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인 SBI저축은행은 네 곳의 저축은행을 합병해 국내 저축은행 업계 1위로 올라섰다. SBI 저축은행 청담본점 전경.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업계 2위 아주캐피탈이 지난 11월 6일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 자산규모가 6조 4000억 원에 이르는 아주캐피탈을 품은 주인공은 일본계 금융회사 제이트러스트. 제이트러스트는 지난 1977년 설립된 회사로 일본에서 대부업과 신용보증업 등을 하고 있다. 한국에는 ‘원더풀론’이라는 대부업으로 진출했다. 총자산은 3조 300억 원, 자기자본은 1조 8000억 원으로, 자산규모 기준으로 자신보다 몸집이 두 배나 큰 국내 캐피탈사를 일본계 자금이 집어 삼킨 셈이다.
제이트러스트의 아주캐피탈 인수가 주목받는 것은 단순히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업을 발판으로 국내에 들어온 일본계 자금이 저축은행을 거쳐 캐피탈업계로까지 발을 뻗쳤다는 점이 관전 포인트다. 제이트러스트는 지난 2011년 네오라인크레디트대부를 인수해 국내에 들어온 뒤 2012년 친애저축은행(옛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해 제도권에 진입했다. 그리고 올해는 하이캐피탈대부, KJI대부금융, SC저축은행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불리기에 나섰다.
금융권은 제이트러스트의 아주캐피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정을 호기심과 우려가 뒤섞인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선 M&A(인수·합병) 과정에서 보여준 제이트러스트의 수완에는 감탄하는 눈치다. 제이트러스트는 아주그룹이 보유한 아주캐피탈 지분 74.6%의 인수가로 약 5000억 원을 제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자산 6조 4000억 원의 금융사를 5000억 원으로 사들인 것. 게다가 거래가 최종 성사되면 제이트러스트는 계열사인 아주저축은행(100%)까지 덤으로 인수하게 된다.
반면 금융권은 아주캐피탈 인수전에 제이트러스트와 러시앤캐시 등 일본계 대부업체 두 곳만 참가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저축은행 M&A 시장이 일본계 대부업체들의 ‘그들만의 리그’가 된 데 이어 캐피탈사 인수전마저 일본자금끼리의 경쟁구도가 됐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아주캐피탈을 놓고 막판까지 제이트러스트와 경합을 벌인 아프로서비스그룹은 다른 캐피탈사 인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러시앤캐시와 OK저축은행을 운영 중인 아프로서비스그룹의 자산규모는 약 2조 2000억 원으로, 최근 중국과 폴란드 소매금융시장에 진출하는 등 확장 경영에 가속도를 밟고 있는 중이다.
금융권은 아주캐피탈 인수에 실패한 아프로서비스그룹이 곧 매각에 들어갈 KT캐피탈 예비입찰에 참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KT는 비주력 자회사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11월 말쯤 KT캐피탈 매각 예비입찰을 진행할 예정인데, 매각주관사인 우리투자증권을 통해 아프로서비스그룹에 투자안내서(IM)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아주캐피탈 인수에 사용하기 위해 준비했던 자금이 남아 있을 테니 KT캐피탈 인수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이미 러시앤캐시가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번 통합으로 SBI저축은행은 자산규모 3조 8400억 원, 자기자본비율(BIS) 11.44%의 국내 1위 저축은행이 됐다. 영업점도 11월에 문을 연 인천·광주지점을 포함해 전국 20개로 업계 최대 규모가 됐다. SBI가 주목받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국내 4대 은행 가운데 하나인 우리은행 인수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민영화 작업이 진행 중인 우리은행 인수전에는 현재 교보생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뛰어들 것을 공언한 상태다. 그런데 교보가 추진 중인 이 컨소시엄에 SBI저축은행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보험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보험업계는 이미 교보생명과 일본 SBI그룹이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본 SBI금융그룹은 규모나 한국에 대한 이해도 등에서 충분히 우리은행 인수가 가능한 후보로 평가된다. 총자산 21조 원 규모의 일본 최대 온라인 금융회사인 데다 벤처기업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1980년대 이미 한국에 진출해 벤처투자회사를 운영할 정도로 국내 금융시장을 잘 알고 있다.
이밖에 기타오 요시타카 SBI그룹 회장과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과의 두터운 교분도 컨소시엄 참여를 예상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SBI 측은 “논의한 적도, 검토한 바도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가능성을 예단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험업계는 보고 있다.
우리은행 외에 SBI가 추진하고 있는 또 다른 ‘은행’도 있다. 한국에는 아직 전례가 없는 ‘인터넷 전용 은행’이 바로 SBI가 계획 중인 야심작이다. 김종욱 SBI저축은행 대표는 지난 11월 1일 통합 SBI저축은행 출범식에서 “앞으로 국내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이 허용되면 인터넷 뱅크로 전환해 제2의 도약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SBI의 계획은 한국 금융당국까지 발 벗고 나서 도와주고 있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SBI저축은행의 인터넷 뱅크 추진 발표가 나온 지 사흘 만인 지난 11월 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검토할 단계가 됐다”면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렇듯 일본계 자금은 ‘제로금리’인 일본에서 싼값에 돈을 가져와 국내 금융사들을 차례차례 인수하고 있다. 외면 받던 대부업으로 시작해 시중은행 인수 참여설까지 도는 일본계 자금의 한반도 영토 확장이 어디까지 진행될지 주목된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