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왼쪽)과 구리 9단.
초반은 이세돌 9단이 좋았다. 이세돌 9단은 초반이 ‘덜 강하고’, 구리 9단은 종반이 ‘덜 강하다’는 것이 통설인데, 이날 이 9단은 초반, 좌변에 상당한 집을 짓고, 구리 9단의 ‘모양’을 적절히 삭감해 국면을 우세로 이끌었다. 검토실에서는 이 9단이 이겼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구리 9단은 유리한 바둑을 끝내기에서 역전당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오늘은 유리하지도 않고, 더구나 이 9단은 중반 전투는 말할 것도 없고 끝내기도 정교하니까. 두 사람은 ‘전투의 달인들’인지라 만났다 하면 예외 없이 시종 어지러운 전투로 일관하곤 했지만, 이날 바둑은 큰 싸움 한 번 없이 집바둑으로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중반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세돌 9단에게서 두어 번 ‘약간의 욕심’과 ‘사소한 완착’이 나타났고, 구리 9단이 그걸 놓치지 않았다. 두 번의 기상천외한 붙임으로 감각이란 이런 것, 수읽기란 이런 것, 그런 걸 보여 주면서 백진을 흔들었다. 이세돌은 고향에서의 일전이 오히려 부담이 되었던 것인지, 마지막에 가서는 ‘한집 반’의 차이가 부동인 것을 확인하고는 돌을 거두었다. 지금까지 네 판 중 가장 이른 시간의 종국이었다.
이번 대회는 제한시간 각 3시간55분에 1분 초읽기 5회. 후원사는 ‘몽백합배 세계대회’를 몽백합그룹의 ‘헝캉(恒强)가구과학 주식회사’. 이기면 8억 3000만 원, 지면 교통비 정도를 받는다. 지난번에도 말했듯 구리 9단은 ‘충칭(重慶)의 별’이다. 쓰촨성 관할에 있다가 직할시로 승격한, 중국 4대 직할시의 하나인 충칭이 구리 9단의 고향이고, 몽백합그룹은 충칭의 대기업. 고향의 정부와 기업은 스타 구리 9단을 그야말로 극진히 아낀다.
표에서 보듯 이번 10번기는 중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두어진다. 샹그릴라, 라싸 등은 쉽게 가보기 힘든 곳이며 그밖의 장소들도 경관을 자랑하는 명승지다. 구리와 구리의 10번기를 위한 배려로 전해진다.
이광구 객원기자
약간의 욕심이 화 불렀다 흑 - 구리 9단 백 - 이세돌 9단 <1도>를 보자. 10번기 제4국이다. 백1로 좌변을 부풀리고 잇다. 흑은 좌하귀를 향해 2, 4로 젖혀 이은 후 기다린다. 이 9단은 백5로 한 번 더 못질을 한다. 좌변은 완벽한 백집이다. 그런데 이 순간 섬광과 같은 흑6의 붙임, 이게 모두들 놀라게 만든 응수타진이었다. 게다가 백7의 후퇴. 천하의 이세돌이 그것도 완벽한 자신의 진영에서 물러서다니. 계속해서 흑이 A로 들어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별 게 없는 건데. 그러나 흑B가 선수가 된다. 이런 활용을 만들어 놓았다. 흑B가 왜 선수인가, 그게 어떤 활용 가치인가는 잠시 후에 보거니와 검토실의 얘기를 옮기자면 “백1은 ‘약간의 욕심’이었고, 역시 A로 구축하는 게 온당했다는 것. 그런데 이런 데서 이 한 줄의 차이를 어떻게 미리 알 수나 있는 걸까. 흑6 같은 응수타진은 어떻게 착상할 수 있을까. 훈련과 경험은 아니다. 검토실의 이구동성처럼 “본능적 직감”이다. “훈련과 경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훈련과 경험 없이 나오기는 힘든 것”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백이 이걸 응징하는 수단은 없는 걸까. <2도> 백1로 차단하면 어떻게 되나? 좌하귀 흑2부터 공작을 시작한다. 백은 물러설 수 없다. 근소한 차이의 국면, 이런 데서 물러서는 것은 대마가 잡히는 것과 같다. 백3이면 흑4로 젖히는 수, 이런 게 있다. 백5로 끊으면 흑6으로 돌려쳐 놓고 8, 10으로 터를 잡는다. 흑도 그냥 살지는 못한다. 그러나 패가 나면 백은 견딜 수 없다. <3도> 백1, 후퇴를 하더라도 이쪽이 낫지 않을까? 그건 더 안 된다고 한다. 역시 흑2부터 발동해 4로 들어가고 6으로 올라가 <4도> 흑2로 끊는다. 백3이면 또 흑4. 백5일 수밖에 없고, 흑은 6부터 죄어가 백A, 흑B, 백C, 흑D로 완생해 버린다. <3도> 백1로 <4도> A쪽에서 막아도 수순과 결과는 대동소이. <5도> 흑1은 <1도>에서 ‘차후의 선수-활용’이라고 했던 흑B. 백2에는 흑3을 선수하고 5로 붙여간다. 하변 흑진의 부피가 전혀 달라지는 것. 한 집, 반 집에 목이 타는 마당에서 이건 소나기다. <6도>는 한참 후의 장면. 백1 때 흑은 백3을 보면서도 2쪽을 돌본다. 백3, 5로 알뜰히 다지자, 여기서, 또 한 번 흑6의 붙임. <1도> 흑6이라는 본능적 직감의 변주곡이었던 것. <1도> 흑6을 생각한 사람이 없듯 <6도> 흑6을 생각한 사람도 물론 없었다. 대국 당사자인 이세돌 9단은 이 수를 생각했을까. <7도> 백1로 한 번 감는 척하다가 3으로 막았다. 그러자 흑4의 끊음부터 12까지 <5도>와 비슷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이제 흑은 근소하지만 확실히 앞서게 되었고, 끝내기가 ‘덜 강한’ 구리 9단이지만 오늘은 그 차이를 끝까지 지켜냈던 것. 검토실이 말했다. “앞서 2연패하면서 뭔가 새로운 걸 연구한 모양이네.” 이번 제4국은 섬광과 같은 두 개의 붙임으로 곳곳에 소나기구름이 생긴 바둑이었다. 천하의 싸움꾼 이세돌 9단도 그 불의의 소나기를 미처 피할 시간이 없었던 것. [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