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각 당 대표들의 ‘기득권 버리기’ 선언과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하기 위해선 서울 진입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결국 정 의장의 중대 결심을 부채질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19일 관훈토론회에서 종로 출마설에 대해 정 의장 본인이 “당에서 판단한 대로 따르겠다”고 밝혀 그 가능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종로 출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2일 여균동, 김선배씨 입당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정 의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러나 당내에선 정 의장의 종로 출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치적 상징성이 높은 종로 지역에 내보낼 마땅한 후보감이 없다는 점이 그 첫 번째 이유다.
당초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거물급 영입 인사를 종로 지역에 출전시켜 한나라당 박진 의원과 맞붙일 생각이었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MBC 아나운서 손석희씨나 2002년 8·8재보선에서 박진 의원에 패했던 유인태 전 정무수석이 후보로 거론됐으며 한명숙 전 환경부 장관과 정 의장의 MBC 후배이기도 한 박영선 대변인 등도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손씨는 강력한 거절 의사를 전해왔고 유 전 수석도 일찌감치 충북 제천·단양과 서울 도봉 을 두 곳을 출마 예상 지역구로 잡아놨다가 도봉 을 지역으로 최종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 관료 출신 중 마지막으로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한명숙 전 장관에게도 정 의장측이 종로 출마를 권유했지만 한 전 장관은 현역의원들이 모두 불출마 선언을 한 경기 일산 갑 지역이나 을 지역 중 한 곳에 나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한 전 장관측은 “정 의장이 직접 종로에 출마하게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영선 대변인도 ‘종로 차출설’이 나돌았지만 본인은 “지역구 출마에 뜻이 없다”면서 비례대표 상위 순번 배치를 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정 의장이 영입한 인사들 모두 당선 가능성이 불투명한 종로 지역 출마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종로에 대한 당내 ‘대안부재론’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정 의장의 중대결심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나라당의 ‘환골탈태’ 여부가 정 의장의 종로 출마 결심에 중대한 변수가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최병렬 대표가 ‘백의종군’을 표방하며 새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소집을 선언하자 열린우리당에서도 다소 긴장하는 듯한 분위기다. 이미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을 뛰어 넘어 1위를 달리고 있는 열린우리당 입장에선 호남에서 민주당을 견제하는 것보다는 수도권에서 한나라당과 승부를 가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정 의장의 한 측근인사는 “한나라당과 최병렬 대표의 환골탈태와 열린우리당과 정 의장의 거취문제를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인사는 “정 의장이 당을 위한 결단을 내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며 “만약 정 의장이 종로 출마를 결심한다해도 3월 중순쯤 돼야 가시화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구성하고 총선 준비를 완료하려면 최소한 3월 초순은 지나야 한다. ‘새 단장’을 마친 한나라당의 지지세가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고 대구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조순형 대표의 대구 민심 파고들기가 탄력을 받을 경우 열린우리당이 내놓을 수 있는 ‘히든 카드’ 중 하나로 정 의장의 종로 출마가 고려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열린우리당 각 지역구 출마자 경선 결과도 정 의장의 종로 출마 가능성을 높여주는 변수라는 지적도 있다.
권오갑 전 과기부 차관이나 김용석 전 청와대 인사비서관 같은 거물급 영입 인사들이 지역구 출마후보 경선에 패하자 정부 관료 출신들이 나서는 일부 지역구에서도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당내 경선이 마무리되는 3월 초순께가 되면 거물급 영입인사들을 비롯한 경선 탈락자들의 불만의 함성이 커질 수 있다. 이럴 때 정 의장이 두 번 연속 최다득표를 한 전주 덕진 지역에서의 기득권을 버리고 종로 출마 선언을 한다면 흐트러질 수 있는 당 분위기를 일시에 재정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정 의장은 자신의 지역구보다는 전국 순회 선거운동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 대한 출마 선언을 미룬다고 해서 총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 덧붙였다.
물론 정 의장의 종로 출마에 대한 역풍의 기미도 있다. 지난 2월21일 열린우리당 전북도지부가 ‘정 의장의 지역구 이전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는 등 정 의장의 지역구 이전이 본격화될 경우 당내 호남 지역 인사들의 반발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제1당 자리를 놓고 싸우기 위해 정동영이 서울로 간다’는 대의를 내세울 경우 내부 반발은 소폭에 그칠 것으로 당내에선 관측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정 의장의 결단과 그 시기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