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우지직’ “이게 무슨 소리지?” “교통 사고 난 것 같은데.”
정적을 깨는 둔탁한 파열음에 모두가 동시에 사고 지점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중 한 부인이 일어나 도로변으로 뛰쳐 올라갔다. 조심스레 승용차 쪽으로 다가선 그녀는 차 내부를 살펴보다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차 안에는 피투성이의 30대 남자가 있었다. 물론 그는 숨이 끊어져 있었다.
10분쯤 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사고 지점에 도착했다. 으레 음주나 과속에 의한 교통사고이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현장 수습에 나선 한 형사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면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둔기에 맞아 함몰된 머리, 칼로 두세 차례 난도질당한 목 부위. 어디선가 살해당한 뒤 교통사고로 죽은 것처럼 위장된 사건이었다.
피살자는 올해 서른두 살의 주아무개씨. 광주 서부경찰서측은 곧바로 주씨의 부인인 고아무개씨(28)를 불러 남편 주변인물 수사에 들어갔다. 한두 시간 가량 조사를 진행하던 경찰은 계속 엇갈리는 진술을 하면서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죽은 남자의 부인을 수상히 여겼다. 그러던 차에 한 형사의 눈에 결정적인 단서가 들어왔다. 그녀가 경찰서에 데려온 둘째 아이의 옷에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던 것. 낌새를 챈 형사들의 집중 추궁이 이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사건이 터지고 7시간이 지난 10시쯤. 죽은 남자의 부인인 고씨는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야 만다. 그녀는 내연 관계의 남자, 그것도 다름 아닌 외삼촌과 모의해 남편을 살해하는 끔찍한 짓을 저질렀던 것이다. 경찰은 고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하고 잠복 경찰을 투입, 이날 밤 11시쯤 직접 주씨를 살해한 고씨의 외삼촌 박아무개씨(29)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남편과 맞바꾼 외삼촌과의 ‘금지된 사랑’. 과연 어떻게 시작됐을까? 한 살 차이인 고씨와 박씨는 흔히 볼 수 있는 ‘삼촌-조카’ 관계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늘 오빠, 동생하며 지내왔기 때문에 둘 사이에 혈육의 ‘격식’이 없어진 지는 오래였다.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가족이 아닌 ‘이성’으로 관계가 발전한 것은 지난 90년. 전남 진도에 살던 박씨가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목포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두 사람의 은밀한 만남의 기회가 늘어난 탓이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고씨는 외삼촌의 목포 자취방에 자주 놀러다녔고 한참 성에 눈을 뜰 나이였던 그들은 자연스레 스킨십을 즐기는 사이로 발전했다.
하지만 서너 번의 끈적한 교감을 나눈 뒤 고씨는 외삼촌을 한동안 멀리했다. 비록 성행위까지 이어지는 불상사는 없었지만 한 핏줄과 몸을 밀착시킨다는 게 자꾸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몇 년 뒤. 고등학교를 졸업한 고씨는 대구의 한 보험회사에 취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의 소개로 남편인 주씨를 만났고, 그녀는 주씨의 털털한 성격에 끌려 결국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외삼촌과의 옛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경찰 조사과정에서도 그녀는 동거를 시작하면서부터 한동안 떨어져 있던 외삼촌에게서 왠지 모르는 연민의 정을 느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고씨는 주씨의 친구에게 우연찮게 강간을 당하면서 고씨는 더욱 외삼촌을 떠올리게 된다. 천륜을 뒤바꾼 ‘근친상간’이 일어난 것은 지난 95년. 임신 3개월째였던 그녀가 군에서 제대한 외삼촌을 만나기 위해 목포로 찾아갔다가 ‘정’을 통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남모르게 쌓아왔던 그리움을 몸으로(?) 풀어버린 그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관계를 맺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인 삼촌과 조카 커플은 수시로 전화를 주고 받으면서 ‘사랑’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