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도 파격적 일본이 2020년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공사비가 최대 3조 2000억 원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대두돼 논란이 되고 있다. 위 사진은 주경기장 조감도. AP/연합뉴스
그도 그럴 것이 설계를 맡은 자하 하디드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특히 관습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건축 아이디어로 더욱 유명한 인물이다. 국내에서도 그는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설계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아이디어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공모전에서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논란을 빚기도 했으며, 실제 건설되지 못한 사례들도 많다.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역시 예외는 아니다. 여기저기서 “이 디자인으로 건설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흘러나오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일본의 유명 건축가인 마키 후미히코(84)가 올해 8월 <일본건축가협회지>에 ‘새 국립경기장 계획은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0월 11일 도쿄 신주쿠에서 ‘신 국립경기장 재건축 계획 재고’를 촉구하는 심포지엄이 개최됐으며, 약 7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띤 발표가 이어졌다.
이들이 지적하는 문제점 중 하나는 신 국립경기장 건물 자체의 거대함이다. 우천에도 대비할 수 있는 경기장과 VIP용 라운지, 스포츠박물관, 주차장 등을 합한 총면적은 29만㎡로 기존 국립경기장의 약 5.6배, 런던올림픽 주경기장의 약 3배에 달한다. 또 관중석은 8만 석이 될 예정이다.
이는 현재 부지에 들어설 수 없는 규모다. 따라서 일본스포츠진흥센터(JSC)는 개혁 방안을 통해 “경기장 주변에 있는 메이지 공원 등을 헐어 부지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역사적 건축물이 산재해 있는 주변 경관을 망치면서까지 역대 최대 규모의 올림픽 주경기장을 왜 지어야 하는가?”라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기존의 국립경기장. AP/연합뉴스
재해뿐 아니라 대규모 행사가 치러질 때마다 거의 8만 명에 가까운 관객이 일제히 장외로 나오게 된다.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예로 들면, 주경기장의 총면적은 약 10만㎡로 도쿄의 3분의 1이었지만, 반대로 부지는 도쿄의 1.5배로 넉넉하게 확보되었다.
교토공예섬유대학의 마쓰쿠마 히로시(55) 교수는 경기장 디자인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하늘에서 본 경기장의 모습은 인상적이나 실제로 짓고 나면 매우 위압감 있는 건축물이 예상된다. 헬기라도 타지 않는 한 완벽한 경기장의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상공에서가 아닌 평소 인근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렇게 기발하고 거대한 경기장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당초 도쿄도가 책정한 예산은 약 1300억 엔(약 1조 4000억 원).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금액으로는 턱도 없다”고 주장한다.
한 전문가는 “일본의 건축 기술은 상당히 발전한 편이라 설계대로 경기장을 지을 수는 있겠지만, 그 역동적인 구조를 실현하려면 역시 돈이 문제다”면서 “그대로 만들려면 적어도 2000억 엔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마이니치신문> 역시 “독특한 디자인을 채택한 탓에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공사비가 최대 3000억 엔으로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일본 네티즌들은 “효과도 불확실한 올림픽에 돈 퍼붓지 말고, 저출산 대책에 힘써라” “기발한 디자인은 필요 없으니 편리성을 우선으로 하자” “국민의 혈세가 이렇게 사라져가는 게 안타깝다” 등의 의견을 쏟아냈다. 또 일부는 “3000억 엔이라니. 도쿄는 대체 뭘 만들려고 하는 건가. 경기장 안에 공항이라도 짓고 있는 거냐” “도쿄만 소비세를 20% 올려라” 등 조롱 섞인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건축가 마키 후미히코를 포함한 전문가 100명은 일본스포츠진흥센터와 도쿄도에 ‘신 국립경기장 계획 재검토를 요구하는 요망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마키 후미히코는 “어떤 이유가 있든 국민이 납득하는 경기장이 완성되어야 할 것”이라며 “불과 17일간의 축제 때문이 아닌 몇 십 년 뒤에도 남아있을 건축물로서 재고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두 번이나 쫓아내다니…”
“두 번이나 쫓겨나는 설움을 아시나요?” 2020년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부지 확대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의 사연이 일본 대중지 <주간겐다이>에 소개돼 눈길을 끈다. 철거가 결정된 곳은 가스미가오카 아파트. 공교롭게도 이 아파트는 1964년 도쿄올림픽 당시 정부가 경기장과 새 도로를 만든다며 주변건물을 철거해 퇴거주민들이 어렵사리 보금자리를 마련한 곳이다.
“올림픽이 결정된 것은 기쁜 일이지만, 이 나이에 또 쫓겨나야 한다니…. 벌써 50년 가까이 여기서 살았고, 노인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이사 가는 것이 정말 불안하다.” 도쿄올림픽 유치와 함께 두 번이나 강제 퇴거를 당하게 된 70대 노인에게서는 슬픔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가스미가오카 아파트 주민들은 70대 이상 노인이 3분의 1을 차지한다. 앞으로 이들은 신주쿠구와 시부야구 등에 있는 3곳의 아파트로 나눠 이사하게 된다.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