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조훈현 9단, 최정 3단.
9번 타자 안관욱 8단이 최정을 잡아 간신히 시니어팀을 구했으나, 최정 다음으로 등장한 김나현 초단(22)이 ‘대전 신사’ 안 8단과 ‘조선 선비’ 김수장 9단을 제압하며 시니어팀을 다시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붙여 남은 사람은 조훈현 9단과 유창혁 9단 둘뿐이었는데, 조 9단이 등판을 자원했다. 뭔가 승부욕이 발동하면서 느낌이 꽂혔던 것일까. 무대에 올라간 조 9단은 최정과 똑같은 8연승으로 단숨에 빚을 갚았다. 아무튼 5회는 시니어팀의 승리였다.
5회 때 ‘8연승 무승부’로 간접 격돌한 조 9단과 최 3단이 작년 6회 때는 12번 주자와 11번 주자로 직접 만났다. 남자팀은 조 9단이 마지막 주자였고, 여자팀은 최정 뒤에 박지은이 있었다. 바둑은 혼전의 연속이다가 끝내기에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최정에게 기울었고, 종당에는 조 9단의 착각이 겹치며 허망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아저씨 팀은 올해도 전황이 좋지는 않았다. 여자팀 2번 주자 조혜연 9단의 5연승(정대상 9단, 김동엽, 서능욱, 최규병 9단, 김종수)을 7번 주자 서봉수 9단이 5연승(조혜연, 김신영 초단, 김나현, 김혜민 7단, 윤지희 3단)으로 되갚아 위기를 넘기기는 했지만, 7번 주자 최정이 다시 4연승을 올린 상황이었다(서봉수, 양상국 9단, 박영찬 4단, 김일환 9단).
대국 시작 1시간여 전부터 취재진으로 붐비던 스튜디오 옆 출연자 대기실에 조 9단과 최 3단이 들어와 돌을 가리니 작년처럼 올해도 조 9단이 흑. 조 9단의 우세를 점치던 작년과 달리 이날은 다들 “모르겠다”면서 말을 아낀다.
우하귀 백6~흑11 다음 백12로 협공하고 흑13에는 백14, 흑15에는 백16으로 봉쇄하며 모양을 키우는 것, 흑17에 대해 <2도> 백1~5로 처리하고 흑6을 백7로 협공하며 판을 넓히는 작전, 흑8, 10 때 백11, 13로 엄습한 것 등이 모두 “신선한 구상”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그런가 하면….
<3도> 흑1, 3으로 대응하고 5로 달린 것은 조 9단 스타일. 흑3으로 4에 받으면 백은 3에 지킬 것이니 그런 식은 허락할 수 없다. 흑5로 6에 막는 것은 더구나 논외. 흑7부터 뜀뛰기 경쟁. 흑은 양분되었지만, 걱정할 일은 없고, 오히려 백에게 A로 이어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백A는 공배를 이어가는 수. 양분된 것보다 그게 더 아픈 것. 백도 절대 A에 두지는 않는단다.
흑9의 한 칸에 백은 10의 두 칸으로 응수하고 흑11에는 백12로 방향을 돌린다. 흑13으로 가르면서 물살이 급해지고, 곧바로 난해한 전투가 시작되었고, 전투는 격렬해지고, 끝없이 이어졌는데, 전설의 바둑황제 조 9단의 장풍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치는 최정의 모습이 관전객들을 흥분시키고 감동시켰던 것.
중반 어느 시점에서 조 9단이 포인트를 올려 형세가 여의치 않게 되자 최정은 사정없이 갖다붙이고 끊었다. 흔들기였다. 그 또한 조 9단의 능기 중 능기이거늘! 최정의 흔들기에, 흔들기의 원조 조 9단의 하변 흑돌이 통째로 떨어졌다. 그것으로 결판이 나지 않자 최정은 더 흔들었고 마침내 바둑판은 <4도>처럼 되었다.
흑1, 3으로 잡은 것은 잡고 싶어 잡은 것이 아니다. 다른 길이 없다. 흑들은? 이 거대한 흑말이 두 집이 없다. 바깥에서는 “흑 대마가 잡힌 것 같다. 흑이 돌을 거둘 것 같다”고 웅성거리고 있는데, 조 9단은 <5도> 흑1, 3으로 끊고 5, 7로 몸을 날렸다. 백8이 있는데? 이후의 진행이 <6도>다. 흑3으로 잡아젖히는 수가 있었다. 백12로 잡을 때 흑13 몰고 15로 잇자 윤곽이 드러났다.
<7도> 백1로 위쪽의 흑돌은 잡혔다. 그러나 흑8, 10으로 대마가 살았고, 좌상쪽에서는 14의 부수입을 올렸다. 백은 위쪽 흑돌을 전부 놓고 따내야 한다. 그리고 흑 선수. 사람들이 일제히, 같이 관전하던 김성래 4단에게 고개를 돌렸다. “흑이 반면 9~10집 남는 형세입니다. 조 국수님, 역시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결과는 반집. <8도>를 보자. 좌상귀 백 자리, 여기는, 여기를 젖히는 것은 흑의 권리였다. 백가 놓인 실전은 나중에 백이 A에 놓고 따내도 이곳에 2집이 남는다. 그러나 흑이 에 젖혔으면 이곳은 집이 없다. 흑은 언제든 권리라고 믿고 있다가 초읽기에 쫓기다 깜빡 역끝내기를 당해 2집을 손해 본 것. 큰~일 날 뻔했네! 흑1 때 백2는 해프닝. 4로 메워야 한다. 흑3으로 A에 두었으면 백이 잡혔다. 그러나 흑3으로 받고 백4로 메워 흑은 또 한 집 손해.
국후 누군가 조 9단에게 “반집을 확신하고 그냥 넘어간 것이냐”고 묻자 조 9단의 대답은 “정신이 없어 손 따라 두었다”는 것. 사실은 다른 할 말이 좀 있는데, 지면이 없다.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