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 감독들이 축구 사령탑으로 속속 복귀하고 있다. 사진은 박종환 성남시민축구단 초대 감독. 연합뉴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K리그는 온통 젊은 감독들의 경연장이었다. 신태용 전 성남 일화 감독(44)을 기점으로 FC서울 최용수 감독(42), 포항 스틸러스 황선홍 감독(45), 수원 삼성 서정원 감독(43) 등 40대 초중반의 젊은 사령탑들이 득세했다.
젊어진 만큼 그라운드에는 신선함이 감돌았다. 제자들과의 꾸준한 소통을 앞세운 일명 ‘형님 리더십’으로 무장한 이들 감독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성과를 내면서 축구계 세력 구도를 흥미진진하게 했다. 신 전 감독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와 FA컵을, 황 감독은 2012년 FA컵에 이어 지난해 정규리그와 FA컵까지 모조리 휩쓸며 지도력을 확실하게 인정받았다. 최 감독도 정식 사령탑 부임 첫 해인 2012년 정규리그를 차지했고,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프로 무대에서 젊은 사령탑들이 보여주는 역량에 고무된 탓일까. 이 같은 감독 트렌드는 국가대표팀으로도 이어졌다. 주로 50대 중반대 연령의 지도자들이 맡아왔던 대표팀 지휘봉은 지난해 6월 말 홍명보 감독(44)이 부임하면서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분명 있었다. 갑자기 감독들이 젊어지면서 노장과 베테랑, 묘한 경계선에 있었던 기존 감독들이 설 자리를 잃어버렸던 탓이다. 경험과 관록보다는 패기와 새 바람에만 지나치게 열중해 더욱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는 평가도 함께 불거졌다. 미처 생각지 못한 상황도 빚어졌다. 떠난 젊은 감독들은 역시 쉽게 복귀하기 어렵다는 사실. 대부분 감독들은 구단과 마찰을 빚고 떠나는 탓에 되돌아오기도 아주 어렵다.
그래서일까. K리그에도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울산 현대의 ‘신(新) 르네상스’를 진두지휘했던 김호곤 감독(62)이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감독 판도가 더욱 젊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김 전 감독보다 나이가 더 많은 감독들이 두 명(이차만, 박종환)이나 복귀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노장들의 복귀를 반가워한다. 시시각각 바뀌는 경기 상황에 맞춰 반사적이면서 남다른 감각으로 대처하는 베테랑 지도자들이 있어야 젊은 감독들과의 대결 구도가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신 전 감독을 기점으로 수년째 지속돼온 ‘형님 리더십’에 축구 팬들은 열광하면서도 김 전 감독과 같은 노장들의 열정에 아낌없는 갈채가 쏟아진 건 그래서였다. 새파란 후배들과 서슬 퍼런 경쟁에서 조금도 밀리지 않던 김 전 감독과 울산을 통해 ‘나이 많아 등을 떠밀리는’ 이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를 타파하고 있다는 걸 지켜보며 ‘노장은 죽지 않는다’는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많은 축구인들도 “감독 연령대가 그저 젊어지고 있다는 건 경계해야 한다. 젊은 감독들이 할 수 없는 역할을 노장들이 할 수 있다. 단순히 나이가 많아 현장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동조를 구하기 어렵다”고 지적을 해왔다.
# 축구는 흐름의 스포츠
이차만 경남FC 신임 감독. 연합뉴스
사실 축구는 흐름의 스포츠다. 어떤 구단이든 사령탑 교체가 이뤄질 때마다 일부 시행착오는 항상 있어왔다. 더욱이 현대 축구는 더 없이 빠르게 발전한다. 오랜 경험, 이를 통해 쌓아온 관록과 연륜에서 비롯되는 힘도 크겠지만 그에 따른 부정적인 파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판단력의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다. 전술부터 선수들까지 쉼 없이 뒤바뀌는 마당에 모든 상황에 제대로, 그것도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느냐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시대도 바뀌었다. 요즘의 선수들은 예전과 다르다. 엄정한 상하 관계가 아닌, 지도자들과의 지속적이면서도 꾸준한 교감을 중시하는 선수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인격이 손상됐다 싶으면 팀을 떠나는 과감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10여 년 전의 선수들을 향한 고압적이면서, 일방적인 지도자의 지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감독들은 “아니다. 괜찮다. 문제없다”고 자신감만 드러내지만 선수들의 얼굴도 생각도 바뀌었을 뿐 아니라 일부는 심판과의 유착 관계가 이뤄질 수 있음을 걱정한다.
사령탑 선임 과정에서 정치 논리가 일부 작용했다는 사실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도시민구단들의 태생적인 환경이다. 5년 주기의 대선, 4년 주기의 총선 때마다 반복돼 왔던 문제이기도 하다. 특정 정당과 정치색, 정치인이 감독 선임 배후에 있다는 따위의 이런저런 소문들이 나돌고 있다. 가장 심각한 건 대부분이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줄 대기 하려는 축구인들이 꽤 많다”는 게 모 시민구단 관계자의 울분 섞인 토로였다. 지역 정치와 불편한 관계에 있을 때는 아예 추천조차 받을 수 없고, 다수의 후보군에도 포함될 수 없다는 루머들도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정치와 축구는 구분돼야 한다’는 주장을 항상 견지해왔다. 그러나 어느 국가든지 정치놀음과 그 파장은 상당히 작용해왔다. 물론 결말은 대개 부정적이었다. 어느 때보다 보는 눈이 많아진 축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축구계다. 김호곤 전 감독처럼 떠날 때 박수 받으며 떠나는 지도자들은 극히 적다. 말년에 축복받으며 영광스럽게 물러날지, 그렇지 않을지는 오직 감독들 본인에게 달려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