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5일 기획재정부는 오는 1월 30일부터 시행 예정인 세법 개정안 시행령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가계 소득을 늘리고 기업의 투자활동을 촉진시키기 위한 것으로서 기업소득환류세·근로소득증대세·배당소득증대세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재계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항목은 기업 사내유보금의 10%를 세금으로 매기겠다는 ‘기업소득환류세’다. 기업들이 이를 피하거나 줄이기 위해서는 연말 배당금을 확 늘리거나 임금을 인상시켜줘야 한다. 또 그동안 얼마나 투자했느냐도 관건이다.
이와 관련, 현대차의 한전 부지 매입 건이 기재부에서 밝힌 ‘업무용’ 건물·토지에 대한 ‘투자’로 인정받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주목받고 있다. 만약 투자로 인정받을 경우 현대차는 이 부분에서만 65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환류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현대차가 한전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쏟아 부은 10조 5500억 원이 투자냐 아니냐에 대한 결정은 오는 2월 내려질 전망이다.
기재부 주변과 재계에서는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가 함께 입찰한 10조 5500억 원이 투자로 인정받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의 한전 부지 매입이 고가 매입에 시달리고 있지만 사실상 정몽구 회장이 정부에 기부한 것”이라며 “정부도 이에 화답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0조 5500억 원이 투자로 인정받아 650억 원가량의 세금을 면제받는다면 현대차 주가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 부지 매입 이후 현대차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실적 부진과 코스피지수 하락도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한전 부지 매입 이후 현대차 투자자들의 심리가 위축된 것이 더 큰 요인이다. 대규모 현금이 빠져나가는 것과 이에 따른 연구개발·설비 투자 위축이 염려됐다. 또 주주들에게 배당해야 할 돈을 부지 매입에 쏟아 부은 것에 대한 반발 심리도 컸다. 현대차 주식은 가뜩이나 ‘대표적인 저배당주’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터다.
‘부동산에 투자한 기업 주식은 사지 마라’라는 증권가 격언이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현대차 주가는 한전 부지 낙찰 소식 이후 15만 원대까지 추락했다. 현대차는 지난 11월 4491억 원어치 자사주 취득을 결정한 데 이어 배당 확대와 중간배당까지 고려한다고 밝히면서 주가 부양에 애썼다.
현대차는 지난 12월 24일 공시를 통해 “2014년(제47기) 결산배당 규모를 전년 대비 확대할 예정”이라며 “또한 2015년부터 중간배당 실시 등 주주 환원 정책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현대차 주가는 한전 부지 매입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10조 5500억 원은 너끈하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한라비스테온공조 인수전에 참여하지 못한 채 우려를 표명한 점, 제너럴일렉트릭(GE)이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지분 43%(2조 5000억 원)를 매각한다는데 이를 인수하지 못하고 다른 파트너를 물색하는 점 등이 한전 부지 고가 매입의 후유증으로 해석됐다. 부지 매입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 부어 정작 자금이 필요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풀이됐던 것이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부지 매입에 무리하지 않았다면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지분을 인수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일부에서는 벌써 현대차가 정부로부터 650억 원짜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는 2월 10조 5500억 원이 투자로 인정받는다면 현대차가 ‘한전 부지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