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자동차 안에서 일산화가스에 질식사한 델마 토드의 죽음은 할리우드의 손꼽히는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다.
델마 토드가 주연급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발판은 롤랜드 웨스트라는 제작자였다. 토드보다 20세나 많았던 유부남이었던 그는 그녀와 내연의 관계를 맺었고, 자신이 연출한 <코세르(Corsair)>(1931)라는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끌어올린다. 이 영화 이후 그녀는 코미디 장르의 주요 배우로 성장했고, 할리우드 사교 파티의 주요 인물이 된다. 하지만 계속 뒤를 봐줄 것 같았던 웨스트는 영화 일에 관심을 잃었고, 토드에게 함께 레스토랑을 내자고 제안한다. 대로변에 크게 지어진 ‘델마 토드의 사이드워크 카페’. 1층엔 드럭스토어가, 2층은 바와 라운지가 있었다. 롤랜드 웨스트와 델마 토드, 각자의 아파트도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카페 위쪽 지역엔 롤랜드와 아내 쥬얼 카르멘이 사는 저택이 있었는데 토드는 그 집 차고 가운데 하나에 자신의 차를 보관했다. 카페에서 그 집으로 가려면 자그마치 27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했지만, 운전수를 두었기에 그녀가 직접 계단을 올라갈 일은 없었다.
시신으로 발견된 당시의 모습.
1935년 12월 14일 토요일. 토드는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당시 할리우드의 유일한 여성감독이던 아이다 루피노의 파티에 갔다. 그곳에서 전 남편인 디시코를 우연히 만나 잠깐 언쟁이 있긴 했지만, 그녀는 시종일관 즐거운 모습이었다. 일요일인 12월 15일 새벽 3시 30분, 운전수가 몰고 온 차에 토드는 몸을 실었다. 그리고 월요일인 12월 16일 아침. 그녀는 쥬얼 카르멘의 차고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 12월 18일에 검시가 있었고 의사는 아랫입술 쪽에 살짝 타박상의 흔적이 있을 뿐, 폭력에 의한 외상이나 내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토드는 일요일 새벽 자동차 안에서 시동을 건 채 히터를 틀고 잠이 들었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다. 배심원단은 사고사로 결론을 내리면서도 좀 더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고, 이후 연방법원의 대배심 조사가 4주 동안 이어졌지만 결과는 “살인은 아니며 사고사”이고, “토드에게 자살 의지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자살이었다면 그 동기는 무엇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대중과 저널은 가설을 만들어냈다. 첫 번째 가설.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간 토드는 웨스트와 싸운 뒤 취중에 다른 파티를 가겠다며 자동차 안에 들어갔지만 시동을 건 채 히터를 틀고 잠들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설. 차고로 가는 그녀를 따라간 웨스트가 차고 문을 닫아 버렸고, 차 안에 갇혀 있는 취중의 토드는 질식사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가설. 웨스트가 2층 문을 잠그고 들여보내지 않자 차에서 잠깐 몸을 녹인다는 것이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설들은 모두 효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발견 당시 시동은 꺼져 있는 상태였고, 차엔 8리터의 휘발유가 들어 있었다. 게다가 취한 그녀가 하이힐을 신고 집에서 차고까지 270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자 루치아노가 부하를 시켜 질식사시킨 후 차 안에 밀어 넣어 사고사를 가장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증언들도 터져 나왔다. 그녀가 일요일 오후에 누군가를 차에 태우고 LA 시내를 다니는 걸 본 사람은 여럿 있었다. 그런데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자 목격자들은 마치 어떤 외압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자신들의 진술을 하나같이 철회했다. 그렇게 진실은 밝혀지지 못했고, 고향인 매사추세츠의 한 묘지에 묻힌 델마 토드. 그녀의 내연남이었던 웨스트는 정부의 죽음 이후 이혼했고, 평생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살다가 1952년에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에 그는 측근에게 토드의 죽음엔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고백했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전하지 않았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