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박한솔, 김현아의 단체전 3위 수상 모습.
한국은 박애영 단장(한국 여성바둑연맹 회장), 김향희(한국 대학생바둑연맹 부회장) 간사의 인솔로 박한솔 김수영 김현아 선수가 참가해 단체전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중국이 우승, 대만이 준우승. 우리 세 선수는 내셔널리그 전국체전 등에서 활약하고 있고, 전국 각지의 대소 아마추어 대회에서 수시로 입상하고 있는, 이미 잘 알려진 ‘전국구 여자 주니어’들인데 현재 모두 명지대 바둑학과에 다니고 있다.
여자 선수들로만 팀을 꾸린 데에는 몇 가지 이유와 명분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우리도 우승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것. 물론 박한솔 김수영 김현아 선수 팀도 우승 가능성이 충분한 전력이지만, 우승보다는 교류에 비중을 두자는 것이었다. 세계대회는, 예전에는 한·중·일, 요즘은 한·중의 독무대. 그밖의 나라들은 사실상 전부 들러리 아닌가. 요즘은 유럽 쪽은 그나마 조금씩 한·중·일에 접근하고 있으나 동남아는 ‘아직’이다. 거기서 한국과 중국이 변함없이 우승컵을 번갈아 차지하는 것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
대회장 전경.
이번 대회의 성적은 중국이 우승, 대만이 준우승이고, 그 뒤로는 한국 홍콩 태국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라오스 말레이시아 순이었는데, 일본이 홍콩에 뒤진 것은 그럴 수 있겠으나, 태국에 밀린 것은 뜻밖이었다. 태국의 성장이 반갑다. 일본의 부진은, 일본 프로바둑의 구름이 여기까지 드리워지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런 건 문제도 아니고 이제는 뉴스거리도 아니다. 일본 선수들 자신도, 주변에서도 그런 걸 의식하지는 않는다. 우승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는, 아니, 벗어났다는 점에서도, 자의든 타의든, 시대의 흐름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든, 우리와 일본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바둑 두는 사람이 100명도 안 되는 라오스나 브루나이에서 온 선수들을 보면 기가 막힌다. 라오스의 솜분 두앙부티(SomBoun Douangboutdy) 선수는 “작년에는 19위였는데, 이번엔 24위다. 실력이 약해졌다”면서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고 분미 나키엥찬(Bounmy Nakhiengchanh)은 대회 도중 틈틈이 우리 박 단장에게 대국을 청하며 한국 바둑을 알고 싶어 했다. 몽고 바둑협회 회장 바야르자르갈 샤르톨고이(Bayarjargal Shartolgoi)는 “이번에는 선수단을 꾸리지 못해 나 혼자 참관하러 왔지만 내년에는 선수들들 데리고 오겠다”면서 “몽고에도 바둑행사가 제법 있다. 한국에 소개해 줄 수 있느냐. 한국 바둑책을 구입하고 싶은데 부쳐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홍콩 팀 단장 람 호머(Lam Homer)는 “한국 바둑인들과 교류전 같은 걸 하고 싶다. 언제든 홍콩에 오는 걸 환영한다”고 제의했다. 일본 팀의 여학생 ‘리사 오’ 선수는 어머니가 한국계. 이름도 오리사(吳理沙)이며 일본기원 연구생 출신의 실력이다. 능숙하지는 않지만,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잘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반타니 태국바둑협회 부회장과 박소현 3단.
대회 마지막 날 중간에는 간단한 세미나가 있었다. ‘응용행동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는 마티(Mati Tajaroensuk, 28)가 ‘바둑 교육으로 어린이의 공격성향을 순화할 수 있다’는 요지로 진행 중인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마티는 “빠르면 1년, 늦어도 2년 안에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그의 프레젠테이션 중에는 도덕, 윤리, 그런 단어들이 자주 보였다. 좋은 성과 있기를 기대한다.
태국 바둑계에는 우리 국내에도 이미 여러 번 소개된 ‘코삭(Korsak Chairasmisak, 62)’이라는 인물이 있다. ‘태국 바둑계의 조남철’ ‘태국바둑계의 잉창치’로 불린다. 현 태국 바둑협회 회장이며, 태국 재계 서열 1위로 꼽히는 ‘CP All’ 그룹의 회장이다. 코삭 회장의 딸은 한국 청년을 사귀어 몇 달 전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인연의 출발은 바둑이었다는 것. 세상이 좁다.
코삭 태국바둑협회 회장.
CP All의 부회장이며 태국바둑협회 부회장이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며 바둑을 두지 않으면서도 태국 바둑행사를, 본인도 피곤하지만,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기에 그야말로 ‘만기친람’한다. 우리에게는 특히 우호적이다. 4~5년 전부터 우리 박 단장, 김 간사와 우의를 나누었다. 지금은 친자매 이상이다. AGF(아시아 바둑연맹) 회의, 국무총리배, 강진의 국제 시니어대회 등으로 어떤 때는 일 년에도 몇 차례 한국을 찾는다. 그가 오거나 박 단장이 가면 서로가 서로를 마음을 다해 ‘케어’하고 있다. 이름의 첫 글자가 V여서 ‘반타니’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박 단장과 김 간사는 ‘완타니 여사’라고 부르며 본인도 “태국의 V발음은 애매하다. 반타니, 완타니 똑같다. 애영과 향희가 완타니라고 부르니 완타니가 좋다”면서 웃는다. ‘바둑 민간외교’의 아름다운 결실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