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야 할 숙제는 하나였다.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라는 25세의 청년은 왜 존 레넌을 죽인 걸까? 광적인 팬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였고, 잔혹한 연쇄 살인범이나 킬러와도 거리가 먼 이미지였다. 알려져 있는 가장 큰 암살 동기는 존 레넌의 신성 모독이었다. 레넌은 비틀스 시절에 “우린 예수보다 유명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에 채프먼은 격분했다고 한다. 레넌이 가식적이라고도 생각했다. 채프먼은 레넌이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면서 수백만 달러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Imagine’ 같은 노래에선 “무소유를 상상해 보세요(Imagine no possessions)”라고 말한다고 비난했다. 채프먼의 아내인 일본계 미국인 글로리아 아베의 말에 의하면, 채프먼은 ‘Imagine’의 가사를 “존 레넌이 죽었다고 상상해 보세요(Imagine John Lennon is dead)”라고 바꿔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채프먼은 비틀스와 레넌의 팬이었지만, 서서히 증오심을 키우며 그들의 앨범을 불태웠고, 결국엔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가 레넌만 타깃으로 삼은 건 아니었다. 토크쇼 진행자인 자니 카슨을 비롯해 유명 앵커인 월터 브롱카이트나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그리고 배우인 말런 브랜도와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도 그의 리스트에 있었다. 하지만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자신을 노출했던 레넌이 가장 쉬운 암살 대상이라 생각했고, 범죄를 저지른 후 자유의 여신상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계획도 세운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내면은 왜 이토록 황폐해진 걸까? 6개월에 걸친 당시의 심문 기록을 보면, 채프먼은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폭력에 억눌린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때부터 끊임없이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곤 했다. 14세부터 마약을 시작했고, 학교보다는 거리에서 생활했다.
킬러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채프먼이 존 레넌을 암살한 동기는 바로 존 레넌의 신성 모독과 가식적인 행동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때 그를 받아준 곳이 있었다. 바로 교회였다. 그는 16세 때 YMCA 여름 캠프에서 카운슬러로 봉사했는데,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좋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았던 순간이었다. 이때 만난 친구가 권한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특히 어린 채프먼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경비 일을 하면서 대학 진학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그는 하와이로 갔다. 이후 우울증을 겪던 채프먼은 22세 때 자살을 시도했고, 이후 심리 치료를 받았다. 이후 야간 경비 일을 하면서 알코올중독에 빠진 그는 점점 편집증적인 인간으로 변해갔다.
1980년 10월에 존 레넌을 죽이러 뉴욕으로 갔던 그는 일을 저지르지 않고 하와이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 준비했고, 아내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아내는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12월 6일에 다시 뉴욕으로 간 채프먼은 쉐라톤 호텔에 묵었고, 12월 8일 오전에 호텔을 떠나 레넌이 사는 다코타 빌딩 근처로 갔다. 가는 길에 서점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한 권 샀다. 오후에 레넌을 만나 사인을 받은 그는 잠시 망설였고, 자신의 호텔 방으로 돌아가려고도 했다. 하지만 애초의 계획을 실행했다. 존 레넌을 죽인 것이다.
사건 이후 6개월에 걸쳐 열 명 이상의 정신과 의사들이 200시간 이상 채프먼을 인터뷰했다. “나의 가장 큰 부분을 형성하는 건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정신 세계다. 나머지 작은 부분은 아마도 악마일 것”이라고 말하는 채프먼에게 변호사는 정신분열증과 조울증과 인격 장애가 뒤섞인 사이코라고 결론 내렸고, 법정에서 무죄라고 주장했다. 망상에 사로잡혀 저지른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판결 직전의 공판에서 채프먼은 자신이 유죄이며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판사는 채프먼의 발언이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며, 그에게 20년 형을 선고했다. 채프먼은 자신이 죄를 인정한 건 신의 뜻에 따른 것이라며, 최종 변론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의 한 구절을 읽었다. 주인공 홀든이 동생 피비에게, 자신이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말하는 장면이었다.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앨범 중 존 레넌의 사진. 일부 호사가들은 오른쪽의 문구에 그의 죽음이 예견돼 있었다고 주장한다.
음모론도 생겨났다. 특히 FBI의 관련성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FBI의 J. 에드거 후버는 레넌을 극도로 싫어했다. 레넌을 체포해 국외로 추방시키고 싶다며 닉슨 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할 정도였다. 1970년대 내내 레넌을 감시했고, 이 기록은 1997년에 일부분이 삭제된 채 공개되었다. 삭제된 부분은 영국 정보기관과 관련된 부분으로 추측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존 레넌의 죽음이 이미 예견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들이 1967년에 발매한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앨범의 소책자엔 존 레넌의 사진 옆에 “The best way to go is by M D & C”라는 글씨가 있다는 것. “(죽음으로) 가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M D & C를 통하는 것”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M D & C은 레넌을 죽인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존 레넌에 관련된 음모론은 점점 알 수 없는 영역으로 치달았고, 그 근원엔 “폴 매카트니가 사실은 죽었다”는 기이한 이론까지 결합되어 있었다. 다음 주엔 그들에 대한 음모론을 전할 예정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