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억 원에 계약한 강민호의 경우 적정가는 60억 원이고 실제 몸값은 92억 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모 구단 단장은 작심한 듯 올 FA 시장을 ‘야바위 판’으로 비유했다. 그가 격앙된 이유는 FA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돼 선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데다 단장간 합의가 휴지조각이 됐기 때문이었다. 먼저 선수 몸값이다.
이 단장은 “롯데 강민호의 몸값이 4년 75억 원이나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올 스토브리그 ‘FA 최대어’였던 강민호는 시즌 초부터 ‘FA 100억 원 시대를 열 선수’로 평가받았다. 원체 KBO(한국야구위원회) 리그에 포수 부재가 심각하고, 강민호처럼 공격력과 수비력을 동시에 갖춘 특급 포수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억 원’은 선언적 의미일 뿐, 야구계에선 올 시즌 타율 0.235, 11홈런, 57타점에 그친 강민호의 활약을 고려해 최대 60억 원 정도를 적정 몸값으로 생각했다. 일부 야구전문가는 “강민호의 타율, 출루율, 장타율이 2010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며 “2005년부터 올 시즌까지 9년 가운데 2009년을 빼고 해마다 100경기 이상 포수로 출전한 강민호는 언제 부상이 발생할지 모르는 선수”라며 강민호를 다소 낮게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민호는 롯데와 총액 75억 원에 계약하며 프로야구 FA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한 구단 운영팀장은 “강민호의 75억 원은 메이저리그와 비교하면 1000만 달러(약 116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일까.
이 팀장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몸값의 40%를 세금으로 떼인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연봉의 3%(소득세)와 주민세(소득세의 10%)를 합친 3.3%만 낸다”며 “프로야구 선수는 필요 경비가 많아 환급률도 일반 직장인보단 높은 만큼 강민호의 실질 소득은 메이저리그 1000만 달러 선수보다 많으면 많지 적진 않다”고 설명했다.
# ‘묻지마 투자’ 횡행하는 이유
정근우.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여기다 한술 더 떠 올 시즌 주로 대주자와 대수비로 출전한 이대형이 KIA와 4년 24억 원에 계약을 맺자 야구계는 “대주자 몸값도 20억 원을 돌파했다”며 놀라워했다.
최준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올 시즌 100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0, 7홈런, 36타점을 기록한 최준석은 엄밀한 의미에서 두산의 핵심 타자는 아니었다. 최근 3년간 그는 평균 타율 0.265, 9홈런, 47타점을 기록한 ‘고만고만한’ 타자였다. 하지만, 그런 최준석을 롯데는 4년에 35억 원을 투자해 계약했다.
야구계는 구단들의 고액 베팅을 보며 “매일같이 적자 타령으로 기존 선수들의 연봉은 10원도 올려주기 아까워하던 구단들이 어디서 돈이 생겨 몇 십억 원씩 베팅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구단들의 ‘적자 타령’에 더는 동조해주지 말아야 한다”고 볼멘소릴 냈다.
그렇다면 과연 구단들은 어디서 돈이 난 것일까. 계약금이 단서다. 이번 FA 선수들의 몸값을 보면 계약액에서 계약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강민호는 75억 원 가운데 계약금이 35억 원이나 된다. 정근우는 70억 원 중 35억 원, 이용규는 67억 원 중 32억 원이 계약금이었다. 세 선수 모두 계약금이 몸값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 이상이었다. 참고로 미국, 일본은 FA 계약 시 계약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낮다.
이용규.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한 구단 단장은 “넥센을 제외한 모든 구단의 FA 영입비용은 모그룹의 특별지원금으로 충당한다”며 “그 때문에 구단들이 ‘묻지마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들려줬다.
“2011년 넥센의 이택근 계약만 보더라도 구단이 꼭 필요한 선수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돈을 써야 하는 게 프로다. 그러나 모그룹 지원이 전무한 넥센과 달리 다른 구단들은 든든한 모그룹이 있는 관계로 냉정하게 선수를 평가하고, 향후 성적을 예상하기보단 팬들과 모그룹에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묻지마 투자’에 나선다. 성적이 나야 단장, 사장들의 임기가 길어지는 만큼 구단 수뇌부들은 FA 영입에 매달리고, 결국 모그룹 돈으로 자기들과 선수들 좋은 일만 하고 있다.”
# 늘어나는 ‘양치기 소년’
FA 계약 자체가 ‘묻지마 투자’인 만큼 구단들은 FA 선수들의 성공을 확신하기보단 혹여 발생할지 모르는 책임 회피에 더 관심이 많다. 선수들의 실제 몸값과 언론에 발표되는 ‘보도자료 몸값’이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롯데는 강민호와 75억 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롯데 주변에선 92억 원을 정설로 본다.
한 롯데 담당 기자는 “계약 전날까지 선수 측에서 ‘88억 원에 계약하기로 이야기가 진전됐다’라고 밝혔는데, 정작 계약에 합의한 다음날 75억 원으로 발표됐다. 하루 사이에 몸값이 오르면 올랐지 13억 원이 마이너스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상황이 이런데 롯데 발표액을 누가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정근우 계약건도 미스터리였다. SK는 정근우와의 원소속구단 우선협상 마지막 기한인 15일까지 그의 잔류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정근우는 “다른 팀을 알아보겠다”며 협상장에서 철수했고, SK는 이례적으로 협상 내용을 공개했다. 당시 SK가 밝힌 내용은 ‘우리는 70억 원을 제시했지만, 정근우가 80억 원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는 것이었다.
재미난 건 70억 원이 싫다고 SK를 박차고 나간 정근우가 한화와 똑같은 액수에 계약했다는 것이었다.
야구계는 “한화가 1억 원이라도 올려 발표했다면 모를까 같은 액수에 정근우를 잡았다고 공표한 바람에 정근우만 ‘양치기 소년’이 됐다”며 “FA 시장이 과열되면 될수록 ‘양치기 소년’들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평한다.
‘양치기 소년’들이 증가하는 이유는 뻔하다. 모 구단 사장은 “거액을 주고 데려온 선수가 부진할 시 구단은 팬들로부터 ‘저런 선수를 그 돈을 주고 데려왔느냐’는 비난을 받게 되고, 선수는 ‘먹튀’란 소릴 듣게 된다”며 “구단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실제 계약액보다 낮춰 발표하는 걸 선호한다”고 귀띔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