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오전 브리핑 도중 꺼낸 이 말이 기자들을 ‘빵 터지게’ 했다고 한다. 휴가철이 됐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의 휴가 일정이 공지되지 않는 것을 답답하게 여긴 한 기자가 “대통령 휴가 얘기는 아직도 안 나오고 있느냐”고 질문하자 이런 답이 나왔다. 대통령이 언제 휴가를 쓸지는 자신도 궁금하다는 얘기를 에둘러 한 것으로 해석됐다.
지난해 페이스북에 올라온 박 대통령의 휴가 모습.
대통령이 언제, 어디서 휴가를 보내게 되는지는 경호상의 문제로 인해 알아도 미리 기사를 쓰기 어렵다. 대통령의 청와대 밖 일정은 그 자체로 포괄적 엠바고(보도유예) 대상이다. 그럼에도 출입기자는 물론 청와대 직원들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대통령의 휴가 일정이 그들의 휴가 일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 출입기자는 “회사에서 ‘1호 기자’로 불리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대통령과 휴가 일정을 맞추는 게 관례처럼 돼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휴가를 떠나기 전에는 출입기자들도 근무태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일부 언론사는 정치부장의 휴가도 대통령의 휴가 일정에 맞춘다고 한다. 이 기자는 “대통령의 휴가 일정이 출입기자들의 휴가 일정에 영향을 주고, 이게 다시 각 회사별 정치부 기자들의 휴가 일정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며 “대통령의 휴가 계획이 너무 늦게 확정되면 정치부 기자들이 휴가를 준비하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의 휴가 일정 역시 대통령에게 매여 있다. 통상적으로 대통령이 휴가를 쓸 경우 비서실장, 정무수석 등은 청와대를 지키는 게 관행화돼 있다. 수석들의 휴가 일정은 산하 비서관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은 다시 행정관·행정요원들에게, 또 각 정부부처 일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야말로 대통령의 휴가 일정이 연쇄 파급효과를 낳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여름의 경우 박 대통령이 아예 휴가를 쓰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청와대 직원들과 출입기자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 실종자 수색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청와대도 비상근무 태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박 대통령 스타일상 휴가를 쓰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할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하다’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9일부터 4박5일 동안 어릴 적 가족들과 추억이 서린 경남 통영시 저도에서 휴가를 즐긴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1박2일만 그곳에서 머물고 청와대로 돌아온 바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휴가 얘기를 꺼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며 “민 대변인이 자신의 7월 말 휴가 계획을 말한 것은 실제로 그렇게 휴가를 쓰겠다기보다는 대통령의 휴가 일정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출입기자들이 알아서 그때쯤에 휴가를 쓰라는 의미일 것이다. 기자들과 달리 참모들은 휴가 얘기를 꺼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 참 난감하다”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