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희룡 의원, 홍준표 의원 | ||
지난 7월19일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당초 예상대로 ‘싱겁게’ 끝났다. 시종일관 박근혜 대표의 독주로 다른 후보들의 면면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전당대회가 무의미하다’는 혹평까지 들었지만 원 의원의 등장은 보수세력의 상징으로만 여겨졌던 한나라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이다.
반면 홍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 출마선언을 했다가 불출마 선언으로 뜻을 접었지만 전당대회 기간 동안 원 의원과의 갈등구도를 통해 한나라당 내 비주류 중심세력으로 거듭났다. 각각 주류와 비주류 내 새로운 주축으로 자리잡은 두 사람의 신경전이 벌써부터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평이다.
홍 의원과 원 의원의 당내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은 이번 전당대회 후보 등록과정에서부터 빚어졌다. 후보등록 시한을 앞두고 서울지역 의원 중 출마자가 나서지 않자 박성범 서울시당 위원장이 지난 7월7일 서울지역 의원들을 모아놓고 “부산 정의화, 경남 이강두, 경기 이규택 등 지역마다 후보가 1명씩 나오고 있으니 서울에도 출마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날 모인 서울지역 의원들은 홍준표 의원을 서울지역 대표 후보자로 합의하고 적극 추대했다. 이날 원희룡 의원도 모임에 참석했지만 출마 의사가 없음을 강하게 밝혀 결국 홍 의원 출마로 의견이 모아진 것이었다.
지난 7월9일 홍 의원은 예정대로 최고위원 출마선언을 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원 의원이 돌연 출마선언을 했다. 이틀 전 서울지역 의원 모임에서 불출마 의사를 밝혔지만 바로 다음날 자신이 소속된 ‘새정치수요모임’에서 원 의원의 출마를 적극 권유해 막판 출마선언이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새정치수요모임’은 원 의원을 비롯해 남경필 정병국 의원이 주축인 당내 진보성향 모임이다.
원 의원이 출마선언을 하던 날 밤 늦게 홍 의원은 출마선언을 철회했다. 원 의원 출마선언 직후 이재오 의원이 홍 의원에게 연락해 ‘출마하지 마라’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원 의원의 출마선언 배경에 비주류에 대한 주류의 ‘의도’가 깔려있다고 본 것이다. 원 의원 출마를 이끌어낸 이른바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트리오는 총선 직전 최병렬 전 대표 퇴진과 박근혜 대표 옹립에 제일 큰 기여를 한 인물들이다. 홍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최고위원 출마자들이 대부분 ‘친 박근혜’성향을 보인 인물들이었다. 여기에 원 의원까지 지도부의 한 축으로 합류한다면 김문수 이재오 의원과 더불어 ‘반 박근혜’ 전선 선봉에 있는 홍 의원이 지도부에 들어가더라도 ‘들러리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이후 7월12일 박성범 의원은 “대표최고위원 출마를 둘러싸고 벌어진 합의와 신뢰의 실종을 지켜보면서 사퇴를 결심했다”면서 서울시당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서울지역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출마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 원 의원의 돌발행동에 대해 당내 보수성향 인사들이 반발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대변한 것이다.
홍준표-원희룡 신경전은 이미 지난 총선 직전부터 조짐을 보여왔다. 총선 직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원 의원은 “(한나라당은) 홍준표 이재오 정형근 등 이른바 ‘나바론 특공대’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윤여준 전병민 등 사심 없이 당 개혁방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말을 안 듣는다. 5·6공 인사들을 공천하는 것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진열하는 백화점처럼 국민을 상대로 사기치는 것”이라며 홍 의원을 비난했다.
총선 직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홍 의원은 당내 소장파인 원희룡 의원의 당내 수구부패세력 청산 발언과 관련해 “토론을 통한 노선 투쟁을 하지 않고 지역구에서 심판을 받고 온 당내 선배들의 과거 전력을 문제삼아 ‘어둠의 세력’이니 인격적인 매도를 하는 것은 정치를 잘못 배워 그렇다”며 응수하기도 했다.
이번 전당대회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원 의원을 향해 “후배에게 길을 열어 주겠다”고 밝힌 홍 의원에 대해 원 의원은 “언제부터 후배를 그렇게 생각해줬냐”며 비아냥거렸다. 자신을 ‘정치를 잘못 배웠다’고 폄하해온 홍 의원을 향한 포문을 연 셈이다. 원 의원측은 갑작스런 최고위원 출마와 홍 의원의 불출마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원 의원측 내부에선 ‘(홍 의원이) 출마했다가 서울지역 후배인 원 의원에게도 지면 체면이 구겨질 것 같아 불출마한 것 아니냐’는 정서도 자리잡고 있다.
홍 의원측은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에게 ‘보수 대변자’ 역할 잘 하라고 밀어준 것인데 지금 박 대표 중심 지도부가 ‘이미지 정치’에만 빠져 있다. 지도부 내에 이를 부추기는 세력들을 엄단하겠다”라며 원 의원에 대한 ‘총구 겨냥’ 의사를 분명히했다. 반면 원 의원은 최고위원 경선을 통해 당 간판으로 우뚝 섰다고 자평하면서 홍준표 이재오 등 당내 신흥 보수 세력을 비판하고 개혁을 추진해나가는 것으로 스탠스를 잡고 있다. ‘친 박근혜’ 성향을 드러내는 것 대신 홍준표 의원 같은 비주류 보수 세력을 성토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져나가겠다는 포석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내 주류-비주류 대결은 원희룡-홍준표 의원 간의 자존심 대결로 대변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두 사람의 대결구도는 박근혜 대표 한 사람의 대중적 인기 이외에 여론에 호소할 별다른 이슈가 없었던 한나라당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는 평이다. 그러나 이들의 대결이 세 확산을 통한 당내 주도권 대결로 비화될 경우 열린우리당과 같은 ‘내홍’을 겪을 수도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