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호흡을 맞춰온 김수현 작가(왼쪽)와 정을영 PD가 결별을 택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요신문 DB
갈등이 촉발된 건 바로 그 여주인공 캐스팅이 자주 번복되면서부터였다. 처음 여주인공을 맡으려던 배우는 한가인이다. 대본 연습까지 참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수현과 한가인의 만남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연습을 실전처럼 하기로 유명한 김수현 작가는 1차 대본연습을 끝낸 뒤 한가인 등 일부를 제외하고 주요 출연진의 참여를 보류했다. ‘연기력이 작품과 맞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방송을 한 달여 앞둔 9월 말까지도 <세결여>의 상황은 어두웠다. 그동안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갖고 드라마를 제작해온 김수현·정을영 콤비였지만 이번 작품에선 뜻밖의 문제들이 반복해 일어났다. 특히 드라마의 첫 단추인 캐스팅부터 삐걱대기 시작하자 김 작가와 정 PD의 의견도 조금씩 엇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여주인공 후보로 새로 등장한 여배우를 놓고, 서로의 평가마저 나뉘기 시작했다. “신뢰를 갖고 10년간 작업했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실력자들로서 물러서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는 게 주위의 설명이다.
김수현 작가와 정을영 PD가 함께 만든 JTBC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
이들이 더 주목받는 건 함께한 드라마 모두 성공했기 때문이다. 70대 노 작가와 노련한 60대 연출자는 관록을 앞세워 ‘30대 치매’나 ‘동성애’를 가족 드라마의 소재로 과감하게 차용해 거센 반향을 일으켰다. 물론 시청률도 높았다. 방송 직전까지 촬영해 가까스로 시간을 맞추는 ‘생방송 촬영’ 관행도 두 사람이 이끄는 현장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김수현·정을영 콤비의 촬영장은 ‘드라마 제작의 모법답안’으로 통했다.
제작이 연기되던 <세결여>의 상황이 반전을 맞은 건 정 PD의 건강악화였다. 최근 종합검진을 받은 정 PD의 몸에 이상이 발견되면서 당분간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자 김수현 작가가 ‘집필 연기’를 선언했다. 10년 동안 함께했던 정 PD가 연출을 맡기 어렵게 되자, 김 작가는 ‘정을영 PD가 아니면 못 하겠다’면서 방송 연기를 요청한 것. 오랜 파트너인 정 PD의 건강이 회복된 후에 <세결여>를 방송하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세결여>를 대체할 만한 드라마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 SBS는 김 작가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어려운 설득 과정을 거쳐 예정대로 방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정 PD 역시 방송사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왼쪽부터 한가인, 김사랑.
김수현·정을영 콤비의 이별을 두고 ‘완전한 결별은 아니다’면서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세결여> 제작에 참여하는 한 관계자는 “과거에도 정을영 PD가 잠시 연출을 쉬고 싶다는 뜻을 얘기한 적이 있다”며 “10년 동안 함께해온 작가와 연출자에게 결별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뜻이 맞으면 언제든 새로운 드라마를 함께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두 사람의 재결합 시기는 <세결여>의 성공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란 시선도 있다. 새로운 파트너와 만난 김 작가가 이번에도 자신만의 개성을 그대로 이어갈지 방송가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