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놀라운 일은 2011년에 벌어졌다. 야쿠르트와의 재계약에 실패한 이혜천이 두산으로 복귀하며 계약금 6억 원, 연봉 3억 5000만 원, 옵션 1억 50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받은 것이었다. 야구계 일각에선 “일본에서 2군을 전전하던 투수에게 1년에 11억 원씩이나 큰돈을 안길 필요가 있느냐”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야구계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혜천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시즌 동안 93경기에 등판해 2승 8패 11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 7.46의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가뜩이나 지난 시즌엔 1군에서 단 13경기에 등판해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 11.57로 몹시 부진했다. 두산 관계자는 “이혜천 재영입은 실패한 투자였다”고 고백했다.
실패한 투자의 책임은 구단이 져야 한다. 두산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한때 트레이드를 모색했지만, 팀 내 왼손 불펜요원이 극히 부족한 터라, 두산은 내심 이혜천의 재기를 바랐다. 반면 이혜천은 등판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자 줄기차게 “다른 팀에서 뛰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두산과 이혜천의 옥신각신은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계기가 돼 결별로 끝을 맺는다.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기회’는 바로 2차 드래프트였다.
지난해 11월 22일 두산은 2차 드래프트에 대비해 40인 보호선수 명단에서 이혜천을 제외했다. 두산은 한국 무대로 돌아온 뒤 부진을 거듭하는 ‘노장’ 이혜천을 어느 팀에서도 데려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이혜천 대신 젊은 선수를 보호선수 명단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NC가 2차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4번째로 이혜천을 지명하며 두산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문제는 이때 불거졌다. 이혜천 측이 언론에 “두산이 1년치 계약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면 계약 사실을 전격 폭로한 것이다. 이혜천의 동료 선수는 다음과 같이 이면 계약의 전모를 설명했다.
“(이)혜천이가 2010년 말 한국에 돌아왔을 때 두산과 1년에 11억 원으로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실제론 두산과 4년간 계약금 8억 원, 연봉 3억 5000만 원, 옵션 1억 5000만 원의 이면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국외파 선수들이 국내 무대로 유턴 시 1년 계약만 해야 한다’는 규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년 계약으로 발표한 것이었다. 만약 혜천이가 2014시즌까지 두산에서 뛰었다면 계약기간 4년을 모두 채운 셈이니 별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한 시즌을 앞두고 이혜천이 NC로 이적하며 일이 꼬였다. 두산은 한 시즌을 덜 뛰었으니 계약금 일부를 반환하라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NC로부터 2014년 연봉을 받을 테니 4년째 연봉은 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이혜천은 “내가 원해서 NC로 간 게 아니다”라고 펄펄 뛰며 “이면 계약도 계약인 만큼 계약금 반환 및 4년째 연봉 미지급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전달했다.
두산 관계자는 “NC와 이혜천의 연봉 계약에 따라 우리 쪽에서 원래 주기로 한 연봉 일부를 지급할 것”이라며 “만약 NC가 이혜천의 연봉으로 2억 원을 책정하면 올 시즌 원래 주기로 했던 3억 5000만 원에서 2억 원을 뺀 1억 5000만 원을 지급해 어쨌거나 3억 5000만 원을 수령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산과 이혜천의 이면 계약 파동을 보며 야구계는 “다른 국외파 선수들도 죄다 KBO 규정을 위반해 4년 다년 계약을 체결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 구단 관계자는 “일본 무대에서 뛰던 A, B 선수가 국내 복귀를 타진할 때 우리와 접촉한 적이 있다”며 “당시 두 선수 모두 ‘4년 계약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는 뜻을 확고하게 밝혔다”고 회상했다. 다른 구단 운영팀장도 “두 선수 소속구단 관계자로부터 ‘4년 이면 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박찬호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외파 선수가 이면 계약을 맺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국외파 선수들이 4년 계약을 고집하는 건 FA 재취득 기간이 4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4년 후 FA로 다시 한 번 목돈을 쥘 때까지 안정적으로 선수생활을 영위하려고 4년 계약을 고집한다는 뜻이다. 대개 국외파 선수가 검증된 즉시전력감이기에 구단들로선 선수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게 야구계의 중평이다.
따지고 보면 프로야구계의 이면 계약은 국외파 유턴 시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국내 FA 시장에서도 이면 계약은 관행이 됐다. 지난해 각 구단이 발표한 FA 계약액을 곧이 곧대로 믿는 야구인은 아예 없다. 선수들도 “언론 발표액과 실제 계약액은 다르다”고 털어놓는다.
외국인 선수 계약액은 더하다. KIA가 발표한 외국인 타자 브렛 필의 계약은 코미디에 가까웠다. KIA는 필을 영입하며 “총액 30만 달러(계약금 5만 달러·연봉 25만 달러)에 올 시즌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재미난 건 같은 날 미국 현지에서 “KIA가 필의 원소속구단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이적료로 100만 달러를 줬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이적료의 절반도 안 되는 몸값을 받고 필이 한국행을 선택했다는 건 누가 봐도 코웃음을 칠 일이었다.
야구계는 “박근혜 정부가 ‘우리 사회의 비정상을 정상화’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마당에 야구계는 계속 비정상이 지배하고 있다”며 “야구계가 특단의 조치를 통해 비정상의 끈을 끊지 않는 한 이면 계약 논란은 끝없이 불거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