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향후 일정들을 감안할 때 8월 마지막주가 박근혜 정부의 초반 성적표를 좌우할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청와대
이 같은 청와대의 대응에 대해 여권 내에서도 “정기국회가 목전인데…”라며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야당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위기상 드러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계속 이 상태로 가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여당 입장에서 지난해 대통령선거를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졌던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빗댄 야당의 처사가 지나치기는 하지만 지금은 청와대까지 나서서 야당과 싸울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여권 내에서 이런 위기감이 표출되는 데에는 다가올 일정들을 감안할 때 8월 마지막주가 박 대통령과 박근혜 정부의 초반 성적표를 좌우할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박 대통령이 이 기간 동안 공공기관장 인사, 야당과의 관계 개선 등 ‘밀린 숙제’들을 해내지 못할 경우 국정운영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가올 일정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런 주장이 근거 없는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8월 마지막주가 지나면 9월 1일부터 12월 9일까지 100일간 정기국회가 열린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둘러싼 여야 대치로 정기국회 의사일정이 정상적으로 합의될지도 의문이지만, 정기국회가 정상적으로 개회된다 해도 박 대통령이 여유를 갖기는 힘들다. 박 대통령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 베트남 국빈방문 등을 위해 9월 4일부터 11일까지 자리를 비운다.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면 곧바로 추석 연휴가 뒤따른다. 올해에는 연휴 기간이 18∼22일, 무려 5일이나 된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당·정·청과 야당 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국정감사가 20일 동안 진행된다. 국정감사가 끝나는 10월 초순에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ASEAN(동아시아국가연합)+3’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박 대통령이 또 한 번 해외 순방에 나서게 된다. 박 대통령은 11월 초에도 영국 국빈방문 등을 위해 자리를 비우게 돼 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정들 때문에 박 대통령이 여유를 갖고 야당을 설득하거나 밀린 인사를 마무리 짓는 게 만만찮은 셈이다. 상황은 이처럼 다급하지만 박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보면 정기국회 전 밀린 숙제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최근 들어 박 대통령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드러내는 게 눈에 띄고 있다.
정기국회 전 박 대통령과 민주당 김한길 대표 간 회동이 성사될지, 성사되더라도 관계 개선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론이 일고 있다. 사진은 김한길 대표의 장외투쟁 모습. 최준필 기자
또한 “외국인투자촉진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어 2조 원 이상의 해외 투자가 안 되고 있다”며 “만약 (해외 투자가) 다른 나라로 옮겨간다면 우리 국민과 기업들에게 얼마나 큰 손해이겠느냐”고 밝혔다. 한마디로 국회가 정쟁에 빠져 있는 바람에 지하경제 양성화도, 외국인 투자 유치도 안 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박 대통령은 더 나아가 정치권에 대한 주문을 이렇게 쏟아냈다.
“앞으로 정치가 국민의 입장에서 거듭나 국민의 삶을 챙기는 상생의 정치로 가기 바란다.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정치인은 무엇보다 국민의 삶을 챙기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할 것이다. 그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디 국민들을 위하고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안들이 빨리 통과될 수 있도록 다 같이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준엄하고 점잖게 꾸짖는 듯한 이 같은 발언은 야당은 물론 정치권 전체를 자극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을 뒤집어 보면 현재의 정치인들은 ‘국민의 삶을 챙기지 않고, 국민을 위하지 않으며, 경제활성화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 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최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정상적 관행의 정상화’라는 화두를 입에 올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정치권은 정상화돼야 할 비정상적 상황인 것이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과 민주당 김한길 대표 간의 회동이 성사될지, 성사되더라도 관계 개선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론이 일고 있다. 한 친박계 인사는 “박 대통령은 본인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면 여야 구분 없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며 “지금 대통령에게 야당은 전혀 합리적으로 비치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야권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불만에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원칙만 고수하는 그의 태도는 결국 박 대통령 자신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후반기 국정운영의 초점을 경제살리기에 맞췄지만 야당의 협조 없이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들이나 각 부처 장관들에게 ‘이제는 성과를 내야 할 때’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성과를 내기 위해선 대통령 스스로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깨달아야 한다”고 꼬집으며 “야당과의 충돌이 정기국회 개회 이후에도 지속될 경우 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것은 물론 박근혜 정부의 내년 살림살이를 좌우할 예산안 처리도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칫 박 대통령의 취임 후 1년이 아무 성과도 못 낸 채 흘러갈 수도 있는 위기상황”이라고 경고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