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 모습. 삼성의 경우 올 시즌 전반기에만 운영비 48억 원을 줄였음에도 30억 원 이상의 삭감 방침이 또 정해졌다. 사진제공=FC 서울
프로축구와 국내 양대 스포츠인 프로야구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돈이 넘쳐난다. 올해 프로야구 FA(자유계약선수) 시장 총액은 523억 5000만 원에 달한다. 롯데 자이언츠는 강민호(4년 총액 75억 원), 최준석(4년 총액 35억 원) 등 무려 127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썼다. 만년 꼴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화도 정근우(총액 70억 원), 이용규(총액 67억 원) 등을 데려오며 거액을 풀었다.
대개는 야구 선수들의 몸값에 거품이 끼었다, 지나치게 과열됐다는 지적이 주를 이루지만 프로축구는 솔직히 부럽기만 하다. 지금의 K리그는 돈이 없어 쓰지 못한다.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다. 인체로 말하자면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 셈이다. 대부분 구단들은 올 시즌 그랬던 것처럼 내년에도 많은 돈을 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 팀들이 운영비 삭감을 앞두고 있다. 올해와 동결이라는 일부 구단들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현대가(家) 형제인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는 일찌감치 동결 방침을 세웠다고 알려진다. 양 팀은 2013년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다.
수원 삼성은 상황이 심각하다. 올 시즌 전반기에만 이미 운영비 48억 원을 줄였다. 용병진 정리를 단행했고, 전력 보강에는 적극적으로 임하지 못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우승 경쟁은 일찌감치 밀려난 데다 현실적으로 유일한 목표였던 챔피언스리그 출전도 못하게 됐다. 내년이라고 해서 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30억 원 이상 삭감 방침이 또 정해졌다. 일각에서는 선수 13명가량을 추가로 정리해야 한다는 소문이 나온다.
FA컵 정상을 밟은 포항 스틸러스도 운영비라는 측면에서는 안 좋았다. 아니, 최악에 가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포항 황선홍 감독과의 재계약이 계속 미뤄진 까닭이 황 감독이 올림픽대표팀 사령탑 부임 여부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K리그 관계자들은 포항의 ‘짠돌이식’ 팀 운영에 실망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단 한 명의 용병도 없이 꾸역꾸역 성과를 내긴 했지만 더욱 높은 목표를 바라보는 황 감독 입장에서는 구단 방침이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포항과 같은 포스코 계열의 전남 드래곤즈는 팀 해체 소문까지 나돌았다. 풍문에 불과했지만 우스갯소리로 넘겨짚기에는 그만큼 축구단에 돈을 쓰는 걸 기업들이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나마 기댈 구석이 있는 기업구단들이 이럴진대 도시민구단들의 자금 사정은 정말 빤해 보인다. 수당은 언감생심이고, 연봉 줄 돈이 없어 아예 내년 시즌 상반기 예산을 앞당겨 썼다거나 프런트 봉급조차 계속 밀렸다는 루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물론 대개는 진실에 가까웠다.
# 단순히 연봉공개 여파?
올해 초 프로축구계가 뒤숭숭했다. 연봉 공개를 놓고 찬반 여론이 맞섰다. 기업 구단들은 대개 반대, 도시민구단들과 모기업 지원의 폭이 적은 일부 기업 구단들은 찬성이었다. 공개 취지는 이랬다. 그간 연봉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일부 선수가 실제 실력에 비해 받는 돈에 거품이 끼었다는 것이었다. 출전 시간과 승리 등 활약과 기여에 따른 수당이 붙다보니 부가 수입도 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구단에서 연봉을 채워주기 어려울 때는 연봉 일부를 모기업 CF 촬영 등을 통해 채워줬다는 소문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계속 흘러나오는 비리 문제 등도 있고,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긍정론이 많았다.
1년여가 흐른 지금은? 투명해지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축구 시장은 끝 모를 추락을 이어간다. 프로야구는 이미 연봉공개를 해왔음에도 불구, 자금줄이 마르지 않지만 K리그는 정 반대다. 축구단을 운영하는 굴지의 대기업에서는 “평균연봉 1위는 곤란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금을 줄였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업은 야구단에는 많은 돈을 쓰길 아까워하지 않는다. 축구단의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선수단부터 직격탄을 맞는다. 소속 팀의 후한 처우는 사라졌고, 팀을 떠나자니 마땅하게 이적할 곳도 없다. 선수 수급도 없다보니 좋은 선수들을 팔아 근근이 자구책을 마련해왔던 도시민구단들은 돈의 씨가 말랐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몇몇 도시민구단 프런트의 입에서는 “시장이 고사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연봉 공개를 찬성한 것 같다”는 후회 섞인 말도 나왔다.
# 에이전트 업계도 난리가 났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대한축구협회 등록 에이전트들 가운데 50% 이상이 도산할 것”이라는 루머가 있다. 파는 쪽(정확히 말하자면 ‘팔기를 원하는’)만 있고, 정작 사는 쪽이 없는 묘한 상황이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커서 몸값이 천정부지로 뜨는 프로야구와는 딴 판이다. 한 에이전트는 “수원과 전북처럼 돈을 써야 할 팀들이 돈을 쓰지 않으면서 K리그에선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선수들이 자꾸 움직여야 자금이 돌고 도는데, K리그는 거꾸로 가는 것 같다. 현 시점에서는 한국 선수 포화 상태인 일본은 좀 그렇고, 돈을 많이 주는 중국이나 중동을 노리는 편이 낫다”고 했다.
그러나 답은 없다. 연봉공개로 인해 실력 없는 선수(직원)들이 정리되는 당연한 사회 논리가 통용되고 있다. 다만 긍정과 부정이 여전히 팽팽하다. 더욱이 특정한 제도가 모두의 입맛을 맞춰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과연 어떤 게 옳은 것일까.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