한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