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깨끗한 선거’를 갈망했던 국민들의 바람과 달리 각 당의 공천자 선정 과정에서부터 ‘돈 드는’ 선거전이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민주당 등 주요 3당 공천을 희망한 인사들이 각 당에 낸 기탁금만 합쳐도 벌써 86억여원(3월5일 현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돈 안 드는 정치’를 가장 소리 높여 외쳐온 열린우리당은 후보기탁금을 포함해 60억원에 가까운 돈을 현재까지 거둬들였으며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공천신청자들로부터 각각 10억~20억원에 이르는 돈을 당비와 경선 비용 등의 명목으로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공천신청자들이 경선과정에서 비공식적으로 지출한 경비까지 감안한다면 이들이 공천을 받기 위해 쓴 돈의 액수가 1백억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라는 게 정가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3월5일 현재 한나라당 공천 신청자 수는 총 9백69명. 그 중 지역구에 공천 신청한 사람이 7백25명, 비례대표 신청자는 2백23명으로 주요 3당 중 공천신청자가 가장 많았다.
한나라당은 출마 희망자들로부터 당원인 경우에 80만원, 비당원인 경우에 2백만원을 공천심사비로 받았다. 비당원의 경우 기존 심사비 80만원에 1년치 당비 1백20만원이 더해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규정은 지역구·비례대표 출마 희망자 모두에 동일하게 적용됐다. 당 기조국 관계자에 따르면 출마희망자 중 당원·비당원 비율은 거의 50 대 50에 이른다고 한다. 이 경우 한나라당은 공천심사비로만 총 13억5천8백여만원을 거둔 셈이 된다.
후보 경선이 치러지는 선거구에선 경선출마자들이 경선비용 명목으로 각각 2천만원씩을 지구당에 더 냈다. 현재 한나라당은 2백43개 지역구 중 16개 지역이 경선 대상으로 분류돼 있다. 경선 대상 16개 지역에 두 명씩, 총 32명만이 경선에 출마한다고 가정해도 6억4천만원의 기탁금이 모아진다. 한나라당이 본선 후보를 가리는 과정에서 후보자들로부터 거둔 돈이 최소 20억여원에 이르는 셈이다.
민주당 공천작업은 주요 3당 중 가장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공천 확정자가 전체 지역구의 50%를 갓 넘은 상태며 당 지도부는 3월 중순 이전에 공천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민주당 조직국의 한 관계자는 “2월3일까지 집계된 지역구 공천신청자 수는 총 4백14명이며 현재 더 늘어나고 있다”며 “지역구 공천 마무리 후에 비례대표 후보자를 선정할 것”이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비공개를 요청한 후보 10여 명과 2월3일 이후의 공천 신청자를 포함하면 (3월5일 현재) 총 공천 신청자는 4백50~4백60명 정도에 이를 것”이라 덧붙였다.
민주당은 지역구 출마희망자들로부터 1백만원의 공천심사비를 받았으며 앞으로 지역구 공천 완료 이후 접수받게 될 비례대표 출마희망자들에게도 역시 1백만원 정도의 공천심사비를 받을 계획이다. 민주당 관계자가 추정하는 현재까지의 공천 신청자 4백50~4백60명이 1백만원씩의 공천심사비를 갹출할 경우 총 액수는 4억5천~4억6천만원선에 이른다.
민주당은 경선이 치러지는 곳에 대해 지구당별로 7백50만원의 여론조사 비용을 경선출마자들이 나눠서 부담케 했다. 당 관계자는 “모 여론조사 기관과 계약을 맺고 당 공천을 위한 국민경선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1개 지역구당 7백50만원으로 계약을 한 상태이므로 경선출마자 수가 많은 지역일수록 후보자 개인이 내야 하는 돈은 줄어든다”고 밝혔다.
3월5일 현재 경선을 치렀거나 앞으로 치를 예정인 민주당 지역구는 총 56군데. 경선지역 여론조사를 위해 후보자들이 부담하는 금액이 총 4억2천만원이 된다. 전체 지역구 공천자 선정과정에서만 최소 8억7천만∼8억8천만원이 후보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민주당 조직국 관계자는 “경선대상 지역구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고 밝혀 공천 과정에 후보자들이 부담하는 총 액수는 금세 10억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3월5일 현재 9백46명이 공천 신청을 했으며 이들 중 지역구 신청자는 7백22명, 비례대표 신청자는 2백24명이다. 열린우리당의 공천심사비는 주요 3당 중 가장 비싸다. 지역구 출마 희망자에겐 3백만원, 비례대표 희망자에겐 1백만원을 받았다. 공천심사비로만 이미 24억원을 거둬들인 셈이다.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한 출마 희망자는 추가로 1천만원의 예비후보등록비를 더 내야 했다. 당 중앙선대위 관계자는 “까다로운 서류 심사를 거친 공천심사 대상자 중 일부 인사들이 공천을 반납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 안정적인 공천 관리를 위해 필요한 제도라 여겨져 채택했다”고 말했다. 지역구 출마희망자들 중 총 2백43개 선거구에서 한 지역당 한 명씩만이 서류 통과를 했다 가정하더라도 24억3천만원이 걷히는 셈이다.
단수 공천이 아닌 경선이 벌어질 경우 경선출마자들은 인구 15만 명 이하인 선거구에선 5백만원, 인구 15만~25만 명 사이의 선거구에선 1천만원, 인구 25만 명 이상의 지역구에선 1천5백만원을 더 내야 한다. 경선 비용을 후보자들이 나눠서 부담하는 것이다. 경선 대상 90개 지역구를 모두 인구 15만 이하 지역으로 가정하고 각 지역구당 2명씩만이 경선에 출마한다고 봐도 최소 9억원이 더 걷히게 된다. 본선에 들어가기도 전에 후보자들이 공식적으로만 지출하는 총액이 최소 57억3천만원에 이르는 것이다.
위의 계산대로라면 주요 3당이 후보자들로부터 거둬들인 금액은 현재까지 최소 86억원을 넘게 된다. 그러나 정치권 인사들은 “공식적으로 드러난 각 당의 공식 공천자금보다 실제로 후보들이 경선과정에서 사용하는 자금 규모가 몇 배에 달할 것”이라 입을 모은다.
최근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열린우리당의 한 후보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선거사무실 보증금을 빼고도 경선자금으로 5천만원 가까운 돈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경선출마자는 “(그건) 적게 쓴 경우다. 더 큰 금액을 쓴 후보들이 많을 것”이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정치의 표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경선제도는 사실 ‘돈정치 척결’이라는 과제로만 본다면 마이너스 효과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고 밝힌다. 경선과정에서 적지 않은 돈을 쓰고도 본선에 나가면 다시 한번 돈을 더 써야 하는 ‘이중고’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에서 공천을 따낸 한 인사는 “돈 문제가 심각한 것은 맞지만 밑으로부터의 정치개혁이란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 국민경선 방식 도입 초기에 일어나는 부작용 아니겠나”라고 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