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의 임영록 회장, 이건호 행장 등의 징계를 놓고 관련 기관들이 보이지 않는 파워게임을 벌이고 있다. 박은숙 기자
감사원이 지적한 ‘사전조치’는 금융사 임직원들에 대한 중징계 사전 통보를 말한다. 은행권에서는 그 중에서도 특히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중징계 예고를 문제 삼는 것으로 해석했다. 금융당국의 책임 여부는 온데간데없고, 감사원이 갑자기 민간 금융사 CEO(최고경영자)의 징계 문제에 끼어든 셈이다.
감사원의 지적 이후 임영록 회장에 대한 중징계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금융당국이 겉으로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감사원의 의견은 근거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정기관과 금융당국이 원투펀치를 주고받는 동안, 당사자인 KB금융 내부는 다시 시끄러워질 조짐이다.
한숨 돌리게 된 임영록 회장 측에서 이건호 행장은 물론 내분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병기 감사에 대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 금융권에 따르면 임 회장 측은 최근 정 감사가 그간 보여 온 행태에 관해 다각도로 수집 중이라고 한다. 특히 사태의 출발점인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와 관련해 정 감사와 한국IBM의 관계 파악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알려진 대로 국민은행은 이미 지난해 유닉스 기종으로 전산시스템을 교체키로 했지만 올해 1월 정 감사가 선임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 4월 한국IBM 대표가 이건호 행장에게 보낸 이메일 한 통으로 전산시스템 교체는 올 스톱되고 IBM 측에 우선협상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IBM과 우선협상은 조건이 맞지 않아 결렬됐다.
KB 내부에서는 이건호 행장과 정병기 감사의 관계에도 새삼 주목하고 있다. KB의 한 관계자는 “정 감사는 국민은행 부임 후 ‘은행장이 결제하는 모든 업무를 감사범위에 넣는다’는 규정까지 만들었다”며 “직책상 감사는 은행장의 지휘를 받는 임원들 가운데 한 명인데도 관계에 걸맞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정 감사와 이 행장의 인연에 주목해야 한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행정고시 20회에 합격해 재정경제부 차관까지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 정병기 감사 역시 기획재정부 7급 출신으로 두 사람은 소위 ‘관피아’로 불리는 인물들이다. 반면 이건호 행장은 조흥은행을 거쳐 금융연구원에 몸담았던 전형적인 금융맨이다.
정 감사와 이 행장의 인연은 두 사람이 각각 기재부와 금융연구원에 근무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융원구원에는 이 행장이 재직하고 있었고, 정 감사는 기재부 감사담당관으로 금융연구원에 대한 감사를 맡고 있었다. 감사 업무를 수행하는 기재부 공무원과 피감기관 임직원의 관계가 어땠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금융권에서는 당시 ‘갑과 을’이었을 두 사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금은 금융당국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긴 A 씨의 존재도 눈에 띈다. A 씨 역시 당시 금융연구원에 근무하면서 정 감사의 감사를 받던 인물로, 공교롭게도 그가 금융당국 고위직이 된 뒤 정 감사는 국민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리하자면 이건호 행장의 상사였던 A 씨는 금융당국 고위직에, 이 행장을 감사하던 정 감사는 다시 국민은행 감사로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갑’이었던 인물로 둘러싸인 이 행장의 행동반경은 자연스럽게 좁아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대목은 이들의 반대편에 선 임영록 회장의 인맥이다. 앞서 말했듯 임 회장은 행시 20회 출신으로 24회 출신인 신제윤 금융위원장보다 4회 선배다. 게다가 재경부 차관 시절에는 당시 국제금융국장이던 신제윤 위원장을 지휘하던 상사이기도 했다. 금융위원장은 적어도 금융에 관한 한 회사나 인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자리다. 임 회장과 신 위원장의 개인적인 친분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재경부 출신 공무원들을 일컫는 ‘모피아’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감안할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맥이다.
얼핏 ‘회장 대 행장’의 충돌로 비치고 있는 KB의 내분 사태는 속살을 들여다보면 재경부와 기재부 등 ‘관피아’와 금융연구원 등이 뒤엉킨 힘겨루기일 수도 있다. 실제로 복잡하게 얽힌 이들의 인연은 일견 KB 내분 사건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관계기관들의 엇갈린 행보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현재 금융위와 금감원, 감사원 등은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 징계를 놓고 보이지 않는 파워게임을 벌이고 있다. 이 게임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KB의 수장 자리를 지켜내는 승자가 결정될 전망이다.
이영복 언론인
끝없는 채널대결 국민-주택 출신들 아직도 물과 기름 국내 최대 금융사 가운데 하나인 KB국민은행에서 각종 사고와 내부 알력이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은 사실상 해결이 불가능한 ‘채널 대결’과 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KB는 전신인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은행이다. 과거 두 은행 모두 국책은행이었던 탓에 지금도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출신들은 스스로를 ‘다른 채널’이라고 부르며 화학적으로 완전히 섞이지 못하고 있다. KB 내부에서는 국민은행 출신을 ‘채널1’, 주택은행 출신은 ‘채널2’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한 KB금융은 현재 지분 60% 이상을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고, 국민연금이 9.96%를 갖고 있는 구조로 사실상 딱 부러지는 주인이 없는 은행이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다 보니 ‘관치’, ‘낙하산’ 논란이 반복되며 바람 잘 날이 없다. [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