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리즈 테론(왼쪽)과 메건 폭스(로이터)는 감독들의 ‘캐스팅 카우치’ 요구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1995년 저널리스트 피터 코프가 “할리우드는 모든 사람이 부와 명예를 육체와 영혼을 파는, 특히 여성들은 상품으로 여겨지는 곳”이라고 말한 후 몇몇 내부 고발자들이 있었다. 우디 해럴슨 같은 배우는 “나는 수많은 배우 지망생들이 야망을 위해,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남자들과 성 관계를 가지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아시아 아르젠토 같은 배우는 신인 시절 할리우드 프로듀서에게 오럴 섹스를 요구 받았지만 거절했는데, 직접 연출한 반자전적 영화 <스칼렛 디바>(2000)에 비슷한 상황을 반영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로 스타덤에 올랐던 섹시 여배우 메건 폭스는 유명 감독들의 섹스 요구에 대해 언급해, 한때 마이클 베이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샤를리즈 테론은 18세 때 토요일 밤 한 감독의 집에서 오디션을 했는데, 가보니 감독은 파자마 차림이었다고 말했다. 귀네스 팰트로, 수전 서랜든, 줄리 델피 등의 언급이 이어졌다. 하지만 법적 조치가 이뤄지진 않았다. 10년 전 인도에서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건의 주인공은 프레티 자인이라는 무명 배우였다. 그녀는 2004년 경찰에 한 명의 영화감독을 고발했다. 마두르 반다카르. 인도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 만한, 2000년 이후 인도 영화계를 대표하는 상업영화 감독이었다. 프레티 자인은 반다카르 감독이 자신을 5년 동안 성적으로 착취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해 주겠다고, (당시 유부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한 후 총 16차례 강압적인 성 관계를 요구했다는 것이 자인의 주장이었다. 나트라지 지역의 아파트, 주후 지역의 해변가 호텔, 반다카르 감독 친구의 집 등 다양한 장소에서 관계가 이뤄졌고, 프레티 자인은 그의 행동이 강간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법정 싸움은 길어졌고 이후 프레티 자인이 고소를 취하하면서 해결되긴 했지만, 이 사건은 종교적이며 보수적인 인도 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저널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도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좀 더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5년, 대형 사고가 터졌다. 범죄 수사 TV 탐사 프로그램인 <모스트 원티드>가 제대로 ‘한 건’ 올린 것이다. 그들은 한 젊고 예쁜 기자를 배우 지망생으로 위장시켰고, 인도 연예계의 거물들에게 접근시켜 몰래 카메라로 촬영했다. 이때 두 명이 걸려들었다. 당시 TV쇼 <인디안 아이돌>의 MC로 인기를 끌던 아만 베르마와 인도 영화계를 대표하는 중견 배우인 샤크티 카푸르였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캐스팅 카우치를 요구했고, 이것은 모두 비디오로 기록되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물이 되었다.
무명 여배우 프레티 자인(왼쪽)은 성접대 등 이유로 마두르 반다카르(위 첫 번째) 감독을 고소했다. 샤크티 카푸르(위 두 번째)와 아만 베르마도 ‘캐스팅 카우치’ 요구로 구설에 올랐다.
특히 샤크티 카푸르는 심각했다. 그는 실명을 언급하고 말했다. 아이쉬와라 라이, 라니 무커지, 프레이티 진타 같은 인도를 대표하는 여배우들도 모두 역할을 따내고 스타덤에 오르기 위해 수바시 가이, 야시 초프라, 야시 조하르 같은 인도 영화계의 거장들과 성 관계를 맺어야 했다고, 이런 관계는 스타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 부분은 그대로 방송되었고, 인도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반응은 격렬했다. 카푸르에 의해 언급된 세 명의 노장 감독들은 “샤크티 카푸르가 다시는 인도 영화계에 발을 붙여서는 안 된다”며 인도 영화계 전체를 압박했다. 여배우들은 무반응과 침묵으로 일관했고, 반편 카푸르는 바빠졌다. 그는 비디오 내용이 편집에 의해 호도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저널리즘의 윤리 문제를 지적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도 영화 전체의 위기론이 대두되었다.
인도에서 시작된 그 폭로의 흐름은 이후 프랑스로 이어졌다. <남자들이 모르는 은밀한 것들>(2002)의 장-클로드 브리소 감독이 캐스팅 과정에서 만난 두 여자와 나눈 성 관계에 불법적 요소가 있다는 유죄 판결이 나온 것. <더 퀸>(2006)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헬렌 미렌은 과거 마이클 위너 감독이 자신을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취급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줄리 델피는 틴에이저 시절 영화계에서 만난 아동 성애자 감독과 프로듀서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의 여배우 장유는 캐스팅 카우치와 관련된 섹스 비디오 스무 개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렇게 따냈던 20개의 역할에 대한 전리품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캐스팅 카우치. 과연 그 ‘악의 고리’는 언제 사라질까.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