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틴 다이아몬드의 아역시절과 섹스 비디오 속 그의 모습. ‘스크리치’라는 캐릭터에 향수를 지닌 수많은 사람들은 이 비디오 이후 그를 더욱 외면했다.
한국의 TV를 통해서도 방영되었던 <베이사이드의 얄개들>은 1989년에 시작되어 1993년에 끝난 시리즈지만 이후 속편이 등장하며 2000년까지 이어졌던 시트콤이다. 원제는 ‘Saved by the Bell’. 직역하면 ‘종이 살렸다’인데, 주인공 잭(마크-폴 고슬라)은 매일같이 교장실에 끌려가 야단을 맞지만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덕에 교실로 돌아가면서 위기를 벗어난다. 주요 캐릭터는 말썽꾸러기 남자 3인방인 잭, 슬레이터(마리오 로페즈), 스크리치(더스틴 다이아몬드)와 미녀 삼총사인 제시(엘리자베스 버클리), 켈리(티파니 티센), 리사(라크 부히즈). 그들의 이야기는 대학 시절까지 이어졌다.
여러 캐릭터들이 있었지만 더스틴 다이아몬드가 맡은 스크리치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악동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갖은 기행을 저지르는 그는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었으며, ‘끼익 하고 나는 소리’라는 뜻인 이름 ‘스크리치’(screech)처럼 좌충우돌하는 역할이었다. 그는 하이틴 드라마의 전형적인 ‘너드’(얼간이) 캐릭터로서 큰 인기를 모았고, 1989년부터 10년 넘게 그는 스크리치로 살았다. 정확히 말하면 12세부터 23세까지 그는 스크리치였다.
TV 쇼가 막을 내리고 스크리치라는 캐릭터를 벗어나자, 그는 하향세를 겪기 시작했다. 기존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것이다. 여러 시도를 했다. 그 중 하나가 스탠드업 코미디였고, 이곳저곳 불려 다니면서 꽤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배우로선 이렇다 할 작품이나 역할을 만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도 궁핍해졌다. 그는 뭔가 획기적인 전환점을 모색했다. 그 고민의 산물이 섹스 비디오가 될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2007년 일이었다.
그의 재기작(?)은 40분 분량의 섹스 비디오였다. 아니, 처음부터 어떤 의도와 상업성을 띠었다는 점에서 포르노그래피와 큰 차이가 없었다. 호텔에서 촬영되었는데, 비디오가 시작되면 더스틴 다이아몬드가 욕조에 앉아 카메라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이후 그는 두 명의 여자와 스리섬으로 다양한 체위를 구사하며 섹스를 한다. 비디오 자체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이런 류의 비디오 중엔 가장 재미있고 독특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셀러브리티와 관련된 섹스 아이템 브로커로 유명한 데이비드 한스 슈미트도 관심을 보였다. 패리스 힐튼의 비디오도 그의 손을 통해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는데, 2007년에 자살하기 전까지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추잡함의 황제’(The Sultan of Sleaze)라는 닉네임으로 통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이 비디오를 <허슬러>의 발간인 래리 플린트에게 팔 생각이었다.
문제는 더스틴 다이아몬드라는 ‘인간’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었다. 이 비디오 이후 사람들은 그를 더욱 외면하기 시작했고, 그를 스크리치 같은 이상한 캐릭터로 여겼다. 이후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패리스 힐튼이 비디오로 1400만 달러를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비디오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그래도 너 정도면 100만 달러 정도 가치는 되지 않겠느냐”는 친구들의 꾐에 넘어갔던, 단순한 동기에서 벌어진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엔, 자신은 얼굴만 등장하고 대역을 써서 페이크로 섹스 비디오를 만들 계획이었다고 했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곧 깨달았지만 말이다. 자신을 대표하는 캐릭터 이름을 딴 ‘스크리치드’(Screeched)라는 이름의 비디오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고, 100만 달러까진 아니더라도 그는 어느 정도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추락한 커리어와 비교한다면, 더스틴 다이아몬드에겐 너무 큰 출혈이었다. 스크리치라는 캐릭터에 대해 향수를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대해 역겨움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더스틴 다이아몬드는 “그때 그 일은 영원히 후회할 만한 짓”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역 스타 출신 배우들의 고통을 호소했다. “우리들이 겪는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유년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겐 유년기가 없다. 이후 나는 상실감을 겪었고, 20대가 되어서야 10대 때 겪는 그런 반항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방송 이후 영화나 TV 시트콤 출신 아역 스타들에 대한 작은 재조명이 있었다. 놀라운 건,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포르노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영화 <크리스마스 스토리>(1983)에서 플릭 역을 맡았던 스콧 슈워츠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패밀리 매터스>(1989~1998)의 주디 윈슬로 역을 맡았던 흑인 배우 제이미 폭스워스도 포르노 여배우가 되었다. <파워 레인저 지오>(1996~97)의 오스틴 세인트 존스는 ‘레드 파워 레인저’라는 이름으로 포르노계에 입성했다. LL 쿨 J가 주연을 맡았던 <인 더 하우스>(1995~99)의 마리아 캠벨 등도 모두 포르노 배우로 전업했다.
성인이 된 아역 스타들이 과거의 인기를 모두 상실했을 때 포르노 업계의 러브콜을 받게 되고, 경제적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경우들이었다. 그렇다면 더스틴 다이아몬드의 행동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차이가 있다면, 그는 러브콜을 받기 전에 자발적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는 것 정도니까.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