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철씨가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오른쪽 아래)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또다시 구속됐다. 70억원에 대한 이자라는 주장과 정치자금이라는 엇갈린 진술 가운데 정치권은 또 한번 ‘게이트’에 휘말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오마이뉴스 | ||
우선 조동만씨가 현철씨에게 선뜻 20억원이란 거금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철씨가 지난 94∼95년과 달리 현직 대통령의 차남도 아니고 국회의원 등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현철씨는 조동만씨로부터 20억원을 종전에 맡겼던 70억원에 대한 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씨에게 지난 94∼95년에 걸쳐 맡긴 70억원에 대해 이자를 받지 못한 97∼99년 사이 30개월 분의 이자로 20억원을 뒤늦게 받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현철씨는 94년부터 조씨에게 맡긴 70억원에 대한 이자 명목으로 월 5천만원을 구속되기 전까지 받아왔다. 그러다가 현철씨는 97년 5월 구속된 이후 99년 8월 조씨로부터 70억원을 돌려받아 국가에 헌납하기까지의 기간 동안은 이자를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현철씨가 97년 5월부터 99년 8월까지 받지 못한 이자를 월 1%로 계산해 20억원을 받았다는 현철씨측의 주장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검찰은 현철씨가 조동만씨에게 맡겨 둔 70억원에 대한 권리를 국가와 사회에 헌납할 것을 약정한다는 내용으로 97년 6월3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과 연명으로 작성, 검찰에 제출한 ‘재산권 양도각서’를 들어 현철씨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즉 이 각서를 작성한 시점부터 70억원에 대한 소유권은 현철씨로부터 국가로 양도된 것으로 봐야하며 동시에 현철씨는 70억원의 원금 및 이자에 대한 권리를 상실한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철씨측의 주장대로 20억원이 이자라면 처음부터 20억원을 요구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김기섭씨가 조동만씨에게 처음에는 15억원을 요구했다가 나중에 5억원을 추가로 요구한 것만 봐도 이자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검찰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렇다면 왜 조동만씨는 김기섭씨의 요구에 20억원이라는 거액을 선뜻 건네줬을까. 조동만씨가 현철씨에게 20억원을 선뜻 건넸을 만큼 자금의 여력이 충분한가.
만약 조동만씨가 현철씨측이 과거에 맡긴 70억원으로 재테크에 성공해 거액을 챙겼다면 의문은 풀린다. 기업의 자금수요가 많았던 94∼95년 당시 조동만씨가 이 돈을 제대로 운용했다면 상당한 거액을 챙겼을 수 있고, 이 같은 상황에서라면 김기섭씨가 늦게나마 이자 명목으로 돈을 요구할 때 쉽게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검찰은 그러나 이 같은 가능성을 일축한다.
지난 97년 당시 현철씨 사건을 담당했던 한 검찰 관계자는 “조동만씨가 현철씨 돈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반강제적으로 떠 안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동만씨가 현철씨로부터 받은 자금을 투자하지 않고 고스란히 갖고 있다가 나중에 99년도 그대로 돌려준 것이 이를 반증한다는 것이다. 즉 조동만씨 입장에서는 현철씨가 맡긴 자금 70억원을 함부로 재테크하지도 못하고 보관만하고 있다가 매월 5천만원의 이자를 현철씨측에 지급해왔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조동만씨는 오너의 아들이고, 김기섭씨는 고용인에 불과하다. 조동만씨가 김기섭씨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이유는 많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만약 조동만씨와 김기섭씨와의 사이가 20억원을 선뜻 내줄 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이라면 조동만씨가 현철씨에게 준 20억원은 정치자금이 아니고 과거에 맡긴 70억원에 대한 이자였다면서 김기섭씨의 주장에 맞는 진술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동만씨는 검찰에서 “김기섭씨가 총선도 있고 하니 현철씨를 크게 한 번 도와주자며 자금지원을 요청했다”고 진술했다. 조동만씨 입장에서는 현철씨측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점을 감안한 진술이다.
조동만씨가 현철씨에게 20억원을 선뜻 줄 만큼 자금의 여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찰은 회의적이다.
검찰은 조동만씨가 한솔엠닷컴 주식매매 차익으로 얻은 1천9백억원 가운데 상당수는 회사자금 등으로 쓰였고, 일부가 의심스러워 자금추적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 의심스런 자금이 1천9백억원의 10%인 1백90억원도 채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철씨가 지난 92년 조동만씨에게 맡긴 50억원과 김기섭씨가 맡긴 20억원 등 70억원 외에 밝혀지지 않은 추가자금을 이번에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재 현철씨의 영향력을 감안하더라도 조동만씨가 거액을 내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대한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만약 현철씨가 조동만씨에게 돈을 추가로 맡겼다면 지난 92년 대선 잔금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검찰은 과거 현철씨 관련 계좌를 샅샅이 수사했지만 추가 자금은 발견하지 못했다.
검찰은 조동만씨가 현철씨 외에 여권 실세를 포함한 정치인 4∼5명에게 실제로 1억∼5억원씩을 전달했는지, 전달했다면 자금의 성격은 어떤 것인지도 쉽게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다.
조동만씨는 지난 2001년 한솔아이글로브 등 4개의 회사로 구성된 정보통신(IT) 소그룹으로 계열분리하여 분가했으나 조씨는 한솔엠닷컴(한솔PCS 018)의 주식을 KT에 상당부분 매각했고, 회선임대사업을 하고 있는 한솔아이글로브는 현재 법정관리중이다. 즉 조동만씨의 현재 위치로 볼 때도 현 여권 실세 등을 상대로 로비를 할 만한 특별한 정황은 파악되지 않는다.
비록 조동만씨가 한솔엠닷컴이 DJ 정부 시절 외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편의를 봐달라는 명목으로 구 여권 실세에게 로비를 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현 여권 실세에 대한 로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조동만씨가 현철씨에게 20억원을 선뜻 건넨 이유는 무엇인지, 조동만씨가 그럴만한 자금력은 있는지 또한 조동만씨가 여권 실세에게 자금을 뿌렸다면 어떤 이유인지에 대한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