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의 내용물은 예전에 쓰던 살림살이와 미술품, 병풍 등과 각종 기념품들. 김 대통령 부부의 30여 년 손때가 묻은 이 짐들은 95년 일산으로 이사했을 때 함께 옮겨졌다가 7년여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동교동 집은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말끔히 새 단장을 마친 상태. 이 낡은 이삿짐들은 결국 지하의 창고 두 곳에 나뉘어 ‘보관’됐다. 지난 6일 오전, 동교동 김 대통령 새 집 앞에는 이삿짐 센터에서 온 1톤 트럭 두 대가 서 있었다.
▲ 김대중 대통령의 동교동 새 사저가 완공된 지난 6일 30여 년 손때 묻은 첫 이삿짐이 도착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김 대통령이 야당 시절에 찍은 사진 액자와 각종 선거 포스터 액자, 그리고 ‘축 당선’이라고 쓰여진 리본이 묶인 화분 등도 새 단장을 마친 동교동 자택으로 날라져 새 대통령을 뽑는 이번 대선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이날 이삿짐들은 대부분 지난 95년 동교동을 떠나 일산 자택으로 옮겨진 지 7년 만에 다시 옛 집으로 돌아온 것들. 그간 이 짐들을 둘러싸고 곡절도 적지 않았다. 30여 년 동안 손때가 묻었던 동교동집의 살림살이가 일산 자택으로 옮겨진 것은 지난 95년 12월15일.
김 대통령이 경기도 일산의 정발산 기슭으로 이사를 하면서다. 이 짐들은 김 대통령 내외가 청와대에 입성한 뒤에도 일산 집에 남겨졌다가 99년 5월 마당 한켠의 컨테이너 박스에 옮겨지게 된다. 이 무렵 재미 무기중개사업자 조풍언씨가 김 대통령의 일산 집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듬해 여름, 컨테이너 박스에 문제가 생겼다. ‘폭우’와 함께 박스 안에 습기가 차면서 미술품 등에 손상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저를 담당하는 청와대 비서관에게는 ‘초비상 사태’가 발생한 셈.
윤철구 사저담당 비서관은 2000년 8월 컨테이너 박스의 짐을 급히 동교동 LG팰리스 건물 12층 창고로 옮겼다. 관리실 명목의 이 방은 넓이 6~7평 남짓의 작은 방. 외부에 드러내기 곤란한 ‘대통령 댁’ 살림살이를 이 건물로 옮긴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 건물 8층에 토목건축회사 ‘효신공영’이 입주해있었기 때문. 효신공영의 박종석 회장은 ‘동교동 집사’로 알려진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와 호형호제를 하는 사이다. 박 회장의 형 홍윤씨는 이수동 전 이사, 김 대통령의 동생 대현씨와 목포 동광고등학교(현 목포 홍일고)를 함께 다닌 동기동창생.
이들 관계를 잘 아는 한 인사는 “7년 전 교통사고로 작고한 홍윤씨는 70년대 이수동씨, 권노갑 전 고문 등과 함께 DJ에게 ‘충성 경쟁’을 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효신공영은 일산 살림살이를 LG팰리스 건물로 옮기기 두 달 전인 2000년 6월, 같은 건물에 지점 사무실을 냈다.
▲ 두 달 남짓 후면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7년 만 에 동교동 공기를 맡게 된다. | ||
윤철구 비서관은 최근 동교동 새 집으로 짐을 옮긴 데 대해 “(LG팰리스 건물의) 창고를 2년 동안 빌리기로 계약했는데 계약 기간이 4개월이나 지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3일 동교동 집 앞에서 만난 윤 비서관은 “이삿짐이라고 보기에도 좀 그렇고… 아무튼 언론 보도는 당분간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택 신축과 관련한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13일은 한 30대 남자가 김 대통령의 하의도 생가에 불을 지른 날이기도 했다. 동교동 집 공사 관계자들은 동교동 집이 ‘여느 부잣집의 건축비보다도 싼 값에 지어졌다’고 말한다.
안방을 비롯한 각 방에는 도배비용을 줄이기 위해 페인트칠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페인트 칠이 자꾸 긁히고 흠집이 나는 바람에 얼마 전 도배를 다시 했다는 것. 윤 비서관은 “지금도 안방 천정에는 페인트칠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대문 앞에 한문으로 씌어진 대통령 내외의 문패는 김 대통령이 직접 썼다.예전에 써 두었던 글씨를 본떠서 재활용한 것. 이 같은 건축비 줄이기는 대통령의 뜻이라는 것이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윤 비서관에 따르면 김 대통령은 자택 신축과 관련해 ‘마당에는 잔디만 깔고 나무는 심지 마라’고 직접 언급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당에는 소나무 등이 심어져 있는 상태. 윤 비서관은 “모두 싼값의 흔한 나무들”이라고 말했다. 동교동 집의 공사비는 모두 8억3천여만원. 공사를 맡은 신안건설산업의 토건팀 관계자는 “건축비용은 평당 4백20만원을 쳐서 모두 8억3천만원 정도가 들었다”고 말했다.
어찌됐건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 집의 공사는 이제 모두 끝난 상태다. 동교동 집은 지난 11월18일 준공 검사를 마쳤다. 신안건설 관계자가 작성한 ‘공사 현황 일지’에는 11월 말부터 99.99%의 완공률을 보이고 있다. 이 일지에 따르면 ‘12월3일 부부 욕실 공사 마무리’, ‘12월5일 대문 우편함 고정’ 등의 소소한 마무리가 이뤄지다 ‘12월6일 100%’라는 완공률 수치가 적혀 있다.
신안건설의 박선필 현장소장은 “청소나 부분적으로 손볼 부분에 대해 지난 6일 모두 마무리했다”며 “보일러 나 엘리베이터 등에 대해서도 관리인에게 인수인계를 마친 상태”라고 말했다. 이제 대통령 내외가 이사올 일만 남은 셈이다. 윤 비서관은 “이사는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되고 나면 그쪽 일정에 맞춰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일산 집에서) 청와대로 갈 때는 사설 이삿짐 센터를 이용했지만 청와대에서 나올 때는 모시는 사람들 몇몇이서 짐을 옮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95년 당시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 동교동을 떠나 일산으로 이사할 무렵, 동교동계 정치사조직인 내외문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김 이사장의 일산 이사는 정치 및 통일 철학을 지역 엘리트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공기가 좋기 때문이다.” 이제 두 달 남짓 뒤면 ‘동교동 주민’으로 돌아올 김 대통령 내외. 대통령 내외는 이웃 사람들에게 어떤 환영인사를 받을까. 그리고 7년 만에 다시 맡게 될 동교동 공기는 어떻게 느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