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고령화 등 해결 위해 면허 매수 자격 낮추자 수요 급증…“더 오르면 팔자” 매도 시기 저울질도
택시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9700만 원이었던 서울지역 개인택시 면허 가격이 3월 들어 처음으로 1억 원을 돌파했다. 이후 꾸준히 올라 16일 기준 1억 2700만 원 수준까지 상승했다. 2022년 1월 795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2000만 원가량 오르는 데 약 2년이 걸렸지만 다시 2000만 원이 오르는 데는 두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서울은 그나마 다른 수도권 도시나 충청 지역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16일 기준 경기 수원‧고양지역 개인택시 번호판 가격은 1억 5000만 원, 안산‧의정부 1억 6500만 원, 김포‧하남 1억 9000만 원 수준을 기록했다.
이미 2억 원을 넘어선 곳도 있다. 경기 양주‧이천‧화성과 충북 진천은 2억 원, 세종 2억 2000만 원, 충남 천안 2억 2500만 원을 기록했다. 서울에 비해선 상승 폭이 적지만 2~3년 전과 비교해 20% 이상 높은 상승률이다.
개인택시 면허 가격이 뛴 것은 그만큼 늘어난 매수 수요를 반영한다. 2021년 정부가 택시기사 고령화를 해결하겠다며 면허 양수 자격 기준을 낮추는 정책을 꺼낸 것이 직접 영향을 줬다. 당시 정부는 면허 양수 자격을 ‘법인택시 5년 이상 무사고 운전’에서 ‘5년 이상 무사고 운전자’로 완화해 법인택시 운전 경력이 없는 사람도 개인택시 운전에 나설 수 있게 했다.
개인택시 컨설팅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법인택시 운행 경력이 있어야 살 수 있었던 개인택시 면허를 요즘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몰려와 사들이고 있다”며 “양수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웃돈을 붙여서라도 거래하려는 사람들이 생겼고, 이로 인해 면허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당시 정책과 함께 도입된 ‘개인택시 양수교육’ 유효기간이 3년인 점도 최근 매수 수요를 끌어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당시 총 40시간(체험형 교육 30시간 포함)의 교통안전교육을 받으면 사업용 운전경력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를 내놨다. 이 교육수료증 유효기간인 ‘3년’ 만기가 다가오자 부랴부랴 면허 양수에 나선 이들이 늘어 가격이 뛰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영업에 큰 타격을 입고 기사 대량 이탈 사태를 빚었던 개인택시 업계는 택시 부제(의무 휴무제) 해제, 요금인상 등 정책을 딛고 분위기가 살아난 상태다. 서울시는 기사 이탈로 심야택시 부족난이 극에 달하자 2021년 11월 택시 부제를 45년 만에 해제한 데 이어 2022년 12월에는 심야시간 할증률을 최대 40% 인상했다. 지난해 2월에는 3800원이던 택시 기본요금을 4800원으로 26% 인상했다.
기사들의 수익 증대는 면허값 상승으로 이어졌다. 서울의 한 60대 개인택시 기사는 “부제 해제 전에는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날이 있어 그만큼 수익이 줄었는데 지금은 벌이가 확실히 달라졌다”며 “망할 일도 없고, 내가 일하는 만큼 수익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적자라는 게 없다”고 말했다.
신도시를 품은 경기지역 도시나 세종시 등은 인구 증가 요인이 더해진다. 택시 총량이 묶여 있는 반면 승객 수요 급증으로 택시가 부족해지면서 면허 가격이 오르고 있다. 옥정‧회천지구가 있는 경기 양주시, 동탄신도시가 있는 화성시 등이 대표적이다. 한 택시기사는 “세종시나 경기도권 신도시는 인구가 늘면서 택시 수가 많이 부족해 (개인택시) 넘버 값이 올랐다”며 “조금만 지역을 벗어나면 시외요금 할증이 붙는 지역도 상대적으로 넘버 값이 비싼 편”이라고 말했다.
개인택시 면허 값은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일부 고령의 택시기사들은 양도 시기를 저울질하는 모습도 보인다. 운행 영업에서 은퇴해 실제 운행은 안 하고 있지만 면허를 즉시 팔지 않고 미루는 것이다. 한 70대 택시기사는 “개인택시 기사에겐 넘버 값이 퇴직금 같은 것”이라며 “면허 가격이 더 오를 것을 기대하고 안 팔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인택시 번호판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를 경우 진입장벽이 지나치게 높아질 것을 우려한다. 생계 대책으로 면허를 사려다 높은 가격 장벽에 부딪혀 포기하는 취약·서민계층이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인택시 기사들이 개인택시로 넘어가는 고리가 좁아지는 문제도 우려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개인택시 문턱이 높아져 법인택시 운전을 하다 개인택시로 넘어가려던 사람들이 더 진입하기 어렵게 성역이 생긴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정된 면허로 고정화된 택시영업시장을 더 유연하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타다'와 같은 대체 영업수단을 늘려 면허택시의 독점력을 적절히 낮춰야 한다는 취지다. 김 교수는 “택시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춰야 시장이 활성화되고 소비자에게 좋은 일”이라며 “다양한 형태 모빌리티(수송) 모델이 나와 시장에서 싸우면서 택시 영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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