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배 결승전에서 맞붙은 퉈자시 3단(왼쪽)과 저우루이양 9단. LG배는 중국의 잔치판이 됐다.
LG배에서는 2009년 제13회 구리(이세돌, 2 대 0), 2010년 제14회 쿵제(이창호, 2 대 0), 2011년 제15회 파오원야오(쿵제, 2 대 0), 2012년 제16회 장웨이제(이창호 2 대 0), 2013년 스웨(원성진 2 대 0), 그리고 이번에 퉈자시, LG배 6연패의 과정이다. 중국 기사끼리 결승을 벌인 게 이번이 두 번째다. 쿵제 1982년생, 구리 1983년생, 장웨이제 1991년생. 파오원야오(재중동포 박문요) 1988년생. 괄호 안은 상대 선수와 스코어.
LG배는 중국의 6연패 전에도 그랬고, 아무튼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2연패한 사람이 없다. 중국의 세계대회 7연패처럼 매번 다른 사람이 우승했거니와 중국의 최근 9단들은, LG와 삼성화재배 우승으로 ‘직행 9단’이 된 청년들이어서 “중국 9단은 한국이 만들어 주는” 셈이다.
그나저나 중국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2연패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절대강자가 없다는 것. 그게 좀 불안하다”는 소리도 들리고 “이러다가 LG배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있다. 이것, 참. 언제부터 중국이 그런 걸 갖고 불안해하고, 그런 걱정을 했는지. 불과 1~2년 사이의 변화인데, 무상한 느낌이다. 하긴 그런 전례가 없지 않다. ‘후지쓰배’다. 1988년 대만의 거부이자 열광적인 애기가였던 응창기 옹(작고)이 우승 상금 40만 달러를 걸고 세계 최초로 국제 프로바둑대회를 열겠다고 발표하자 일본이 깜짝 놀랐고, 세계 바둑계 리더의 자존심을 위해 부랴부랴 만들어 응창기배보다 먼저 치고나간 대회가 ‘후지쓰배’다.
처음에는 일본이 잘 나갔다.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이 1~2기를 연패하고 린하이펑(임해봉) 조치훈, 오다케 히데오 9단이 3~5기를 제패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고 이후는 한국과 중국의 무대였다. 1997년 제10기 때 고바야시 고이치 9단과 왕리첸(왕립성) 9단, 일본기원 소속 기사끼리 결승을 치른 것을 끝으로 일본은 우승은커녕 17기 때 요다 노리모토가 준우승한 것을 빼면 결승무대에도 변변히 올라가지 못했다.
특히 1998년 제11기부터 2007년 제20기까지는 한국의 독무대였다. 10연속 우승이며 14기는 조훈현-최명훈 9단, 15기는 이세돌-유창혁 9단, 18기 이세돌-최철한 9단, 20기 박영훈-이창호 9단 등 한국 기사끼리 우승-준우승을 다툰 게 네 번이나 된다(앞이 우승자). 그러다가 후지쓰배는 2011년 제24기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24기 우승자가 바로 박정환 9단. 중국의 취우쥔 9단을 꺾었다.
후지쓰배가 그랬던 것처럼 LG배도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그러나 중국의 바둑 언론은 중국기원이나 중국 기사들의 호들갑을 “기우”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후지쓰와 LG는 다르다”면서 “LG와 후지쓰는 둘 다 세계 500대 기업이지만, 규모에서 차이가 크다. 2013년만 보더라도 LG는 5930억 달러나 벌어들인 반면 후지쓰는 878억 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보았다. 컴퓨터를 비롯한 오피스 용품을 생산하는 후지쓰는 이미 경쟁력에서 밀렸고 한-중의 신진기업에게도 영역을 조금씩 빼앗기고 있다”고 말한다. 회사의 경영 자체가 어려워져서 바둑대회에 신경을 여력이 없기 때문이지, 꼭 무슨 일본 기사가 성적을 못 내서가 그런 건 아니라는 얘기다. 후지쓰는 어느 날 갑자기 바둑대회를 중단한 게 아니었다. 이미 3년 전에 “앞으로 3년만 더 주최하게 될 것 같다. 바둑계 여러분의 양해를 바란다”고 발표했으니까.
우리도 그런 걱정보다는 이제는 삼성화재배나 LG배 가운데 하나는 ‘중국을 쳐다보는’ 세계대회보다는 국내로 눈을 돌려 국내대회를 하나 획기적으로 키우는 걸 연구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게 기재를 발굴하는 길이고, 중국의 ‘90후(90년대 출생)’들과 싸울 수 있는 영 파워를 육성하는 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중이 일 대 일로 붙을 때 정상권 10명 정도는 비슷하다. 그러나 그 아래로 내려가면 중국이 월등하다는 것, 요즘 상식으로 통하는 얘기 아닌가. 우리 젊은 기사들이 중국에 뒤진다고 탓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우리 젊은 기사들을 강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이광구 객원기자
방심한 순간 ‘결승골’ 작렬
<1도>는 퉈자시-저우루이양의 3국, 중반 초입의 장면. 퉈자시가 백이다. 지금은 흑이 ‘선착의 효’를 유지하고 있는 형세. 흑1로 갈라치자 백2로 가르고 나갔다. 여기서 흑3으로 민 것은 당연했는데, 백4 때 흑5의 벌림으로 전향한 것이 의문이었다고 한다. 아마추어의 눈에는 흑5도 나쁘지는 않아 보이는데…. 흑5로 벌리자 백은 <2도> 1~5로 하변을 안정시켰고, 흑은 6으로 여기를 젖히면서 좌하귀 공략에 나섰다. 흑은 양쪽을 맞보기로 보고 있었던 것. 아닌 게 아니리 흑6은 강력한 도발로 보였다. 그러나….
백7 끊고 9쪽을 이어 맞받아친 것이 또한 강수, 백은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흑이 좌하귀 백 두 점을 요리하지 못 하면 흐름은 역전이다. 흑10, 잡으러 가고 백은 기다렸다는 듯, 11로 건너붙인다. 계속해서….
<3도> 흑1부터 7까지는 외길인데, <4도> 백1, 3으로 몰고 5로 빠지니, 백은 완생! 게다가 흑6이 불가피할 때 백7, 거꾸로 흑을 잡아 버리는 순간, 검토실의 예상대로 흐름은 일거에 역전되었다. 이후, 흑은 절치부심, 재역전을 노렸으나 기회는 오지 않았다. 검토실은 “속기로 일관하면서도 상대의 방심을 낚아채 그대로 결승골로 연결시킨 퉈자시의 순발력과 수읽기가 돋보인 판이었다”고 총평했다.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