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총장은 “기업 수사는 대선자금 수사보다 먼저 끝날 수도 있다”면서 “재벌 총수를 반드시 부르거나 형사처벌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이번 수사의 본질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안대희 중수부장도 “기업 수사는 올해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거들었다.
이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수사팀이 “아무래도 해를 넘겨 수사해야 할 것 같다”고 했던 점을 감안할 때 여러 추정을 낳게 하고 있다.
우선 검찰이 그동안의 엄살에도 불구하고 기업체들의 불법 정치자금 내역을 상당 부분 밝혀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지난달 18일 LG 홈쇼핑 본사를 시작으로 삼성전기, 현대캐피탈, 롯데그룹 경영지원실 등에 대한 잇따른 압수수색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진 점 등에 비춰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음으로, 검찰이 기업들의 ‘저항’ 등으로 수사가 장기간 난항을 겪자 아예 ‘제한적 협조’를 얻는 선에서 대기업 수사를 일단락 짓기로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3일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SK를 넘어 거의 모든 재벌기업으로 확대된 이후 딱히 눈여겨볼 만한 수사 성과로 제시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단적인 예로 검찰은 지난달 24일 ‘유력한 첩보’에 따라 삼성전기 사무실을 덮쳐 상당한 양의 회계장부 등을 확보했으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권에 전달한 흔적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당시 검찰은 삼성전기측이 동양전자공업 등 유관 업체와의 거래 실적 등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신빙성 높은 제보를 받아 압수수색 등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검찰은 아직까지 삼성전기 관련 비자금 조성 의혹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삼성측은 삼성전기 압수수색 이후 검찰 수뇌부에 “확실한 근거도 없이 유력 기업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해 대외 이미지 등을 훼손했다”며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 수사가 이처럼 지지부진했던 것은 당연히 기업체들의 비협조 때문이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한마디로 대부분의 재벌기업들이 ‘버티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자칫하다간 수사팀이 칼을 뺄 수도 휘두를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질곡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재벌기업들이 이처럼 ‘장기 항전’을 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무엇보다 괜히 다른 기업들에 앞서서 정치자금 제공 사실을 자복했다가 정치권, 특히 원내 제1당이자 잠재적인 집권당인 한나라당에 찍혀 추후 불이익을 당할 것을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5대 재벌에 속하는 A기업 구조조정본부의 이사급 임원은 “기업체는 검찰 수사로 망하기는 어렵지만 정치권력에 한 번 밉보이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며 나름대로의 ‘고충’을 토로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체들은 어차피 검찰 수사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시간을 벌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각 기업들은 이미 검찰 수사 착수를 전후해 정치자금 내역 등을 담은 디스켓과 ‘비장부’들을 파기하거나 은닉해놓는 등 나름대로 만반의 대비를 했다는 자신감에서 ‘버티기’를 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얼마 전 핵심 계열사가 압수수색을 당한 B기업 관계자는 “그룹 구조조정본부는 물론, 일선 계열사의 재무부서들까지 최근 한 달 사이 두 차례나 장부들을 모처로 옮기는 작업을 마친 상태”라고 전했다.
여하튼 검찰이 기업체들의 이런 저항과 지연 전술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조기에 발을 빼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대선자금 수사에 새 활로를 찾은 것인지는 가까운 시일 안에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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