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오승환이 구단의 양해 없이 자유롭게 국내외 팀으로 이적하려면 내년 시즌까지 KBO리그에서 뛰어야 한다. 그렇다면 올 시즌이 끝나서도 오승환의 국외리그 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프로팀들이 서로 오승환을 영입하겠다고 팔을 걷어 올린 것이다. 대표적인 구단이 한신 타이거스와 오릭스 버펄로스다.
이 가운데 한신은 오승환 영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한신은 수시로 스카우트들을 한국에 파견해 오승환을 직접 관찰하도록 지시했고, 여러 루트를 통해 오승환과 관련한 상당량의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입이 무겁기로 소문난 한신 스카우트들이 대놓고 “오승환 영입을 위해 왔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그런 와중에 9월 17일 일본의 <산케이스포츠>는 ‘한신 미나미 노부오 사장과 나카무라 가쓰히로 단장이 오사카 그룹 본사에서 사카이 신야 구단주와 만나 오승환 영입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신이 2011년 오릭스가 이대호와 계약한 2년 총액 7억 엔(계약금 2억 엔, 연봉 2억 5000만 엔) 정도를 오승환에게 제시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한신이 제시한 연봉 2억 5000만 엔은 2007년 에스테반 얀이 받은 팀 내 외국인 투수 최고액 연봉인 2억 4000만 엔을 넘어서는 초고액’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오승환이 우리 팀에 큰 활약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나카무라 단장의 코멘트를 실으며 이미 오승환이 한신 선수인 것처럼 묘사했다.
일본 구단이 한국 선수 영입을 거론하며 예상 계약액까지 언론에 흘린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야구 칼럼니스트 하세가와 쇼이치는 “그만큼 한신이 오승환 영입에 목을 매고 있다는 뜻”이라며 “7억 엔 제시는 다른 팀을 상대로 ‘오승환 주변에 얼씬거리지 마라’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풀이했다.
9월 24일 시즌 28세이브를 올린 오승환이 류중일 감독의 격려를 받고 있다.
어쨌거나 최고의 부자 구단 요미우리는 수준급 마무리를 보유하고 있어 오승환에 별 관심이 없다. 소프트뱅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엄밀히 따지면 한신과 주니치 정도가 오승환 영입에 거액을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선 “오승환의 한신 입단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두 가지 이유가 배경이다. 먼저 과연 오승환이 7억 엔에 순순히 한신 유니폼을 입겠느냐는 견해다. 일본야구에 정통한 야구 관계자는 “오승환의 주변을 통해 들은 정보”라며 “오승환은 10억 엔 이상의 몸값을 바라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만약 오승환의 몸값이 10억 엔 이상이라면 한신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이 관계자는 “한신이 7억 엔 몸값을 제시한 건 다른 구단의 접촉을 막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오승환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금액은 여기까지’라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며 “한신이 스타 선수들의 은퇴로 자금 여유가 있다손 쳐도 일본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국 선수에게 10억 엔 이상을 지급하는 무리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두 번째는 삼성와 요미우리의 관계다. 두 구단은 자매구단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부터 요미우리는 삼성에 많은 도움을 줬다. 인적 교류도 활발해 요미우리 출신 코치가 삼성에서 활약하고, 삼성의 많은 선수가 은퇴 후 요미우리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이를 잘 아는 일본야구 관계자들은 “삼성이 다른 팀도 아니고 요미우리의 영원한 라이벌인 한신에 오승환을 넘겨주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며 “LG 선수 대부분이 자매구단 주니치에 입단했듯 삼성도 오승환이 일본 진출 시 한신을 제외한 다른 팀에 가길 바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오승환과 ‘밀약’ 있었나
일본 구단들이 사전 접촉을 의심할 수준의 오승환 영입 경쟁을 펼치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일본야구기구(NPB)에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삼성 역시 항의와 유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야구계엔 “삼성의 반응이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다”는 평이 많다.
한 야구해설가는 “일본 구단들이 팀의 주력 마무리 투수를 2년째 뒤흔들고 있는데, 9월 중순이 돼서야 삼성이 항의 의사를 밝힌 건 전형적인 뒷북 치기”라며 “그것도 적극적인 항의와는 거리가 먼 KBO에 입장을 전달하는 수준의 미온적 반응이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삼성은 “내년 시즌 종료 때까지 오승환의 국외 진출은 없다”는 식의 입장을 공식 표명하지 않고 있다. 야구계엔 그 이유로 ‘삼성과 오승환이 모종의 약속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모 구단 고위층은 “삼성이 오승환에게 ‘올 시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 국외 진출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그 때문에 삼성이 오승환 거취와 관련해 확실한 답안을 내놓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 측은 “올 시즌 오승환으로부터 국외 진출 의사를 전달받은 바 없고, 구단은 오승환과 어떤 약속도 한 적이 없다”며 “오승환에게 계속 우리 팀 유니폼을 입히겠다는 게 구단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