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오른쪽 작은사진)의 뇌물수수 사건이 한상률 전 국세청장 ‘그림 로비’ 의혹과 전혀 무관치 않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법정 공방전에서 불똥이 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
검찰이 이번 사건을 안 씨의 개인비리로 판단하고 있는 만큼 향후 재판 과정도 공직자로서의 안 씨의 처신과 비리 의혹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안 씨 측은 안 씨의 개인비리가 아닌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몰고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안 씨 측은 이미 녹취록 공개 등을 통해 이번 사건이 권력형 비리 형태를 갖추고 있음을 폭로한 바 있다. 여기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X파일도 상당수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여권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안 씨 측이 확보한 X파일에는 이명박(MB) 대통령의 도곡동 땅과 대선자금 비파일 등 메가톤급 뇌관도 포함돼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
국세청 로비 사건과 관련한 갖가지 궁금증과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2라운드로 돌입한 ‘안원구 시한폭탄’이 과연 법정에서는 폭발할 수 있을까.
지난 11월 18일 새벽 안 씨가 검찰에 긴급체포되면서 시작된 ‘안원구 사건’은 12월 8일 검찰이 안 씨를 구속기소하면서 20일 만에 마무리됐다. 안 씨는 검찰에 체포된 뒤 기업들의 세무조사 편의를 봐 주고 부인이 운영하는 미술관을 통해 세무조사 대상 기업에 미술품을 사도록 강매한 혐의로 11월 21일 전격 구속됐다.
검찰에 따르면 안 씨는 2006∼2008년 세무조사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C 건설 등 5개 업체에 부인 홍혜경 씨가 운영하는 가인갤러리와 조형물 설치 계약을 맺거나 미술품을 고가에 구입하도록 해 36억여 원의 매출을 올려 11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안 씨는 또 2006년 8월 대구지방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던 대구 S 플라자 대표 서 아무개 씨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받은 뒤 평소 알고 지내던 세무사 A 씨를 소개시켜주고 과세전 적부심사를 청구하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같은 해 12월 3억 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안 씨가 2007년 2월 과세전 적부심사가 인용된 후 A 씨에게 사례비 명목으로 1억 원을 받은 혐의도 추가했다.
하지만 검찰은 미술품 강매 등으로 발생한 범죄수익이 안 씨에게 귀속된 것으로 판단해 부인 홍 씨는 공범으로 처벌하지 않았다. 다만 검찰은 홍 씨가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매출액을 허위 신고해 세금을 일부 탈루한 사실을 확인하고 국세청 통보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검찰이 안 씨 사건을 개인비리로 판단하고 사건을 확대하지 않고 서둘러 종결한 듯한 모양새다. 하지만 검찰의 기소로 이번 사건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 씨 사건과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 로비’ 의혹 사건이 전혀 무관치 않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고, 국세청과 현 여권 인사들이 연루됐을 것이란 의혹들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 씨가 구속되자 부인 홍 씨는 국세청과 정부 등에서 남편의 퇴직을 종용했다며 관련 녹취록을 공개하는가 하면 한 전 청장이 정권교체 직전에 유임을 위해 여권 실세에게 10억 원을 줘야 한다며 안 씨에게 3억 원을 요구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또 안 씨는 민주당 측에 전달한 녹취록 등을 통해 “2007년 후반기에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포스코건설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 과정에서 서울 도곡동 땅이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소유라는 사실이 적시된 문서를 발견했다”고 밝혀 파문을 확산시키기도 했다. 안 씨는 구속 후 서울구치소를 찾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당시 세무조사에서 담당자가 전표 형태의 문서를 들고 내 방을 찾아왔고 그때 문서 중간에 ‘소유자 이명박’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봤다. 이 사실은 당시 조사 라인에 있던 모든 사람이 안다”고 주장했다.
안 씨 부부의 이러한 각종 의혹 제기에 대해 국세청은 ‘사실 무근’이란 입장을 취하고 있고, 사정당국도 더 이상의 수사 확대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백용호 국세청장은 도곡동 땅과 관련한 문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이귀남 법무장관도 11월 30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이미 검찰이 수사도 하고 특검까지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 소유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수사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일갈했다. 다만 이 장관은 12월 7일 국회 예결특위에 출석해 인사청탁 로비의혹 등이 제기된 한 전 청장의 소환 여부와 관련해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소환할 예정”이라고 밝혀 소환 가능성은 열어둔 상태다.
국세청의 ‘모르쇠’ 입장과 사정당국의 소극적인 수사 자세에도 불구하고 안 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안 씨가 ‘접견금지’ 조치를 당하는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지만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형사 재판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동시에 권력형 비리 실체를 폭로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안 씨 측이 재판 과정에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X파일을 공개하거나 메가톤급 폭탄 증언으로 대반격을 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안 씨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청와대에 입성한 뒤 행정고시 선배 기수들을 제치고 승승장구했고, 6년간의 청와대 근무를 마치고 국세청에 복귀한 뒤에도 요직을 두루 거친 핵심실세로 통했다. 이런 점에서 안 씨와 측근들이 제기한 의혹들에 대해 정치권은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비공개 자료 등 X파일을 폭로할 가능성에도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주변에선 안 씨가 재판과정에서 지난 대선자금과 관련한 핵폭탄을 투하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야권 일각에선 노드시스템 사기사건과 여권 실세인 A 씨가 직접 연루돼 있는 정황 자료를 안 씨가 확보하고 있어 재판 과정에서 이를 폭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A 씨가 노드시스템 이금석 대표로부터 거액의 대선자금을 제공받고, 그 대가로 당시 서울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이었던 안 씨를 통해 한상률 국세청장에게 세무조사 등 감시 시스템을 작동하지 말 것을 청탁했다는 게 소문의 골자다.
야권은 이 대표가 지난 대선 당시 MB의 선거운동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 명함을 가지고 다니며 자신의 위상을 과시해 왔다는 점과 여권 핵심 인사들과 가깝게 지내왔다는 점에서 이 대표가 횡령한 2000억 대의 돈 중 수십억 대의 자금이 MB캠프로 유입됐을 것이란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안 씨가 재판 과정에서 노드시스템 이 대표와 A 씨의 관계, 그리고 A 씨가 자신을 통해 한 전 청장에게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한 의혹을 폭로할 경우 정치권은 또 다시 격랑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줄곧 억울함을 호소했던 안 씨 측은 공개재판 과정에서 자신들이 제기한 각종 의혹들과 관련해 보다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는 동시에 여차하면 메가톤급 X파일 공개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안 씨 사건이 법정 공방전을 통해 대형 권력형 비리 시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의혹만 증폭시킨 채 2라운드로 돌입한 ‘안원구 뇌관’이 치열한 법정 공방전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재폭발할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