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왔다 갔다 하지 않고 장기간 머물면서 일을 하려면 취업 비자가 필요하다. 나는 현재 스위스의 ‘바둑 공식지도사범’이지만, 스위스 바둑협회는 아직 지도사범에게 월급을 주는 시스템은 안 되어 있다. 취업 비자를 받기 어렵다. 그래서 얼마 전에 프랑스 바둑협회 쪽을 알아봤는데, 아주 반가워하면서 오라고 했다. 월급, 취업 비자가 해결되어 지금 제노바에서 그레노블로 옮기는 중이다. 제노바와 그레노블은 자동차로 한 시간 반 거리, 가깝다. 스위스 협회에서도 잘 됐다고 좋아한다. 그러니까 스위스와 프랑스, 두 나라의 공식지도사범이 된 것인데, 거처는 바뀌지만 편하게 양쪽에서 활동할 수 있다.”
황 7단은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 프로기사를 꿈꾸었으나 입단이 여의치 않았다. 바둑TV 진행자도 해 보고 청년 바둑 강자들의 모임인 ‘청아모’의 회장도 맡아보고 했지만, 더 넓은 세계가 그리웠다. 그 무렵 국내에서 ‘영어바둑교실’을 열어 명지대 바둑학과생들과 바둑 해외교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가르쳤던 한상대 교수(73)의 권유와 조언으로 2005년 독일로 건너갔다. 1년쯤 머물렀다. 응수타진의 시간이었다.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돌아와 병역을 마친 후 2009년, 다시 베를린으로 날아가 새로운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황인성-이세미 부부가 함부르크 유럽바둑지도자워크숍에 참가한 모습
“유럽 15개국, 40여 도시를 돌았다. 세미나를 250번쯤 한 것 같다. 그리고 2010년 5월에 인터넷 사이트를 열었다. 이름이 ‘연구생도장’이다. 번역하지 않고 우리말을 그냥 영문으로 쓴다. 연구생은 ‘YUNGUSAENG’ 하는 식으로. 우리 표기법으로는, ‘연’은 ‘YEON’으로 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하면 유럽 친구들은 읽지를 못한다…^^. 대국보다는 복기 위주인데, 반응이 좋다. 자리를 잡았다. 올해 처음에는 미국 쪽도 개설했다. 지역이 상관없으니까 시차만 조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처음에는 대회에도 많이 참가했지만, 강의 레슨이 늘어나면서 요즘은 대회는 1년에 한두 번밖에 못 간다. 그래도 현재 유럽 랭킹 1위다. 얼마 전까지는 2등 이쪽저쪽이었다. 보급하러 갔으니 랭킹에는 연연하지 않았지만, 1등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동안은 중국에서 온 프로, 판 후이가 1등이었는데, 최근 성적이 좀 떨어졌다.”
옆에서 이세미 5단이 거든다. 두 사람은 2011년 결혼했다.
“바둑은 좀 어렵고 딱딱한 면이 있잖아요. 입문 단계는 더 그렇잖아요. 그런데 재미있게, 지루하지 않게, 귀에 쏙쏙 들어오게 핵심을 간결하게 설명해요. 제가 듣기에도, 제 남편이어서가 아니라, 말하자면 바둑은 게임이니까 게임답게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거예요. 또 언젠가는 런던 바둑클럽에서 강의를 했는데, 끝나니까 70대로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우리한테 오더니 내가 바둑 강의를 수십 년 동안 수십 사람에게 들어봤는데, 강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아들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면서 레슨을 받겠다고 3개월 분 수강료를 선불하시더라구요…^^”
황인성 7단이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학에서 강의하는 모습.
“물론 넉넉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대한바둑협회 지원금도 있고 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여행하는 재미도 있구요. 유럽 바둑 인구가 잘 안 는다, 맞습니다. 그게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바둑을, 어떤 부분은 전체를 보면서, 직관으로 이해하는데, 이 사람은 모든 걸 ‘왜?’ 라고 묻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이게 정석이니 일단 이런 식으로 두면서 이해하라고 하지만, 이 사람들은 정석 진행 한 수마다 여기서 이렇게 두면? 저기서 이렇게 두면? 하고 이론적 납득을 원하거든요. 하루에 정석 한 개 나가기가 힘들 때도 있습니다…^^ 부분 부분을 쪼개 이해해야만 하는 겁니다. 전망이요? 밝다고 봅니다. ‘10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이냐?’고 하는 말도 있지만, 100년의 역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잠재력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유럽 콩그레스’ 같은 대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전’과 역사가 같습니다. 인프라도 탄탄해 저들 나름으로는 자부심도 있지요. 그래서 우리가 보급하는 자세도 한번 뒤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세고 너희는 약하다, 우리가 선진이고 너희는 후진이니 가르쳐 주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교류하자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 겁니다. 바둑 인구가 빨리 느는 것도 좋겠지만, 빨리 늘었다가 빨리 식는 것보다는 천천히 가더라도 지속적으로 느는 것이 좋겠지요.”
유럽에도 방과 후 바둑이 있단다. 황 7단은 올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했다. ‘유럽바둑교육협회’를 만들어 바둑 강사를 길러내는 일이다. 시작한 지 한두 달 만에 30명이 신청했다. 절반이 현직 교사다. 이들이 현재 바둑을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은 어떤 선생님은 한두 명, 어떤 선생님은 수백 명 해서 약 1000명. 단기 목표는 3000명이다. “우리가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는 것 가르쳐 주자”면서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후원자가 있는데, 밝히지 말기를 원한단다.
프랑스 그레노블 초등학교 바둑축제 모습.
“후배들에게요? 물론입니다. 유명인사요? 바둑 두는 사람들은 저를 다 알지요…^^ 그러나 저와는 비교가 안 되게, 훨씬 유명한 우리 대선배 분들도 계십니다.”
황 7단은 옛날에는 호리호리한 꽃미남이었는데, 지금은, 여전히 호리호리하기는 하지만, 얼굴은 신념 있게 내 길을 열어가는 장년의 모습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