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와 벤처타운 사이 정촉기금이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오른쪽은 ‘벤처의 산실’ 테헤란로 일대. | ||
이와 관련해 요즘 여의도 정가에선 전·현직 국회의원과 현정부 최고위급 인사의 전 보좌관 등 10여 명이 정촉기금 사건에 연루된 인사들로 조심스럽게 거명되고 있다. 특히 현 정부 최고위급 인사의 전 보좌관들은 현재 검찰이 정촉기금 사건과 관련해 수사중인 한 벤처기업의 사외이사를 맡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더군다나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40여 명을 출국 금지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촉기금 비리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야당인 한나라당은 10월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장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의혹들을 낱낱이 밝히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지난 16대 국회는 감사원에 ‘정보화촉진기금 관리운용실태에 대한 감사’를 청구했다. 그리고 지난 7월 말 그 감사 결과가 나왔다. 정보통신부 직원 7명과 정통부 산하 연구기관 직원 24명 등 33명이 정촉기금 지원 대가로 업체들로부터 주식을 부당 취득한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13명을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의 정촉기금 수사가 진행되면서 6일 현재 모두 19명이 구속 기소 됐다.
그런데 정가의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검찰은 정촉기금 사건과 관련해 모두 40여 명을 출국금지 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월 말 감사원이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검찰에 고발한 13명보다도 많은 숫자다. 또한 현재까지 구속 기소된 19명보다도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다. 이는 다시 말해 검찰이 아직 구속하지 않은 출국 금지대상자 20여 명에 대한 수사도 병행하고 있거나, 앞으로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 수사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앞으로 검찰의 수사 대상자는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검찰이 현재까지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신청한 40여 명은 누구일까. 검찰은 이와 관련해 “정통부와 산하 연구기관, 벤처기업 관계자 등이 포함돼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즉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등은 이번 출국금지 대상자 명단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검찰은 통상적으로 출국금지 대상자에 대해선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한다. 따라서 정·관계 인사들이 이번 출국 금지 명단에 실제로 포함됐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일까. 정치권의 촉각이 상당히 예민해져 있다. 현재 이 사건과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정·관계 인사는 10여 명에 이른다.
특히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의 A의원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A의원은 한때 정통부 업무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 이에 한나라당은 A의원이 이번 정촉기금 사건에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A의원은 정통부의 전직 최고위급 간부였던 김아무개씨와 명문대 선후배 관계로 매우 절친한 사이다. 그런데 김씨도 이번 정촉기금 비리 운용 사건과 관련해 의혹의 눈길을 받고 있는 당사자다. 정통부 안팎에서는 김씨가 정통부 재직시절 정촉기금 집행에 상당부분 개입해 이권을 챙겼다는 말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소문의 당사자인 김씨와 A의원은 정촉기금 운용과 관련해서 업무상 관련을 맺었던 관계였다. 따라서 A의원을 향한 의혹의 눈길도 쉽게 가시질 않고 있다. 심지어 최근 몇 년 동안 정통부와 벤처업계에선 A의원의 정촉기금 운용 비리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정촉기금 비리 사건의 내막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A의원이 정촉기금 운용에 깊이 개입했다는 제보를 여러 건 받아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일단 검찰의 수사 과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만일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A의원에 대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후에라도 그동안 축적된 제보 내용을 공개할 수 있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또한 현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인 B씨의 보좌관 출신 2명은 현재 검찰에서 수사중인 U사의 사외이사를 맡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 정부의 고위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C씨와 개인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D씨가 바로 장본인들이다. 상업등기부에 따르면, C씨는 지난 98년 3월 U사의 사외이사에 취임해서 2002년 10월 해임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U사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을 당시 C씨는 국회의원이었던 B씨의 보좌관이었다. 그는 지난 96년 5월부터 99년 4월까지 B씨의 보좌관으로 근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98년 3월부터 99년 4월까지 1년 동안은 국회의원 보좌관과 U사의 사외이사직을 겸직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D씨도 96년 2월에 U사의 사외이사로 취임했다가 2001년 3월 해임됐다. 그도 또한 B씨의 보좌관이었는데, 재직기간은 96년 6월부터 2002년 7월까지였다. 따라서 D씨는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던 기간 내내 국회의원 보좌관직도 겸임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처럼 U사의 사외이사로 국회의원 보좌관이 버티고 있어서였을까. 벤처업계에선 “정치인 서너 명이 U사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는 전언.
현재 고위공무원으로 재직중인 C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U사의 장아무개 사장(현재 미국 도피)과는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선후배관계”라며 “장 사장이 자기 회사의 이사로 형식적으로 이름만 등록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당시 나와 D씨는 각각 5백만원씩을 투자해서 주식 1천 주를 받았을 뿐 별도의 급여는 받지 않았다”며 “난 U사가 정촉기금을 한창 지원 받던 99년부터 2001년 초까지 미국으로 유학을 가 있었기 때문에 ‘정촉기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D씨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C씨와 마찬가지로 “U사가 정촉기금을 지원 받는 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내가 투자했던 5백만원의 대가로 주식 1천 주를 받아 이미 오래 전에 팔았다”고 해명했다.
C·D씨 두 사람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문제의 U사 장 사장이 이름만 빌려달라고 해서 사외이사로 등재됐다는 것. 특히 정촉기금 지원 과정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해명으로만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남아있다. 바로 이들이 국회의원으로 보좌했던 B씨는 당시 정통부를 감사하는 국회 과기정위 소속이었다. 따라서 C·D씨가 무려 10조원에 달하는 정통부의 정촉기금 운용에 대해 제법 소상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자신들이 사외이사로 몸담고 있던 U사의 장 사장이 당시 정촉기금을 지원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금품로비를 벌였는데도 “정촉기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는 해명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현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이자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B씨가 정통부 정촉기금 운용과정에 개입했느냐는 점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와 함께 전직 국정원 직원 E씨도 정촉기금 비리 사건과 연루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촉기금이 한창 지원되던 90년대 말과 2000년 초에 E씨는 국정원 직원으로 정통부에 파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가에선 E씨가 정촉기금 지원과 관련해서 정통부와 벤처기업을 연결시켜준 브로커 역할을 한 인물로 지목하고 있다. 특히 그는 앞서 언급했던 A의원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전직 정통부 최고위급 간부인 김씨와는 같은 고향 선후배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도 국민의 정부 시절 핵심실세였던 인사와 전·현직 의원 4∼5명이 정촉기금 지원 과정에 연루된 인사로 지목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