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무도 아시안게임 체스 선발전 경기 모습.
이 대회의 영문 표기는 처음에 ‘2013 World Youth Mind-Sports Tournament’로 했다가, 승부의 색깔을 줄이기 위해 토너먼트(Tournament)를 ‘페어(Fair)’로 고치고 시상도 우승-준우승-3위-4위를 버리고 사랑 평화 우정 교류 희망 같은 말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스포츠 쪽에는 프로게임단 2팀이 출전해 최근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라는 LOL(League of Legends) 시범경기를 펼친다. 팀이 많지는 않지만 대신 이쪽은 관중이 선수 숫자를 대신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주최 측은 2000~3000명 정도가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컴퓨터와 컴퓨터 게임은 묘한 존재다. 필수불가결이나 빠지기 쉽고, 편리와 폐해가 거의 반반이다. 아슬아슬, 그 경계의 담장 위를 걷고 있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균형을 체득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시대의 과제다. 바둑과 체스가 과연 그 과제를 떠맡을 수 있을지.
바둑과 체스에는, 아시아에서 우리를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마카오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유럽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체코 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 등 20개국 선수들과 우리나라에 와 있는 다국적가정의 부모와 청소년, 각국 대사관 자녀, 외국인 유학생, 미8군 자녀 등을 합해 500명 안팎의 선수가 참가할 것으로 어림잡고 있다. 몽골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현재 접촉 중이다.
이번에 내한하는 러시아의 체스 황제 개리 카스파로프.
1975년 12세 나이로 옛 소련의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역대 최연소 챔피언 기록을 세웠다. 79년에는 ‘세계 주니어 챔피언십’을 평정, 이듬해 ‘그랜드 마스터’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84년에는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전’에서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22세, 사상 최연소 체스 챔피언 신기록이었으며, 아나톨리와의 6시간 혈전은 체스 사상 최장대국 신기록이었다.
1996~97년 적수가 없던 카스파로프는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Deep Blue)’와 ‘인간 대 컴퓨터’의 체스 대결을 벌여 다시 한 번 세계를 흥분시키고는 2005년 “이제 체스에서 더 이룰 것이 없다”는 고별사로 1984년부터 2005년까지의 21년 재위를 마무리하며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은퇴 후에는 정치가로 변신해 현재는 야권의 지도자로 러시아의 정치개혁에 앞장서는 한편 <월스트리트저널>의 국제정세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 2007년에는 <타임>이 선정한 ‘세계를 바꾼 100인’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렸다. 물론 체스 사랑도 여전해 ‘카스파로프 체스 재단’ ‘카스파로프 인터내셔널 체스 아카데미’ 등을 설립해 보급과 후진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대회를 기획한 사람은 영동대학교 현인숙 이사장(53). 프로기사 서능욱 9단의 부인이며 현재 대한체스연맹 회장이기도 하다.
“바둑은 지금 약 70개국에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바둑협회가 있는 나라들을 꼽는 것이지요. 체스는 186개국에서 둡니다. 바둑의 두 배가 넘지요.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에서도 체스 인구가 별로 없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바둑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바둑이 적어도 당분간은 체스와 함께 가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유명 프로기사 부인이 왜 체스를 하느냐고 하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단견 같아요. 이런 비유는 적절치 않을지도 모르지만, 가령 트로이의 목마, 그런 작전도 필요한 것 아닌가요…^^”
이 대회를 기획한 현인숙 회장.
“청소년 교육은 시대를 관통하는 화두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세상의 모든 것을 교육을 위한 선의의 도구로 동원하고자 합니다. 청소년 정서의 위기를 말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청소년 정서는 어느 시대나 질풍노도인 것이지만, 지금은 특히 그 내용과 방향이 위태롭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만시지탄과 자괴가 없지 않으나, 학교 밖 위태로운 현장으로 나가, 조금씩이라도 그 내용과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일차 목표는 컴퓨터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청소년을 가두고 있는 울타리를 치우는 일이 시급합니다. 어두운 방에서 밝은 광장으로, 닫힌 공간에서 열린 마당으로, 혼자가 아니라 친구와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컴퓨터와 바둑과 체스가 만납니다. 동서양 청소년들이 동서양 최고의 두뇌스포츠를 통한 지적(知的) 즐거움으로 컴퓨터의 그늘을 지워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바둑진흥법을 발의한 이인제 의원이 명예대회장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고, 8년 전, 국회 예결위 간사로 바둑이 국고지원을 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 주었던 이원복 전 의원이 조직위원장으로 대회 준비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대회가 끝나는 29일이면 연말이다. 주최 측은 선수들이 가족과 함께 참가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가족 동반이 많고 그들이 원한다면 동해안에서 함께 2014년 새해의 첫 일출을 맞는 프로그램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