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국가대표팀이 지난 11월 15일 스위스와의 평가전에서 2-1 역전승으로 경기를 마쳤다. 구윤성 인턴기자
홍명보호가 갓 출범했을 때 세간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홍 감독과 U-20 대표팀(2009년 이집트)부터 아시안게임(2010년 중국 광저우), 또 올림픽(2012년 런던)을 거치며 함께 성장해온 일명 ‘홍명보 키즈’의 생존 확률이었다.
가장 가까운 시기부터 살펴보자. 작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했던 태극전사들은 18명. 이들 가운데 스위스-러시아로 이어진 11월 A매치 2연전에 출격한 대표팀과 교집합에 속한 선수는 9명이다. 그리고 최종엔트리 선발 때 불의의 부상으로 낙마한 선수 2명(한국영, 홍정호)을 포함하면 12명으로 늘어난다.
이는 상당한 생존율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골키퍼는 와일드카드로 뽑혔던 정성룡(수원 삼성)을 포함한 2명 전원이 살아남았고, 타 포지션에도 요소요소의 핵심 선수들은 고스란히 대표팀 홍명보호에도 발탁됐다.
하지만 생존자 모두가 호평을 받은 건 아니었다.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 김보경(카디프시티) 등과 같이 확실히 자리매김한 이들이 있는 반면, 일부는 예전의 위상을 잃어버린 채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
최근 현역에서 물러난 이영표의 후계자로 손꼽혔던 왼쪽 풀백 윤석영(돈캐스터 로버스), 한때 중원 에이스로 발돋움한 ‘독도남’ 박종우(부산 아이파크)는 힘겨운 경쟁에 처했다. 특히 윤석영은 가장 화려할 수 있던 유럽 진출에 발목 잡힌 대표적인 사례였다. 원 소속 팀 퀸즈파크레인저스(QPR)에서 자리 잡지 못하다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 중소클럽 돈캐스터로 단기 임대돼 제2의 도전을 하고 있지만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오히려 윤석영의 처지를 틈타 김진수(알비렉스 니가타)라는 새로운 존재가 부각됐고, 박종우는 한국영(쇼난 벨마레)에게 미드필드 자리를 내줬다. 더욱이 왼쪽 풀백에는 박주호(마인츠05)라는 또 다른 경쟁자가 있고, 중앙 미드필더에도 하대성(FC서울)-이명주(포항 스틸러스) 등이 있어 내년 5월 브라질월드컵 최종엔트리가 선정될 때까지 안심할 수 없다.
# 세대교체
이러한 현상은 세대교체의 일환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대표팀 연령대가 크게 젊어졌다.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책임진 최강희호는 베테랑들이 주로 중용됐다. 그러나 지금은 30세가 넘은 선수가 중앙 수비수 곽태휘(알 샤밥)뿐이다. 월드컵 시기를 고려해도 11월 대표팀 스쿼드 가운데 30대가 넘을 선수도 없다. 정성룡과 이근호(상주 상무)가 29세로 30대에 거의 근접할 뿐이다.
우려할 필요는 없다. 월드컵 본선 때면 대부분 20대 중후반이다. 축구 선수로는 가장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다는 연령대다. 경험도 풍부하다. 더욱이 홍 감독이 추구하는 색채와 전략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표팀이 클럽처럼 같은 선수들이 연중 내내 지속적으로 호흡을 맞출 수 있는 환경은 아니지만 연계성과 연속성이라는 측면은 굉장히 중요하다. 소집 시간이 워낙 짧아 새로운 틀을 입히는 건 아무래도 어렵다. 뿐만 아니라 젊은 선수들은 2015호주아시안컵, 더 나아가 2018러시아월드컵까지 활약할 수 있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세대교체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 화합
어느 국가든 대표팀에는 내로라하는 실력을 지닌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만큼 얼마간의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 서로의 견해차와 의견충돌 등으로 인해 대표팀이 분열됐다는 소식을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축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자신이 현 레벨에서는 최고 수준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선민의식’을 지닌 유럽 리거들과 국내 선수들 간의 갈등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단순한 루머와 소문이 아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조광래호부터 홍명보호까지 두루 경험했던 대표팀 A 선수는 익명을 전제로 “축구 팬은 믿을 수도 없고, 또 믿고 싶지도 않겠지만 실제로 유럽파와 국내파는 섞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선수들이 밥도 따로 먹고, 일부가 끼리끼리 어울려 함께하기가 여간 힘겨운 게 아니었다”고도 했다. 더불어 축구계 일각에서는 유럽파와 국내파, 또 올림픽파와 비 올림픽파로 나뉘어 이 과정에서 소외되는 선수들이 많았다고 본다.
홍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가장 먼저 한 것도 내부 단속이었고, 규율 강화였다. 그 결과 하나의 팀, 하나의 정신, 하나의 목표라는 슬로건 하에 적어도 예전과 같은 수준의 갈등은 사라졌다고 한다. 실제로 선수 B는 “홍 감독님은 항상 내가 아닌, 팀이라는 걸 강조했다. 통솔력과 리더십이 강하다는 걸 느꼈다. 기세등등했던 선수들도 이제는 서로와 모두라는 의미를 깨우쳐가고 있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간 화합을 이룬 건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파벌이라는 건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항상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