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행복, 타임머신 그리고 불멸.’
흔히 말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 가운데 ‘불멸’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사고 싶어 하는 것일 것이다. 그만큼 ‘늙고 병든다는 것’은 돈이 많건 적건, 권력이 있건 없건 간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중국의 진시황은 영생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던 묘약을 마시다가 결국 수은중독으로 사망했으며, 1492년 교황 이노센트 8세는 임종이 다가오자 10세 소년 세 명에게 금화 한 닢씩을 주고 수혈을 받았지만 결국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또한 16~17세기 유럽의 연금술사들은 탐욕스런 귀족들에게 영생의 효험이 있다는 가짜 약을 팔아서 돈벌이를 하기도 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수천 명에 달하는 부자 노인들이 영원한 삶을 찾아 해괴한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침팬지의 고환을 자신의 음낭에 붙이는 행동이었다.
불로장생에 대한 이런 염원에 부응하기 위해 지난 수십 년간 과학자들은 노화의 기본 메커니즘과 관련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공짜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노화의 비밀을 풀기 위해선 ‘사업가적 관점’ 즉, ‘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시 말해 기업들의 후원이 있어야 연구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미국의 리서치 기관인 ‘글로벌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는 노화 방지 관련 산업이 매년 800억 달러(약 89조 원)의 어마어마한 비용을 발생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는데도 사실 인간의 수명을 효과적으로 연장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다시 말해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한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수수께끼가 풀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1971년 노화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당시 “적절한 투자만 이뤄진다면 5년 안에 노화의 비밀을 풀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또한 1976년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인간의 수명은 800세까지 연장될 수 있다”고 호기롭게 보도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노화의 비밀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소개하는 다섯 명의 억만장자들은 여전히 불멸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설령 자신들은 영원히 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인류가 영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꾸준히 통큰 지원을 하고 있다.
# 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인 래리 엘리슨은 순자산 430억 달러(약 48조 원)를 보유한 세계 5위 갑부다. 막대한 부를 지닌 억만장자이건만 그 역시 ‘죽음’ 앞에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런 뜻에서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죽는다는 건 정말이지 이해불가한 일이다. 어떻게 사람이 여기 이렇게 멀쩡히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어서였을까. 엘리슨은 영원 불멸의 삶을 연구하는 ‘엘리슨 의학 재단’을 설립했으며, 인간 수명의 전개 과정과 노화를 야기하는 질병과 장애 요인들을 연구하는 데 매년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재단에 쏟아붓는 돈은 연 4000만 달러(약 446억 원)에 달한다.
죽음과 맞서 싸우고자 하는 엘리슨의 이런 의지에 대해 엘리슨의 자서전을 저술한 마크 윌슨은 “엘리슨은 죽음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라이벌 기업의 한 형태로 여긴다”라고 말했다.
# 폴 F. 글렌
하지만 글렌의 목표는 노화 지연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노화를 되돌리는 것’ 즉 나이를 되돌리는 데 있다. 마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주인공인 벤자민 버튼처럼 아예 회춘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와 관련, 글렌은 아이비리그 대학 외에도 ‘므두셀라 재단’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2000년 설립된 이 재단은 마치 고장 난 자동차를 고치듯이 노화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오브리 드 그레이가 설립했다. ‘므두셀라 재단’은 지난 2009년 회춘 연구를 전문적으로 하는 비영리 단체인 SENS로 확대 개편됐으며, 드 그레이는 “머지않아 인간은 1000세까지 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 드미트리 이츠코프
러시아의 부호 드미트리 이츠코프(작은 사진)가 주최한 ‘세계미래 2045 대회’가 지난 6월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렸다. 이 학술행사에서 이시구로 히로시 박사가 선보인 가상신체 모델. AP/연합뉴스
이와 관련해서 이츠코프는 인류가 ‘네오 휴먼’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선 생물학적 육체를 버리고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인공적인 육체로 한 단계 뛰어 올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다시 말해 ‘아바타’를 활용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이다. 사이버 공간에 정신(혹은 영혼)을 저장시켜 놓은 후 육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정신을 아바타에 다운로드 받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이보그 개발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츠코프는 “2045년까지 인류는 영원불멸의 삶을 얻게 될 것으로 100% 확신한다”고 말하고 있다.
# 피터 티엘
가령 고등교육에 반대하고 있는 그는 ‘20언더20’ 장학금을 통해 대학을 가지 않기로 결심한 청년들을 후원하고 있다. 또한 바다 위에 집을 짓는 단체에도 일정 금액을 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가운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활동은 불멸을 연구하는 기업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는 것이다. 오브리 드 그레이의 SENS 재단을 후원하고 있는 것이 한 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이런 노력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보답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가 한때 막대한 금액을 투자했던 실리콘밸리의 나노기술 신규 기업인 ‘헬시온 멀리큐어’는 지난해 여름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고 말았다. 당시 창업자인 윌리엄 안드렉이 “나는 수백만, 수십억, 수천 년 동안 살 것이다”라고 야심차게 외쳤던 것에 비하면 기업의 수명은 너무 보잘 것 없었다.
# 세르게이 브린
또한 구글은 브린의 지휘 아래 수십 만 달러를 싱귤레러티 대학에 투자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이 대학은 노화와 죽음을 포함한 ‘인류의 위대한 도전’과 관련된 기술에 관한 세미나를 일주일 동안 진행한 바 있다.
이밖에 구글이 얼마 전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이자 급진적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을 엔지니어링 이사로 고용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커즈와일은 수십 년 후면 인류가 컴퓨터와 통합되는 ‘특이점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다시 말해 2030년 전후로 인간과 기술의 경계가 무너지게 되며, 인간이 융합기술로 개조되어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인간의 생물학적인 몸은 도태되고 첨단기술에 의해 인간 이후의 존재가 출현하게 된다. 한마디로 마침내 인간이 불멸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불로장생의 꿈 때문일까. 브린이 결혼식을 올린 장소 역시 어쩐지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는 바하마 군도에 위치한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 소유의 개인 섬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카퍼필드의 주장에 따르면 이 섬에는 ‘젊음의 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퍼필드는 “젊음을 돌려주는 기적의 샘물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샘에 마른 나뭇잎을 띄웠더니 잎이 되살아났으며, 다 죽어가는 벌레를 샘에 띄웠더니 다시 살아났다”고 말했다. 아무튼 억만장자들의 이런 막대한 투자가 과연 인류의 영원한 소망이자 염원인 영생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되는 데 일조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싶다. 또한 과연 영원히 산다는 것이 마냥 행복한 일인지도 한 번쯤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