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국가대표 상비군이 태극마크를 달고 중국 정벌에 나섰다.
▲남자 국가대표 7명 : 박정환 김지석 이세돌 최철한 박영훈 강동윤 조한승 9단. 현 랭킹 1~7위의 얼굴이다. 이세돌 9단은 기술위원과 선수를 겸한다.
▲여자 국가대표 4명 : 박지은 조혜연 9단, 김혜민 7단, 최정 4단
▲남자 상비군 A팀 8명 : 1989년 이후 출생. 안성준 5단, 김정현 이지현 나현 4단(이상 시드) 김세동 5단, 안국현 4단, 한태희 류수항 3단(이상 선발전).
▲남자 상비군 B팀 6명 : 1996년 이후 출생. 이동훈 변상일 3단, 한승주 신진서 2단, 김진휘 신민준 초단.
▲여자 상비군 4명 : 김윤영 3단, 오정아 2단, 오유진 박태희 초단(이상 선발전).
▲육성군 4명 : 김채영 2단, 최영찬 설현준 김명훈 초단(국가대표나 상비군과는 별도로 감독 추천)
국가대표팀 남녀 주장은 김지석 9단과 김혜민 7단, 전체 주장은 김 9단이다. 국가대표 상비군의 목표는 물론 중국이다. “더 이상 머뭇거리다간 바둑 2류국가로 고착될 것”이라는 위기감의 발로다. 박치문 한국기원 부총재도 유창혁 감독도 발대식에서 격려사와 인사말을 통해 중국을 언급했다.
남녀 주장인 김지석 9단(오른쪽)과 김혜민 7단의 선서 모습.
국가대표 선수는 일주일에 네 번,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국기원에 나와 자발적으로 공부한다. 상비군은 일주일에 다섯 번,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동연구를 하며 자체 리그전을 벌인다. 프리랜서의 시절은 끝났고, 이제부터는 한국기원이라는 직장에 출퇴근해야 한다.
유창혁 감독과 최명훈 코치, 김성룡 전력분석관은 국가대표 상비군 훈련을 위해, 수입의 현저한 감소를 각오하고 다른 일들을 다 놓았다. 국내 프로기사 가운데 가장 바쁜 조혜연 9단도 미8군 바둑강의 하나만 남기고 다 접었다. 뒤풀이자리에서 기자들과 어울린 김성룡 9단이 열정의 달변으로 많은 얘기를 쏟아냈다. 바둑TV 해설자 김성룡 9단에 대한 팬들의 느낌은, 재미있다, 시원시원하다는 것과 실수가 많고 가볍다는 상반된 두 가지다. 그러나 직접 만나 오랜 시간 들어보니 버릴 말이 없다. 고민과 경험의 내공이 가슴에 와 닿았다.
“오늘 밤에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에게 이 티셔츠를 입히고 사진 찍을 겁니다. 아빠가 국가대표가 되었다고 말해 줄 겁니다. 집사람에게는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할 겁니다. 다른 선수들도 저하고 비슷할 겁니다. 모두들 너무 좋아합니다. 지석이는 어디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에 주장을 맡으라고 하니까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하겠다고 했습니다. 태극마크의 위력이랄까, 그 자부심이 이런 정도인 줄을 미처 몰랐네요. 다른 운동 선수들이 왜 그렇게 태극마크, 태극마크 하는지 알겠더라구요.”
“정신 무장이 우선입니다. 우리 젊은 기사들 여유 있는 사람이 많아요. 타이틀 한 번 딴 적이 없는데도 연봉 1억이 꽤 있습니다. 중국리그 뛰고 세계대회 본선 올라가고 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 생활에 불편이 없고,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고, 악착같이 공부하겠다는 마음도 점점 약해지고,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일류기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이 무슨 일류기사냐고 그럽니다. 공동연구요? 저도 나이가 많지 않지만, 벌써 후배들과는 세대 차이가 납니다. 우리 때는 선후배가 모여 같이 연구하는 걸 당연히 여겼는데, 요즘 젊은 기사들은 생각이 다른 것 같아요. 타이젬에서 두는 게 제일 좋은 공부라는 겁니다. 한국 중국의 일류들과 수시로 둘 수 있고, 그들이 두는 걸 구경하면서 새로운 수법들도 다 배울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중국에게 밀린 게 타이젬 때문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타이젬에서 두는 게 나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자세로 두느냐, 그게 중요하겠지요.”
감독으로 나선 유창혁 9단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정평이 나 있다.
“바둑 규칙, 대국 규칙이라는 게 정확하겠는데, 이번에 국가대표 시작하는 것을 계기 삼아 몇 가지 바꾸어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점심시간 없애야 합니다. 아니, 바둑도 이제는 스포츠인데, 축구 경기 하다가 중간에 밥 먹고 오는 게 어디 있습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예전에 외국 기사들 중에는 점심시간에 여럿이 같이 안 먹고 혼자 자기 방에 들어가 룸서비스로 시켜먹는 사람도 있었어요. 혼자 뭐 하겠어요. 연구할 거 아닙니까. 배고프면 잠깐 옆에 가서 빵을 먹든지 샌드위치를 먹든지, 그러면 됩니다. 또 초읽기에 들어가면 화장실도 못 가게 해야 합니다. 가겠다면 초읽기를 멈추지 말아야지요. 그러면 못 갈 것 아닙니까. 지금은 대국 중에 화장실 갈 때는 시계를 정지시키고 가지만, 그것도 없애야 합니다. 자기 시간 안에서 해결하라는 겁니다. 계시기도 대국자가 직접 누르게 해야 합니다. 요즘 이세돌 9단, 구리 9단 10번기 보세요. 점심시간 없지요, 시계도 각자 누르잖습니까. 야아~ 상금이 9억인 세기의 대결인데 어떻게 대국자들이 직접 누르게 하냐, 예의가 아니잖으냐? 그게 아닙니다. 중국 바둑 규칙의 엄격성이나 공평성에서는 우리가 배울 점이 아주 많습니다. 또 대회 심판도 그렇습니다. 중국 어떤 대회에 가보니까 프로대회인데 심판이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대회 진행을 한눈팔지 않고 지켜보는 겁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싶으면 프로기사를 불러서 해결하는 겁니다. 대회 진행을 엄격히, 공정히 하는 게 중요하지, 바둑을 말고 모르고는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지요.”
문제는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해진 프로기사들이 과연 스파르타 훈련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처음엔 의욕적으로 하겠지만 얼마나 버티겠느냐는 것. 그에 대해서는 유 감독이나 최 코치, 김 분석관 모두 단호하다. 버티지 못하거나 싫다면 언제라도 즉시 탈퇴시킨다는 것. 유창혁 9단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정평이 나 있다. 20대 때도 그랬다. 후배들이 무서워하는 선배였다. 최 코치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기사로 첫 손가락에 꼽힌다. 김 분석관은 선후배에게 서슴없이 직언, 고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말한다. “이제 우리가 열심히 하면 중국에게 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길 것”이다. 그럴 것 같다. “우리는 위기에 강하니까.” 발대식장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했다. 그 감동이 오래 가기를. 그 감동으로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창밖에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있듯”이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조용히 만리장성을 넘어와 있기”를.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