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이 7월 30일 개봉 이후 연일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 역사를 써내려가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최준필 기자
우선 ‘12척의 조선과 330척의 왜군’이 싸운 게 맞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실제로 당시 이순신이 이끈 조선 수준의 배는 12척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선조실록> 등 몇몇 문헌에선 조선 수군의 배가 13척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일본 문헌에도 당시 조선 수준이 13척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역사학자들은 칠천량 해전에서 간신히 살아 나중에 합류한 녹도 만호 송여종이 이끄는 함선까지 포함해 13척이라고 설명한다.
왜군의 경우 330척으로 알려져 있다. 전남 해남군에 있는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에도 330척이라 나오며 일본 문헌에도 그렇게 기록돼 있다. 그렇지만 왜군의 배가 200여 척, 내지는 130여 척이었다는 문헌도 있다. 당시 왜군의 배가 모두 몇 척이었는지는 문헌에 따라 기록이 조금씩 다르지만 울둘목이 워낙 좁아 실제로 전투에 참여한 왜적의 배는 130여 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명량>의 전투 장면의 백미는 울돌목에서의 전투 초반이다. 다른 판옥선들이 전진을 주저하는 동안 이순신이 탄 대장선이 홀로 적진으로 향해 거의 100여 척의 왜군 적선과 전투를 벌인다. 이는 역사적인 기록과도 일치한다. <난중일기>에도 전투 초반 다른 배들이 조금 망설인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선 대장선을 제외한 다른 11척의 판옥선 지휘관들이 이순신의 작전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으로 그려진다. 어느 정도 현실성 있는 대목이다. 당시 12척의 배는 모두 경상 우수사 배설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할 당시 이끌고 도망친 배들이다. 배설이 이순신의 작전에 반대하며 명량대첩을 앞두고 도망친 만큼 그의 지휘를 따르던 배들이 이순신에게 비협조적이었을 수 있다.
‘한국사 스타강사’ 설민석은 유튜브에 공개한 명량 강의에서 이를 “다른 배의 지휘관들이 겁을 먹어서”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다른 배들의 비협조로 지휘 체계가 혼란에 빠졌다면 그런 대승이 불가능했을 것임을 감안하면 전투 초반 겁을 먹어서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설민석 강사의 인터넷 명량 강의가 덩달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에선 배설이 조선 수군에 유일하게 남은 거북선을 불태우고 도망치다가 안위의 화살에 맞아 죽는 것으로 나온다. 게다가 배설은 이순신을 암살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이는 역사와는 다른 내용이다. 배설이 실제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도망을 친 것은 맞지만 화살에 맞아 죽진 않았다. 배설은 1599년으로 권율에게 체포돼 참형을 당했다.
또한 거북선을 불태우는 장면 역시 허구로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던 도중에 벌어진 칠천량 해전에서 모든 거북선이 모두 파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문헌에선 이순신이 명량대첩을 앞두고 왜군을 속이기 위해 판옥선 한 척을 거북선으로 위장하려 했다는 기록이 나오기도 하지만 실제 전투에 투입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명량>의 전투 장면에선 이순신이 지휘하는 대장선에서의 백병전이 돋보인다. 그렇지만 이 부분 역시 역사와는 사뭇 다르다. 당시 조선 수준의 주된 전략은 무조건 백병전은 피하자는 쪽이었다. 당시 왜군은 조총을 갖고 있었는 데다 칼을 잘 다뤘기 때문에 백병전은 조선에게 절대 불리했다. 따라서 영화에선 이순신이 “백병전을 준비하라”는 비장한 대사를 들려주지만 실제 당시 전투 속 이순신은 “무조건 백병전은 피하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바로 당시 왜군의 조총 유효사거리다. 영화에선 상당히 먼 거리에서 왜군이 조총을 쏘고 마치 저격병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왜군도 나온다. 그렇지만 당시 왜군의 조총은 사정거리가 70m 정도였다. 임진왜란 초에는 50m에 불과했다. 전쟁 초기에 의병장 곽재우는 활을 이용한 게릴라 전법으로 왜군을 거듭 물리치곤 했는데 이도 유효사거리가 50m에 불과한 일본 조총의 특성을 간파한 전술이었다.
당시 왜군은 조총을 갖고 있었던 데다 칼을 잘 다뤘기 때문에 백병전은 조선에게 절대 불리했다.
이처럼 부하들에게 백병전을 최대한 피하는 작전을 지시한 이순신이 대장선에서 백병전을 벌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헌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다만 이순신을 구하려 뛰어든 안위의 판옥선이 왜군의 함선에 포위당했다는 기록이 있어 만약 백병전이 벌어졌다면 안위가 지휘하는 배에서였을 가능성은 있다. 실제 <난중일기>에도 안위의 배에 왜적들이 개미떼처럼 달라붙어 조선 수군이 몽둥이나 창, 돌덩어리로 맞섰다는 내용은 기록돼 있다.
12척의 조선 수군이 대승을 거둔 결정적 원인은 이순신이라는 탁월한 지휘에 있지만 뛰어난 판옥선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판옥선은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으로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이 가능하고 선체가 무겁고 강했다. 또한 총통류부터 비격진천뢰까지 다양한 화포를 장착할 수 있다.
반면 왜군의 배는 우선 바닥이 뾰족한 첨저선으로 울돌목과 같은 좁은 해협에선 선회가 쉽지 않다. 빠르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선체는 판옥선에 비해 약했다. 또한 본래 판옥선처럼 화포를 장착하는 배가 아니었던 데다 장착해도 왜군은 배 위에서 화포를 잘 다루지 못했다.
영화 <명량>에선 이런 양측 배의 차이를 활용해 이순신이 충파(적함에 돌진해 부수는) 전술을 활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학자들은 실제 명량대첩에서 이순신이 충파를 활용했는지 여부는 명확치 않다고 설명한다.
물론 판옥선이 워낙 강하고 견고한 배이긴 하다. 그렇지만 일부 사학자들은 둘 다 나무배인 만큼 충파 전술은 판옥선에도 무리가 갈 수 있으며 심한 경우 공격한 판옥선 역시 부서질 위험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보유 전력이 고작 12척의 배인 상황에서 이순신이 실제로 충파 전술까지 활용했을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순신이 배수진을 치는 각오로 벽파진 병영을 불태우는 장면, 왜군의 정보를 조선 수군에 전달하다 사망하는 탐망꾼 임준영 등도 영화의 재미를 위한 허구로 보인다. 문헌에 벽파진을 불태운 기록은 없으며 임준영은 명량해전 이후에도 <난중일기>에 계속 등장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