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 ‘왕좌’에 오른 1934년형 부아쟁 C-25 에어로다인. 모델명 에어로다인은 비행기처럼 빠른 자동차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클래식카 축제이자 경연대회인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이 축제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래식카에 주어지는 최고의 상은 ‘베스트 오브 쇼’(Best of Show) 상. 그런데 최근 10년 동안 ‘베스트 오브 쇼’의 영예를 안은 클래식카 중에는 ‘사라진 회사의 유작’인 차들이 상당수다.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다른 한편으론 비장한 역사가 깃들어 있는 명품 클래식카들. 이 사연 많은 클래식카의 세계를 페블비치 콩쿠르 수상 자동차를 중심으로 2회에 걸쳐 들여다본다.
1934년형 부아쟁 C-25 에어로다인(Voisin C-25 Aerodyne).
지난 2011년 페블비치 ‘왕좌’에 올랐던 이 차는 1920~30년대 프랑스의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였던 ‘부아쟁’의 대표 자동차 중 하나다. 1930년 파리 오토쇼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 뛰어난 성능과 아름다운 스타일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3000㏄ V6 엔진이 최대 100마력의 파워를 발휘했는데, 항공역학이 접목돼 연비도 뛰어난 편이었다. 모델 이름 중 ‘에어로다인’은 경비행기와 대비되는 중비행기 혹은 비행선이란 뜻. 비행기처럼 빠른 자동차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부아쟁은 20세기 초 유럽에서 가장 선구적인 엔지니어이자 공기역학자이던 ‘가브리엘 부아쟁’이 설립한 자동차회사다. 원래 가브리엘 부아쟁의 전문 분야는 비행기였다. 1905년에는 자신이 제작한 비행기로 파리 센 강변에서 600m를 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비행기의 발명가는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주장을 평생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세계 최초로 강철 프레임에 알루미늄 덮개를 사용한 비행기를 만들어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당시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자신의 비행기가 군사 무기로 쓰이는 데 점차 회의를 느끼고, ‘미래의 블루오션’인 자동차 분야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그의 회사 ‘부아쟁’이 만들어내는 자동차는 가벼운 차체에 항공기의 원리와 기술을 접목시켜 빼어난 성능을 발휘했다. 1927년 내놓은 C-14 모델이 큰 인기를 끌면서 ‘부아쟁 마니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대의 아이돌이었던 배우 루돌프 발렌티노, <달과 6펜스>의 작가 서머셋 모옴 등 문화예술계 유명인사들이 브아쟁의 단골 고객이었다. 이에 고무된 가브리엘 부아쟁은 엔진 출력은 대폭 올리고 소음은 크게 줄인 최고급 고성능 자동차인 C-20 모델을 내놓게 된다. 하지만 높은 가격 때문에 소비층이 한정돼 있는 데다 설상가상으로 경제 대공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위기가 찾아온다.
가브리엘 부아쟁이 위기 극복을 위해 내린 처방은 ‘더 좋은 차를 만들어 더 비싸게 판다’는 것이었다. ‘부아쟁 C-25 에어로다인’도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탄생한 모델이었다. C-25 에어로다인의 경우 공기역학적인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예술품’이라는 찬사도 들었지만, 판매 부진으로 불과 28대만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부아쟁은 자금난으로 인해 1939년 문을 닫고 만다.
가브리엘 부아쟁이 내걸었던 고가 정책은 회사의 종말을 앞당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차들이 희귀한 차로 남는 결과를 낳았다. 2011년 페블비치 콩쿠르에 C-25 에어로다인을 출품했던 인물은 다름 아니라 보험사업가이자 클래식카 수집가로 유명한 피터 멀린이다. 캘리포니아주 옥스나드에 위치한 ‘멀린 자동차 박물관’에는 아예 ‘부아쟁 코너’가 따로 있다. 1923년식 부아쟁 타입 C-6 같은 초창기 모델부터 후기 모델인 1936년식 부아쟁 타입 C-28 에어로스포츠, 1938년식 부아쟁 타입 C-30 카브리올레에 이르기까지 무려 15대의 차량이 이곳에 모여 있다. 이만 하면 부아쟁 광팬이라고 할 만하다.
회사는 사라졌지만 광팬을 통해 브랜드의 자취는 살아 있는 현실이 오래 전 작고한 가브리엘 부아쟁에게도 조금은 위안이 될 듯하다.
이정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