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 일대의 거리에서는 분향소로 가는 표지판과 세월호 내용을 담은 현수막은 곧잘 눈에 띄었지만 지방선거와 관련된 홍보물이나 홍보 활동을 하는 후보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 14일 안산 단원구 고잔동 중앙역 주변.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지난 14일 오전 취재진은 안산 선부동을 찾았다. 안산의 와동, 선부동, 초지동, 고잔동 등은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이번 지방선거 후보들에게도 여파가 큰 지역이다. 안산시 일대의 도로와 길가에는 분향소로 가는 표지판과 세월호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지만 지방선거와 관련된 홍보물이나 홍보 활동을 하는 후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는 큼직한 홍보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대부분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기 전 걸어놓은 예비후보자 현수막들이었다. 그중 건물에 현수막을 걸지 않은 새정치민주연합 안산시의원 후보 관계자는 “같은 건물에 다른 후보들 현수막은 다 걸려있는데 우리 현수막은 없어 찾기가 힘들 거다. 현수막을 걸려던 찰나에 세월호 사고가 터졌기 때문에 현수막을 걸 수가 없었다”면서 “곧 조용한 분위기의 현수막을 만들어 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로 지금까지 선거 활동을 올스톱했던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22일부터 본격적으로 유세차 등을 이용한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후보들은 애도 분위기 속에서도 다가오는 선거일을 위해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기자가 기초선거 후보자들의 캠프를 방문했을 때 후보자들은 유세차를 빌리고 점퍼를 맞추는 등 유세 준비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애도 분위기에 맞게 조심스러운 유세 전략을 모색하는 분위기였다.
선부동의 새누리당 기초의원 후보자는 “유세차도 쓰지 못할 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져 다들 유세차를 빌리는 분위기다. 그동안 선거 활동을 하나도 하지 못해 본격적인 유세 기간인 13일간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선거 로고송은 조용한 음악으로 하려 한다. 애도 분위기에 맞게 주민들에게 다가갈 때도 전보다 조심스럽게 할 예정이다. 안산시 새누리당 후보들은 중앙당처럼 하얀 점퍼로 맞추기로 했다. 나도 빨간 점퍼를 주문했다가 다시 하얀색으로 바꿨다. 명함도 빨간색을 최대한 빼고 만들었다”고 전했다.
앞서의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하얀 점퍼를 선점했으니 새정치연합 측도 어떤 색을 해야 할지 지역 후보들과 상의하고 있다”며 “유세차도 빨리 빌려야 하는데 후보 본인이 진도와 분향소를 오가며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어 아직 하나도 준비하지 못했다. 로고송은 만들지 않고 유세차만 조용히 다닐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안산시장 후보로 제종길 전 의원을 전략공천하면서 현직인 김철민 시장이 여의도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김 시장과 또 다른 예비후보인 박주원 전 안산시장은 전략공천을 반대하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새정치연합의 분열은 지역 정가에서는 그동안 김철민 시장과 박주원 전 안산시장이 라이벌로 다퉈왔지만 갑작스런 제 후보의 등장에 내부가 더욱 시끄럽게 됐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안산시 와동의 새정치연합 기초의원 후보 관계자는 “제종길 후보는 이 지역에서는 크게 활동하지 않았고 김철민 시장과 박주원 전 시장은 이미 세를 확보하고 있어 이번 선거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서로 공격할 자료를 모으며 경쟁이 치열했다. 이렇게 분열이 심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특히 와동 지역은 유동 인구가 많아 주민들이 지방선거 투표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항상 투표율이 최하위였는데 이번 세월호 참사로 투표율이 더 낮아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안산 단원구 선부동에 있는 한 건물 외벽에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지역 정가 사정에 밝은 안산시 향우회 관계자는 “그동안 김철민 시장 쪽을 많이 도와 와서 이번 전략공천은 안타까운 면이 있다”면서도 “세월호 참사로 새누리당의 지지도가 떨어져 새정치연합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졌다. 그런데 여기는 새정치연합 후보가 3명이고 새누리당은 1명뿐이니 이 상태로라면 새누리당 후보가 이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새정치연합의 후보 갈등에 대해 새누리당도 호재로 받아들이며 상대적으로 조용한 선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조빈주 안산시장 후보 캠프를 돕고 있는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오늘 안산시장 후보 캠프에서 첫 회의를 하며 본격적으로 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세월호 사고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새정치연합이 분열돼 상대적으로 우리 측이 유리해졌다고 본다. 새누리당은 고정층이 있으니 부동층만 사로잡으면 된다. 충청도 출신이면서 행정에 능한 관료 출신인 조빈주 후보를 내세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안산시에는 30% 정도가 충청도 출신”이라고 귀띔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물밑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시민들의 마음은 냉랭하기만 하다. 오후 4시 선부동 상가 거리는 조용했다. 선부동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박 아무개 씨(58)는 “사고 초반에는 이 거리에 주민들이 나와 목 놓아 이름을 부르며 울 정도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지금은 분향소에서만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전보다 분위기가 확실히 나아진 편”이라면서도 지방선거 분위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박 씨는 “나는 이 지역에 살면서 그동안 꾸준히 투표를 해왔지만 이번에는 할지 잘 모르겠다. 상가연합회 사람들 중 이번 일로 20명이 가족을 잃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 집 걸러 한 명씩은 세월호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인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사고 이후로 상인들이나 주민들도 정치 얘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주민들 모임도 대부분 사라져 음식점들이 장사가 안 돼 문 닫을 지경”이라며 손사래 쳤다.
친구와의 만나기 위해 나온 정 아무개 씨(23·선부동)도 “그동안 투표를 해 와서 이번에도 하긴 하겠지만 여야 후보 중 어느 후보를 찍을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후보들의 공약이나 정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서 투표 전에 후보들이 활동하면 보고 어떤 후보를 할지 고를 생각”이라며 “여야 중 정치성향이 있긴 하지만 세월호 분위기에서 그런 얘기를 입에 담는 것도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안산 주민들 중 아이를 가진 주부들은 사뭇 다른 의견을 내놨다. 선부동에 사는 김 아무개 씨(여·42)는 “내 친구 딸아이도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처음에는 아이를 잃은 학부모들과 마주칠까봐 집 밖으로 아예 나오지 못했다”며 “지금껏 정치인들은 모두 똑같다고 생각해서 투표에 관심이 없었지만 학부모들을 위해서도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이번엔 꼭 투표할 계획”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고잔동에 거주하는 김 아무개 씨(여·52)는 “세월호 사고 이후 동네 친목 모임에 나가면 평소와 달리 정치 얘기가 나온다”면서 “어떤 정치인을 찍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선… 분위기 누그러지자 정치인들 속속 발길 참사 한 달이 지난 5월 14일, 취재진이 방문한 안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는 비교적 한산했다. 조문객 수가 많지 않았고 분향소에 있는 사람들은 몇몇 추모객들을 제외하면 자원봉사자들과 유가족, 경찰이 대부분이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오던 한 30대 남성은 “서울에서 시간 내서 조문을 몇 번 왔다”며 “전에 분향소에 방문했을 때는 사람들이 많아 입구까지 조문객 줄이 있었는데 지금은 추모객 수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방문한 안산 화랑유원지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 조문객 수가 많이 줄어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분향소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그동안 방문한 추모객들이 달아놓은 노란 리본이 줄지어 있었고 분향소 건물 출구에서는 유가족들이 진실규명운동 서명을 받고 있었다. 분향소 내부도 추모객들이 한 줄이 안 될 정도로 적은 수였다. 분향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여·41·인천)는 “지금 분향소 안에 추모객이 얼마 없어 내가 들어가서 있어야 되나 싶을 정도다. 나도 처음에는 분향소에 들어올 때부터 울면서 왔지만 나조차도 점점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더라”면서 “세월호 사고가 사람들에게 너무 빨리 잊히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곳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은 유가족들뿐인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격앙됐던 분위기가 차츰 누그러지자 분향소를 향한 정치인들의 발길도 다시 이어지고 있다. 분향소에서 만난 한 정치 관계자는 “진도에서부터 분향소까지 계속 천막을 치고 같이 있었는데 이곳 분위기가 전보다 많이 누그러져 정치인들이 조용히 다녀가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가족들에게 정치인은 달갑게 여겨지지 않는 분위기다. 이날 오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방문 때도 마찬가지였다. 앞서의 자원봉사자는 “문재인 의원이 왜 유가족 천막 안에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유가족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신이 지쳐가고 있어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도 유가족들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한다”며 “문 의원의 방문으로 유가족들의 천막 안이 한 차례 시끄러웠다. 어떤 정치인이든 그 안에는 들어가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분향소를 방문한 김 아무개 씨(여·42·선부동)는 “아직 시신 수습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진상 규명이나 해결책 등을 내놓은 정치인들이 하는 얘기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면서 “시신을 찾은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 운동을 하고 있지만 반대로 아직 찾지 못한 사람들은 진도에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나.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정치권에서 좀 생각해줬으면 싶다”고 전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