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 출연이 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방송에서 전문가 출연자가 급증하는 까닭은 우선 시청자들이 그들을 원해서다. 더 이상 연예인 패널들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는 예능 프로그램에 만족하지 못하는 시청자들은 재미와 교양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방송은 전문가 출연진을 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다른 방송을 통해 검증된 전문가 출연진도 좋지만 아무래도 새로운 전문가 출연진을 발굴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 출연자들도 방송을 원한다. 물론 출연료 수입도 짭짤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기대치는 바로 방송 출연을 통한 홍보 효과다. 실제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얻은 의사가 있는 병원이나 변호사가 속한 로펌이 말 그대로 대박이 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고 신해철의 사망과 연루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서울 S 병원의 K 원장 역시 방송이 배출한 스타 의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런 양측의 요구를 가운데서 연결해 주는 이들이 바로 브로커다. 과거처럼 소수의 전문가 출연진이 방송에서 필요한 시점에는 실력 좋기로 소문난 의사나 변호사 등에게 방송 섭외 요청이 집중됐다. 또한 방송 활동을 종종 하는 전문직 종사자 몇몇으로 충분히 방송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이젠 방송이 원하는 전문직 종사자가 너무 많아졌다. 방송국 입장에서 일일이 섭외를 하기에 버거울 만큼 많아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 브로커들이 생겨났다. 특히 과거 연예계에서 매니저로 활동하던 이들 가운데 전문직 종사자의 방송 출연 브로커로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매니저 출신 병원 관련 홍보 대행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방송가에서 매니저로 활동하다 회사가 어려워져 연예계를 떠난 뒤 지인의 소개로 병원 홍보 관련 일을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우리가 하는 일은 신문이나 잡지에 의사 분들의 칼럼을 게재해 주거나 특정 사안에 대해 인터뷰를 엮어주는 등 언론 홍보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물론 카메라 공포증이 있어 방송 출연을 꺼리는 분들은 여전히 신문 잡지 홍보에 집중하는 편이지만 병원 수익 개선을 위해 하는 수 없이 방송에 출연하려는 의사 분들도 많아지고 있죠.”
한국 사회에서 ‘브로커’라는 단어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불법적인 일에 관여하는 브로커가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전문직 종사자의 방송 출연을 매개해주는 브로커의 경우 부정적으로 꼭 볼 대상은 아니다. 전문직 종사자 출연자가 필요한 방송국과 방송 출연을 원하는 전문직 종사자를 매개해주는 것이 불법적인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송 출연에 적합하지 않은 이들까지 과대 포장해 방송에 출연하도록 주선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한 종합편성채널 제작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실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의 경우 해당 직종 면허만 갖추고 있다면 제작진이 그 이상의 검증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때론 의사나 변호사 분들이 출연해 과장된 홍보성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편집 과정에서 잡아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해당 직종 면허가 불분명한 분들이에요. 얼마 전에는 후배 PD가 지방 대도시에서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분을 프로그램에 출연시켰어요. 그 사업가의 인터뷰도 매스컴에 여럿 소개돼 있어 믿었죠. 그런데 한 번 출연시킨 뒤 항의가 빗발쳤어요. 알고 보니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뒷말이 무성한 데다 당시 부도 위기를 겪고 있을 만큼 경영 상태도 좋지 않았죠. 위기 타개를 위해 관련 브로커에게 큰돈을 주고 방송에 출연한 거였어요. 매스컴에 실린 그분 인터뷰 기사도 다 그런 식으로 준비된 거였고요. 그렇게 브로커가 관련 정보를 부풀려서 접근해오면 방송국 제작진도 이를 다 걸러내기가 참 어려워요.”
실제로 방송가에서 전문가 출연진 관련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제작진이 상당수이며 심지어 징계를 받은 사례도 있다고 한다. 겉으로는 성공한 전문가지만 그 속에는 엄청난 채무 관계와 복잡한 사생활이 숨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방송국 제작진이 이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다. 한 방송관계자의 설명이다.
“수년 전 한 의사 출연자가 방송가에서 화제가 됐었어요. 분명 빼어난 실력으로 유명한, 다시 말해 성공한 의사였어요. 그런데 병원이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데 반해 채무 관계가 매우 복잡했어요. 도박에 빠져서 지내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정확한 이유까진 알 수 없죠. 게다가 여자관계도 복잡했어요. 결국은 그 의사를 간통으로 고소한 여성이 방송국에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해서 결국 그는 방송에서 하차했죠. 담당 PD가 그 일로 큰 곤욕을 치렀다고 들었어요.”
최근 1~2년 사이 전문가 출연자 시장은 엄청나게 커졌다. 유명 연예인의 수십 분의 일에 불과한 그들의 출연료만 놓고 보면 그리 큰 시장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얻는 홍보 효과와 여기서 창출되는 수익을 놓고 보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그러기에 브로커들까지 가세하며 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는 셈이다. 다음 호에선 전문가 출연자 브로커들의 세계를 보다 내밀하게 다가가 보도록 한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