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핵심 중진 의원은 이번 ‘청와대 2기’로의 교체를 두고 익명을 조건으로 이같이 말했다. 순도 100%의 솔직한 평가. 그는 “대통령이 어떤 마음에서 인사를 단행했는지는 알겠는데…. 시대착오적이다. 특히 정무수석은 여야 정치권, 노동조합이나 관련 단체, 재벌 등 다양한 사회와의 교감을 필요로 한다. 평생을 외교관으로 지낸 사람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나. 결국 박근혜 ‘말 메신저’ 역할만 하다 그만두겠지”라고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일 청와대에서 김기춘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일부 친박 의원들은 이름은 밝히지 말아 달라며 “결국 정무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정현 홍보수석이 할 것이고, 나머지는 바지사장 내지는 허수아비 정도 수행 안 하겠나”라며 입을 모았다. 이처럼 이번 2기 청와대를 두고 집권 여당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뜨악하다’는 말로 요약된다.
한 당직자는 “(박 정무수석은) 정치권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명함을 주고받아야 하는 사이가 되는데 무슨 내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황당하다는 표현밖에는 달리 형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이번 인사를 보며 ‘나는 뭐지?’ 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소외된 것 같다”고 했다. 평가를 말해달라는 말에 섭섭함부터 내비친 것이다.
신임 박 정무수석에 대한 이야기보다 많이 등장한 것이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경질이 맞느냐’는 말부터 ‘왜 경질됐나’를 둔 해석까지, 휴가철 여의도는 다소 소란스러웠다. 정치권 돌아가는 소식에 밝은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허 전 실장을 두고 경질이냐 아니냐 말들이 많은데 다수는 분노에 찬 경질이라고 말한다.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보면 그동안 감싸 안아주는 느낌을 줬다. 실수는 모른 척했고, 잘못은 묵묵부답으로 대응했다. (윤창중 전 대변인 등) 절대 안 된다는 여론도 무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칼을 한꺼번에 휘둘렀다. 쌓이고 쌓였던 것이 일주일간의 대통령 휴가 때 폭발한 것으로 본다.”
허 전 실장 경질에는 여러 이유가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허 전 실장이 자신의 무기력한 정무감각 탓에 화를 입었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한 여권 관계자의 말이다.
“출범 초에 성대 라인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요직에 앉았다. 정홍원 총리, 황교안 법무부 장관, 곽상도 민정수석 등등. 보이는 게 그 정도니 그 밑에는 오죽했겠나. 그런데도 검찰 장악도, 통제도 못 하니까 성대 출신인 허 전 실장의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됐다고 한다. 인품이야 좋지만 1년을 못 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는데 시기가 당겨졌을 뿐이다. 사실 정권 초기에는 과격분자가 칼을 빼 기존의 틀을 도려내야 하는데 관리형인 허 전 실장이 들어왔으니 예견된 결과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았을까. 이제 정치권의 궁금증이 여기에 모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휴가 중일 때 민주당은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경제민주화, 창조경제, 국민대통합이라는 박 대통령의 ‘3대 과제’는 공회전하고 있다. 결국 페이퍼를 들고 박 대통령의 휴가처였던 저도로 가 저도 구상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게 누군가 하는 점이다.
이런 물음에 대부분이 ‘김기춘’을 이야기했다. 정치권 정보에 밝은 한 여권 인사는 “개각 효과를 얻으려면 사실 국무총리 경질이 가장 임팩트가 있다. 사실 집행부의 잘못이지 참모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며 “하지만 또 청문회를 해야 하고…. 청문회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박 대통령으로선 정기국회,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특단의 결정을 내리기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경질설이 나올 때 박 대통령이 “열심히 하고 있다”고 방패막이로 나선 것에 대해 “사실은 잘못하고 있다는 말을 차마 못 한 것 아닌가. 청문회가 무서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등장으로 ‘모든 길은 김기춘을 통할 것’이란 말이 나온다. 온화한 리더십의 ‘수비수(허태열)’가 통하지 않자 공안 출신이자 법무부 장관 출신인 ‘스트라이커(김기춘)’를 기용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 비서실장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편향돼 “2기도 실패할 것”이란 성급한 관측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저런 인물을 쓰는 구나’ 하는 반감 여론이 비등해질 것이란 말도 나온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의 원로자문그룹으로 회자하는 ‘7인회’에 이목이 쏠린다. 7인회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박근혜 당시 후보를 도운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기파랑 대표, 김용갑 전 의원,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현경대 전 의원, 강창희 국회의장을 지칭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에도 이들은 박 대통령을 직간접적으로 도우면서 멘토그룹으로 불려왔다.
한 정치평론가는 “허태열 전 실장을 기준으로 그보다 어린 영보이에게는 박 대통령은 진 빚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들이 박 대통령 치마폭에서 운신해왔다”며 “하지만 그 이전 세대, 즉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올드보이는 박 대통령이 국정 파트너 내지 정책·정치 컨설턴트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말로만 듣던 7인회 중 한 명이 직접 청와대로 들어온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했다.
한편 김기춘 비서실장은 경남 거제가 고향으로 부산 경남고를 나왔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선 후보와 동향이고 동문이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에게는 ‘부산 선배’가 된다. 야권의 두 거물이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란 말이 회자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김기춘 카드를 쓴 또 하나의 이유라는 것인데, 앞으로 문·안 두 사람의 행보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