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의 신곡 ‘진실 혹은 대담’ 뮤직비디오.
가요계를 ‘점령’하다시피 한 섹시 바람은 지난해 말 본격적으로 시작돼 최근은 정점을 찍는 모양새다. 걸그룹 걸스데이와 AOA가 기존에 지녔던 발랄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벗고 섹시미를 앞세운 뒤 열풍이 시작됐고 그 바통을 가인이 이어받았다. 비슷한 시기 새 음반을 내놓은 걸그룹 스텔라, 레이디스코드도 비슷한 매력으로 가요계 정상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오히려 ‘반 섹시’를 앞세운 소녀시대의 컴백 예고가 화제를 모을 정도다.
사실 섹시하고 파격적인 모습으로 이목을 끈 가수와 그룹의 등장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때마다 매번 ‘노출 논란’도 잇따랐다. 하지만 최근의 경우처럼 새 음반을 내는 대부분의 여가수와 걸그룹이 섹시를 주요 콘셉트로 정하고 약속한 듯 ‘공세’에 나선 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대중문화 관계자들은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치열한 경쟁’으로 보고 있다. 걸그룹의 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데다 매년 10개 이상의 팀이 새로 등장하는 가운데 이들이 가요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가장 튀는’ 콘셉트인 섹시미를 앞세우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가요계의 한 관계자는 “수백 개의 팀이 경쟁하는 가운데 화려한 무대를 보여줘야 하는 걸그룹의 입장에서 대중의 시선을 단번에 끌어들이는 건 섹시 콘셉트일 수밖에 없다”며 “특히 요즘처럼 긴 공백을 두지 않고 활동을 지속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이미지 변신을 위해서는 섹시한 매력을 강조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밝혔다.
걸그룹 ‘스텔라’가 뮤직비디오를 통해 파격적인 의상과 야한 댄스를 공개해 단숨에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물론 이를 두고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끈이지 않는다. 걸그룹으로 활동하는 멤버들의 나이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에 해당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지나치게 성을 상품화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때때로 방송사들이 가수들의 의상을 자체 단속하면서 과도한 노출을 경계하는 것도 이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이지만 그 효과는 지속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노출은 곧 화제’라는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요계를 넘어 최근 스크린에서도 비슷한 바람이 일어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올해 스크린의 가장 큰 흐름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 영화의 급증으로 꼽을 수 있다. 파격적인 노출 연기를 담은 영화들의 기획과 촬영이 분주하게 진행되면서 일찍부터 관객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고 있다. 표현의 소재와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령대가 점차 다양해지는 것도 특징이다.
‘노출은 곧 화제’라는 공식은 스크린에서도 유효하다. 영화 <관능의 법칙>의 한 장면.
<관능의 법칙>이 세련된 노출을 선언했다면 현재 촬영을 진행 중이거나 기획이 추진되는 영화 가운데 그보다 수위를 높인 작품들도 여럿이다. 신예 임지연이 주연한 <인간 중독>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남편의 상사인 남자와 파격적인 사랑에 빠지는 여자의 이야기다. 앞서 <방자전> 등의 작품으로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김대우 감독이 연출을 맡고 임지연과 배우 송승헌이 아슬아슬한 관계를 풀어낸다. 신하균과 신예 강한나가 주연 물망에 오른 <순수의 시대> 역시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영화. 기획단계에서부터 ‘한국판 색,계’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기대를 모은다.
스크린에서 이처럼 소위 ‘야한 영화’가 잇따라 등장하는 이유는 가요계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노출은 관객 호기심과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통한다는 의견이다. 더욱이 청소년 관람 불가로 분류되는 이들 영화는 성인 관객을 겨냥해 좀 더 깊이 있고 자유로운 이야기와 표현이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다. 한국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의 연령층이 최근 20~30대를 넘어 50~60대로 급속히 확대되면서 이런 영화가 통할 수 있는 ‘시장’이 마련된 것도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 늘어나는 또 다른 이유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