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신박 인사인 ‘실세 3인방’ 최경환 원내대표, 홍문종 사무총장, 윤상현 수석부대표(왼쪽부터),
그중에서도 신박은 지난 2012년 총선을 통해 국회로 들어와 친박에 합류한 의원들과 같은 해 대선에서 승리에 기여한 뒤 현재 당의 운영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의원들을 합친 말이다. 반면, 원박 중에서도 신박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이 구박에 속한다. 엄밀히 말하면 친박 중에서도 신박이 새누리당 주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신박은 주요 당직을 장악하며 목소리를 내왔다. 최경환·홍문종·윤상현, 이른바 ‘실세 3인방’이 대표적인 신박 인사다. 일각에선 초선이지만 박 대통령의 남다른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태흠 원내대변인까지 포함시켜 ‘신박 4인방’으로 부르기도 한다.
신박에 비해 구박은 여권 주류라고 하기엔 초라할 정도로 그 정치적 위상이 축소됐다. ‘구박이 현 정권에서 구박받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신박은 2012년 대선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정권 초반 신박의 영향력이 구박보다 센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라며 “구박도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불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출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구박의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권력기관 대선개입 의혹,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식 논란 등 굵직굵직한 이슈를 놓고 집권 여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들이 청와대 내에서 제기된 이후부터다. 신박이 야당의 공세에 맞서 박 대통령을 확실하게 ‘커버’해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끌려 다녔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청와대의 우려는 지난해 10월 구박 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서청원 의원 공천으로 이어졌다. 당시 여권 내부에선 서 의원 공천에 반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를 밀어붙였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구박은 대선 공헌도 면에선 신박보다 떨어지지만 ‘로열티’만 놓고 봤을 땐 검증이 따로 필요 없다”며 “박 대통령에겐 아마 그런 부분들이 필요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최근 친박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도권 다툼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구박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자연스레 기득권을 지키려는 신박과의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6월 지방선거, 7월 재·보궐 선거, 전당대회와 같은 대형 정치 일정이 잡혀 있다. 구박으로선 정치적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마련돼 있는 셈이다. 반대로 신박은 구박의 공세에 맞서 수성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기류는 지방선거 후보 선출을 둘러싼 신박과 구박의 마찰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라고 할 수 있는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신박은 정몽준 의원을, 구박은 김황식 전 총리를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구박계에 속해 있는 한 의원은 “우리는 승리를 위해 인재를 데리고 오는 게 옳다고 본다. 김황식 전 총리만 한 인물이 어디 있느냐. 본인이 고사하고 있는데 왜 자꾸 정몽준 의원을 (신박에서) 거론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경기지사와 인천시장과 관련해서도 신박은 김문수 현 지사와 황우여 대표를, 구박은 외부 영입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차기 당권과 연관 짓고 있어 관심을 끈다. 8월 실시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신박과 구박이 파워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신박은 황우여 대표를 인천시장으로 내보낸 뒤 서청원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선출하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권대우 정치컨설턴트는 “당 대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서청원 의원을 2선으로 물린 뒤 신박이 직접 당권에 도전해보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경우 신박이 지지하는 후보는 김무성 의원과 대표 자리를 놓고 버거운 싸움을 해야 한다. 신박보다는 김무성 의원과 한 배를 탈 가능성이 높은 김문수 지사와 정몽준 의원을 지방선거에 출마시키려는 것도 이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진다.
구박이 당내 중진 차출론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비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앞서의 구박계 의원은 “황우여 대표가 인천으로 가면 서청원 국회의장론은 탄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 의원은 향후 행보에 대해 아직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다”면서 “김문수·정몽준·김무성 등 당내에 유력 인사들이 많을수록 서 의원에겐 유리하다. 신박과 구박 가릴 것 없이 친박 중에서 이들과 맞설 수 있는 정치인은 서 의원밖에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신박과 구박의 싸움이 외부적으로 드러난 상황은 아니다. 겉으로는 오히려 “우리는 같은 친박”이라며 손을 잡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물밑에선 기싸움이 한창이다. ‘박심’을 잡기 위한 청와대와의 핫라인 구축에 힘을 쓰고 있고 비박 세력과의 연대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친박이긴 하지만 현 정부 들어 비주류로 밀려난 인사들을 끌어들이는 데 남다른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는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에 청와대는 신박과 구박 측 핵심 인사에게 자중할 것을 당부한 것으로도 알려진다. 박 대통령이 사전 진화에 나선 것이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집권 2년차를 맞아 친박이 힘을 모아도 부족할 판에 서로 싸우면 되겠느냐는 게 박 대통령 생각”이라면서 “순방길에 나선 박 대통령이 귀국 후 신박과 구박 인사들을 모두 모아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