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KIA 타이거즈
현재 건설 중인 광주 KIA 챔피언스필드(위)와 대구 새 구장 조감도. 사진제공=대구시청
하지만, 이 역시 기우였다. 경기도 수원시, 경남 창원시, 전북 전주시 등이 프로야구단에 관심을 나타내며 물밑 유치전을 벌였다. 결국 승자는 마산구장 리모델링과 새 구장 건설 등 파격적인 지원안을 내놓은 창원시였다. 당시 창원시는 “NC의 연착륙을 위해 모든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며 “NC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1년 후 진행된 10구단 유치전은 훨씬 뜨거웠다. 수원시와 전주시는 공히 ‘사상 최고의 지원’을 다짐하며 10구단 유치에 뛰어들었다. 두 지자체 시장은 “새 구장이 건설되면 구단에 20년 이상 장기임대권을 줘 흑자 경영을 실현하도록 배려하겠다”며 “원한다면 돔구장을 지어 야구계 발전에 일조하겠다”고 선언했다.
지자체의 파격적인 당근안은 구단 유치 때만 나온 건 아니었다. 기존 구단의 연고지 지자체들 역시 경쟁하듯 각종 지원안을 내세웠다. 특히나 새 구장을 지을 때면 귀가 솔깃할 약속들을 구단에 들려줬다.
대표적인 게 광주시와 대구시였다. 두 지자체는 2011년 전격적으로 새 구장 건설을 발표했다. 당시 두 지자체의 고위 공무원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우리 시를 대표하는 프로야구단의 발전을 위해 시장님이 대승적 차원에서 새 구장 건설을 발표하셨다”며 “새 구장이 완성되면 연고지 구단들이 마음껏 사업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선진국식 지원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지자체들의 약속과 다짐은 과연 어느 정도 실현됐을까. 지금까지 상황만 본다면 실현된 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되레 지자체들의 거짓말 퍼레이드가 시작됐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먼저 창원시다.
2011년 NC와 창원시는 “우린 운명공동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현재는 이혼 직전이다. 창원시는 NC 의사와는 상관없이 새 구장 건설지로 창원, 마산 대신 진해를 고집하고 있다. NC가 “진해는 접근성과 흥행면에서 창원, 마산보다 떨어진다”며 난색을 표하는데도 창원시는 “우리 결정을 믿고 따르라”며 고압적인 태도로 NC를 몰아세우고 있다.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며 2015년 완공 예정이던 새 구장은 삽조차 들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수원시는 창원보단 나은 편이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수원구장 리모델링을 진두지휘하며 지역 야구발전을 위해 각별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10구단 유치 과정 중 내세웠던 ‘돔구장 건설’과 ‘독립리그 창설’ 약속은 흐지부지 사라진 지 오래다.
새 구장이 완공됐거나 건설 중인 광주시와 대구시도 ‘뒤통수 때리기’ 논란에 휩싸인 건 마찬가지다. 애초 광주시는 새 구장 건설 시 KIA가 300억 원을 내면 구장 명칭권과 25년 장기 임대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KIA가 300억 원을 내 새 구장을 건설하자 딴소릴 했다. 광주시는 “새 구장 이름을 지을 때 반드시 ‘광주’라는 이름을 앞에 넣어 달라”고 요구했고, 결국 이를 관철시켰다. 여기다 최근엔 KIA와 약속했던 25년 장기 임대안도 슬쩍 ‘없던 일’로 만들어버렸다.
KIA 측은 “광주시가 우리 측에 그런 뜻을 전달한 건 사실”이라며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구시의 뻔뻔함은 더하다. 대구시는 광주시처럼 연고지 구단인 삼성에 새 구장 건설비 일부를 담당하면 구장 장기 임대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은 500억 원을 내며 통 크게 협조했다. 그러나 최근 대구시는 삼성에 “지역 시민단체와 시 의회가 삼성에 지나친 특혜를 주는 게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며 “25년 장기 임대와 관련해 원점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하자”는 뜻을 일방적으로 전달했다.
광주시와 대구시의 예에서 보듯 지자체들은 말을 바꿀 때마다 시민단체를 앞세운다. “대기업 야구단에 특혜를 주지마라”는 시민단체의 압박에 부득이 약속을 파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 지자체는 시민단체가 끊임없이 제기하는 특혜 논란으로 홍역을 치러왔다. 그러나 한 지자체의 공무원은 “지자체가 ‘시민단체 때문에 구장 장기임대권을 구단에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건 핑계일 뿐”이라며 “되레 시민단체가 지자체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고 했다. 다시 말해 지자체와 시민단체가 호흡을 맞춰 프로야구단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공무원은 작심하고 이렇게 털어놨다.
“광주와 대구가 KIA, 삼성에 25년 장기임대권을 주면 그간 구장 운영을 통해 벌었던 광고권료 수익이 사라지게 된다. 여기다 매점 운영권 역시 구단이 행사하기에 시의 수익은 사실상 제로가 된다. 시 입장에선 새 구장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한 해 예상수익이 100억 원임을 고려할 때 이 돈을 구단에 내준다는 게 배 아플지 모른다. 그래선지 언제부터인가 시민단체 핑계를 대며 ‘특혜 논리’를 공론화하고 있다. 재미난 건 지자체 편을 드는 시민단체가 정작 시민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낯선 단체들’이라는 것이다. 더 재미난 건 일부 시민단체는 시장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관변 단체라는 거다. 한마디로 짜고 치는 고스톱인 셈이다.”
그간 야구계엔 ‘지자체가 실체가 불분명한 시민단체를 전면에 내세워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시 공무원의 증언대로 지자체와 시민단체가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고 있다면 소문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야구계는 “약속을 밥 먹듯이 파기하는 지자체에 대해선 연고지 이전 등의 강력한 페널티를 줘야 한다”며 “앞으로 구단도 지자체의 구두 약속을 믿지 말고, 정식 계약서를 작성해 ‘훗날의 어이없는 사태’에 명확하게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