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홈쇼핑 업계와 T커머스 사업자 간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서로가 동지에서 적으로 바뀌었다. 지난 8월 정부가 중소기업 제품 판매 활성화를 위해 제7홈쇼핑(공영 홈쇼핑)을 개설하기로 하자 홈쇼핑 업계가 들썩였다. 황금채널에 기존 홈쇼핑이 자리를 잡았는데 또 다른 홈쇼핑이 추가될 경우 송출수수료(채널사용료) 인상 등의 문제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 만든 홈앤쇼핑(중소기업 전용 홈쇼핑)이 이미 해당 역할을 하고 있어 역할이 중복되기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홈쇼핑 업계는 이미 지난 5월부터 기존 홈쇼핑사와 미래부, 중소기업청 등이 참여해 만들어진 중기지원협의회에서 T커머스 사업을 논의해왔던 점을 강조했다. 업계는 자신들이 승인받은 T커머스 사업을 수익성보다는 공익성으로 운영해 중기업체 제품 판매를 활성화 시키면 굳이 새로운 홈쇼핑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미래부는 이미 진행해오던 T커머스 사업과 제7홈쇼핑 신설을 둘 다 추진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업계에서 T커머스를 대안으로 내놨지만 최근 비홈쇼핑 사업자들이 T커머스 사업을 확장하면서 업계 간 갈등이 시작됐다. 2005년 국내에 도입된 T커머스는 당시 정부가 총 10개 업체에 사업을 승인했다. T커머스 사업권을 가진 업체는 CJ, GS, 현대, 롯데, NS 등 기존 5개 TV 홈쇼핑사와 KT 자회사인 KTH, SK브로드밴드, 태광 티브로드 계열의 아이디지털홈쇼핑, TV벼룩시장, 드림커머스 5개 업체다. 하지만 대다수 업체들은 T커머스가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사업권만 가진 채 운영하지 않았고 KTH와 아이디지털홈쇼핑 두 곳이 T커머스 방송을 운영해왔다.
홈쇼핑 업계와 T커머스 업계가 본격적으로 부딪히기 시작한 것은 올 초부터다. T커머스 사업을 활발히 하고 있는 KTH의 거래규모는 2013년부터 200억 원을 넘었고 올해 600억 원을 예상할 정도로 성공적이다. 홈쇼핑 업계 측에서는 이 같은 T커머스의 성공이 ‘홈쇼핑 따라하기’ 때문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T커머스는 프로그램 연동형과 독립형 두 가지 방식으로 분류된다. 연동형은 드라마 속 배우가 입고 있는 옷이나 상품 등을 따로 소개하는 부분을 만들어 시청자가 직접 선택해 상품을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독립형은 케이블TV나 위성방송, 인터넷TV(IPTV) 등에 채널을 개설해 방송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보낼 경우 겉보기에 기존 홈쇼핑 채널과 유사하다.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KTH가 2013년 6월께부터 홈쇼핑과 유사한 포맷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을 시작했다.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지 못하니 결국 20년간 쌓아온 홈쇼핑 영역을 가져가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T커머스 측은 겉보기에는 비슷할 수 있지만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다. KTH 관계자는 “T커머스는 동영상과 함께 지역별, 날씨별 등으로 뒤에 배경도 바뀌고 관련된 상품들이 옆에 전시된다. 기존 인터넷 쇼핑처럼 잘 팔리는 베스트 물품도 클릭할 수 있다. 쌍방향 선택이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T커머스의 사업성이 높아지자 플랫폼사업자들끼리도 서로 주요 채널에 T커머스 채널을 맞바꾸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플랫폼사업자인 KT와 SK브로드밴드, 태광은 모두 T커머스 사업권을 가지고 있다. 이 중 KT와 태광은 이미 T커머스 사업을 운영 중이고 SK브로드밴드도 조만간 T커머스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 KT스카이라이프와 SK브로드밴드는 채널 편성을 논의하고 있다.
플랫폼사업자이면서 T커머스 사업자이기도 한 SK브로드밴드는 직접사용채널을 운영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다른 플랫폼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 KT와 태광의 경우 계열사가 T커머스 사업권을 받았기에 자사 채널에서 운영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홈쇼핑 업계에서는 송출수수료 인상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다른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사업자는 T커머스 사업이 활성화 될수록 이득이다. 본인들의 T커머스를 맞바꿔 큰돈 들이지 않고 20번대 이하인 좋은 채널에서 운영할 수 있고, 대부분 이미 그 자리에 홈쇼핑 채널이 있기 때문에 더 높은 가격을 받아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며 “굳이 황금채널이 아니어도 10개의 T커머스가 홈쇼핑처럼 운영될 경우 잘 안 팔렸던 채널에도 들어갈 업체들이 생기게 돼 결국 이득이 된다”고 주장했다.
미래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양쪽 어느 편의 손을 들어주지는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미래부는 T커머스 업계에 ‘쇼호스트 금지’, ‘화면 크기 3분의 1로 축소’, ‘40번대 이후 채널 편성’ 등 홈쇼핑 업계와 구분될 만한 규제를 구두로 주문했다. 미래부는 통합방송법(가칭)을 통해 데이터방송인 T커머스의 실시간 방송을 규제하는 방안을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1월 27일 미래부가 다음날 예정된 통합방송법과 관련한 공청회를 앞두고 데이터방송을 비실시간으로 구분하는 규정을 없애기로 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그동안 T커머스 업계는 미래부의 제재에 대해 “정부가 추진해온 사업을 홈쇼핑 업계의 논리에 따라 제약하고 있다”며 반발해왔다.
앞서의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미래부도 T커머스를 규제할 방안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에게 답안을 가져오라고 할 정도다. 본인들이 추진한 T커머스에 규제를 한다는 여론을 듣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처럼 미래부가 홈쇼핑 업계와 T커머스 업계 중간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동안 새로 태어날 공영홈쇼핑인 제7홈쇼핑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미 홈쇼핑 관련 업계가 포화상태인 상황에서 제7홈쇼핑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홈쇼핑협회 관계자는 “T커머스가 홈쇼핑과 구분되지 않는다면 결국 16개의 홈쇼핑이 생겨나는 셈이다. 여기에 가뜩이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제7홈쇼핑은 더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홈쇼핑 업계 논란에 미래부 관계자는 “우리도 T커머스 문제에 대한 우려가 많다. 근본적으로 T커머스는 쌍방향성을 갖고 있어 (구매자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것인데 낮은 번호대에서 홈쇼핑과 경쟁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홈쇼핑과 차별화 돼야 한다고 본다. 논의 중이니 지켜봐 달라”고 주문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