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0일 밤 11시경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인근 순천향대병원 응급실로 옮겨 왔다. 응급실에서 심장마비 증상을 보여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한 이건희 회장은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돼 심혈관 확장시술을 받으며 큰 고비를 넘겼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지난 15일 “현재 이건희 회장은 저체온 치료를 끝내고 진정치료를 진행 중”이라며 “심장 기능 및 뇌파는 안정적으로,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런 입원 소식은 재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이 회장뿐만 아니라 현재 재계에는 총수의 건강 문제로 고심하는 그룹들이 많이 있다.
4월 24일 이재현 CJ 회장이 부축을 받으며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이 회장은 항소심을 시작하면서 재판부에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지난 4월 30일 서울구치소에 재수감됐다. 그러나 수감된 지 14일 만에 이 회장은 혈중 면역억제제제 농도가 낮아져 진단을 위해 서울대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CJ그룹 관계자는 “재판부에서 구속집행정지를 허가한 것이 아닌 구치소의 허가 하에 입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감방을 병실로 옮긴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자는 “이 회장은 병원에서 지속적으로 상태를 체크하며 치료를 받고 재활을 해야 하는데 구치소에서는 힘들다”며 “지난해 말 서울대병원 입원 때부터 이 회장은 체중이 줄기 시작해 최근 몇 개월 사이에 10㎏가량 급격히 감소한 모습을 보였다. 조만간 변호인 측에서 이 회장에 대한 구속집행정지를 재신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62)도 그간의 사법처리와 건강상 문제로 경영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상황이다. 지난 2월 파기환송심을 통해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구속에서 풀려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62)은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출국했다 한 달여 만인 지난 2일 한화케미칼의 업무용 항공기편을 통해 귀국했다. 김승연 회장은 구속기간 동안 만성 폐질환으로 인한 호흡곤란, 당뇨, 우울증 등 증세를 겪어왔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4월 15일 항소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구급차를 타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오는 모습(왼쪽)과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18일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기 위해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법원 청사로 들어서는 모습. 임준선·구윤성 기자
귀국은 했지만 김 회장은 서울 가희동 자택에 머물며 서울대병원으로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주치의가 건강 상태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 귀국한 것으로 알고 있다. 김 회장의 건강에 조금의 차도는 있지만 여전히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아직 건강회복에 전념하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 시기인 만큼 경영일선 복귀는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섣부른 전망에 선을 그었다. 김 회장은 집행유예 선고 직후 지주회사인 한화를 포함해 한화L&C, 한화테크엠, 한화건설, 한화갤러리아, 한화이글스, 7개사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바 있다. 한화그룹은 현재 김 회장의 경영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5인의 비상경영위원회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김 회장의 후계구도도 속도를 내고 있다.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략마케팅 실장은 그룹의 차세대 주력사업인 태양광 사업을 이끌며 사업체질계선에 나서고 있다. 대마초를 수차례 흡입한 혐의로 지난 2월 인천지법에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차남 김동원 씨도 최근 한화L&C에 입사한 후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소속 디지털팀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있다.
수백억 원의 회사돈을 빼돌리고 분식회계를 통해 1000억 원대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75)도 암으로 투병 중이다. 조석래 회장은 지난 2010년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고 절제 수술을 한 바 있다. 이어 올해 초 검찰 수사 단계에서 전립선암도 발견돼 현재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또한 조 회장은 고령에 심장 부정맥 등 지병이 있어 혼자 거동하기도 불편한 상태라고 한다.
반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91)은 구순이 넘는 나이로 대기업 총수 가운데서도 고령에 속하지만, 양호한 건강상태를 유지하며 총괄회장으로서 롯데그룹의 주요 사안을 직접 챙기는 등 왕성한 경영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타고난 건강과 체력을 과시하던 신 회장도 지난해 건강에 큰 위기를 맞을 뻔 했다. 신 회장은 지난해 12월 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 있는 숙소 겸 사무실에서 넘어져 한쪽 고관절(엉덩이관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뼈가 완전히 어긋나지는 않고 부러져 금이 남았다. 신 회장은 바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
확실히 건강을 타고난 탓일까.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신 회장은 경과가 좋아 물리치료를 받으며 입원한 지 18일 만에 퇴원해 경영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격호 총괄회장은 지난해 12월 24일에 퇴원해서 이틀 후인 26일 다시 경영 보고를 받을 정도로 빠르게 회복됐다. 수술 이후 다른 건강상의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 회장이 고령이니만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힘든 운동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수술을 받기 전에는 청계천 주변을 걷는 정도의 운동을 했다. 나이가 많다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왕성하게 활동하며 업무를 보는 것이 신 회장의 건강 유지 비결인 것 같다”고 전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가장 고령의 경영자에 속한다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45)은 재벌가에서 가장 젊은 오너에 속한다. 최근 신세계 인문학 콘서트 <지식향연> 등 대외활동에 모습을 드러낸 정용진 부회장은 남다른 풍채를 자랑한다. 180㎝의 키에, 90㎏의 몸무게로 넓은 어깨의 역삼각형 몸매를 가지고 있어 웬만한 보디빌더 못지않다.
다른 재벌 총수에 비해 젊기도 하지만 정 부회장의 건강 유지 비결은 ‘헬스’다. 정 부회장이 헬스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부터로, 의사의 권유로 허리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후 정 부회장은 거르지 않고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몸 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워낙 헬스를 좋아하기도 하고, 운동을 안 하면 살이 찌는 체질이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헬스를 한다”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몸이 좋다보니 활기찬 모습의 젊은 경영인 이미지에 맞아 떨어진다”고 전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번 이건희 회장의 입원 등 몇 경우를 제외하고, 조석래·김승연·이재현 회장 등 총수들의 지병이 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재판이 진행되면서 알려졌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들이 나이가 있다 보니 조금씩 지병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룹 경영에 불안요소가 될까봐 꾸준히 검진만 받고 감추고 있을 수도 있다”며 “그러다 검찰 조사 등을 받으면 몸을 제대로 관리하기도 상황이 어렵고,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 때문에 심하게 발병하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오너들의 건강 문제가 그룹에 위기를 줄 정도로 영향을 미칠까.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기업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국내 대기업은 총수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가 강하다. 특히 오너가 아니면 결정하기 힘든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 등의 판단이 힘들어져, 중장기적으로 그룹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도한 해석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에서도 총수가 아닌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한 경영 시스템이 정착됐다”며 “삼성의 경우도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경영 판단이 이뤄지고 있다. 이번에 이건희 회장이 입원 치료 중임에도 오히려 삼성전자 주가가 3.97% 급등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