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서울고속터미널 호남선 승차장에서 출발 대기 중인 금호고속 버스들. 박은숙 기자
지난 12일 금호고속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IBK투자증권-케이스톤 사모펀드(PEF)는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김성산 금호고속 대표를 해임했다. 대신 김대진·박봉섭 공동대표이사를 선임했다. 문제는 해임된 김 전 대표가 금호그룹에서 임명한 인물이라는 점. 이는 금호고속 최대주주인 IBK-케이스톤이 금호그룹과 인연을 끊겠다는 의사 표명으로 해석됐다.
IBK-케이스톤 측에 따르면 김 전 대표가 해임된 까닭은 금호고속 대표이사 사장 신분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김 전 대표는 △금호고속 이사회에서 금호리조트 유상증자 참여를 결의하려 했으나 반대표를 행사해 재산상 손해를 입혔으며 △금호고속 매각을 방해하는 사내 ‘구사회’ 활동을 방치한 데다 △100% 주주인 PEF에 요청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한마디로 대표이사 사장이 직접 매각 작업을 방해하고 해사행위를 했다는 얘기다.
IBK-케이스톤은 나아가 “금호그룹 측이 금호고속 매각 방해 행위를 계속한다면 민·형사상 법적 조치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금호그룹 관계자는 “금호고속을 사모펀드에 매각할 당시 계약 조건 중 대표이사 임면권은 우리(금호그룹)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 “우리 동의도 없이 대표를 해임하고 새 대표를 선임하는 것은 명백히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IBK-케이스톤 관계자는 “일반적 상황이라면 금호의 주장이 맞겠지만 이번 사안은 기업가치를 훼손시킨 특별한, 100% 주주로서 충분히 해임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맞섰다.
금호고속을 사이에 둔 금호그룹과 IBK-케이스톤의 갈등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낮은 가격에 사려는 쪽과 반대로 최대한 비싸게 팔려는 쪽의 의견 조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율은커녕 서로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을 보였다.
IBK-케이스톤이 매각 작업을 본격화한 지난 8월, 금호그룹은 금호고속을 탐내는 기업과 사모펀드를 향해 공공연하게 “별 실익이 없다”며 인수전에 참여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 금호에 우선매수청구권이 있는 이상 다른 인수 의향자가 참여해봐야 “실사 비용, 자문료 등 비용만 발생할 뿐”이라며 쓸데없이 헛돈 쓰지 말고 그냥 금호가 인수하도록 놔두라는 얘기였다.
금호의 이 같은 행동에는 두 가지가 내포돼 있었다. 하나는 금호고속을 제삼자에게 절대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였고 다른 하나는 인수 가격 상승에 대한 경계였다. 문제는 후자에 있다. 매각자 측이 경쟁입찰을 통해 선정한 우선협상대상자가 높은 가격을 제시할 경우, 아무리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금호가 이를 감당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금호 측은 “광주신세계와 장기임대차계약을 통해 금호고속을 되찾아올 자금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금호고속 인수전에 경쟁이 붙어 금호 측이 생각한 최대 가격인 3000억 원을 넘는다면 인수가 힘들어질 수 있다.
매각자 측인 IBK-케이스톤의 생각은 정반대다. 재계 인사의 말을 빌리면 매각자 측은 “무조건 비싸게 파는 것을 장땡으로 생각하는” 사모펀드다. 어떤 식으로든 금호고속의 가치를 지금보다 더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금호 측의 행동이 기업가치 상승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기에 충분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금호리조트 유상증자 참여 무산이다. 금호리조트 지분은 당초 금호고속과 금호그룹 계열사들, 즉 금호터미널·아시아나항공 자회사들이 50 대 50으로 나눠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7월 금호리조트가 유상증자를 실시하면서 금호고속은 참여하지 않았고 금호그룹 계열사들은 참여해 지분이 51.20%(금호그룹 계열사) 대 48.80%(금호고속)로 갈렸다. 금호고속 이사회에서 김성산 전 대표가 반대해 만장일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탓이다. IBK투자증권 M&A(인수·합병)팀 관계자는 “지분구조 50 대 50과 51 대 49는 차원이 다르다”며 “김 전 대표로 인해 금호고속 가치가 훼손됐으며 해임 사유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금호고속 직원들로 구성된 ‘구사회’ 활동도 의심받고 있다. 금호고속 구사회 활동이 지난 8월 금호그룹이 제삼자들을 향해 명분도 실리도 없는 금호고속 인수전에 참여하지 말라고 한 것과 흡사하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그들은 진심으로 회사를 위해 순수하게 움직이는 것”이라며 “금호그룹이 조종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음모”라고 반박했다.
M&A 시장에서는 현재 금호고속의 가치를 5000억~6000억 원으로 보고 있다. 금호그룹이나 IBK-케이스톤이나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은 채 ‘적정가격’을 원한다고만 하고 있다. 하지만 양쪽에서 말하는 적정가격의 차이가 너무 커 보인다.
게다가 박삼구 회장은 금호산업도 챙겨야 할 처지다. 금호산업 채권단이 금호산업의 워크아웃 조기졸업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0%를 비롯해 금호터미널, 금호리조트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금호산업을 손에 넣으면 금호그룹 전체를 경영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지분 인수 자금이다. 현재 금호산업 채권단 지분 57%에 대한 인수가격은 5000억 원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호반건설이 금호산업 지분율을 확대하면서 주가가 폭등한 탓이다.
박삼구 회장 입장에서는 비록 금호고속이 모태기업이라도 해도 그룹을 경영할 수 있는 금호산업 경영권 확보가 더 급하다. 금호그룹 내에서 ‘선 금호산업, 후 금호고속’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금호산업이 더 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두 기업 모두 찾아와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없다”며 “자금 마련에 대해서는 지금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기 힘들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