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규제 기요틴’ 민관합동회의. 연합뉴스
그동안 SK 두산 CJ 등 주요 그룹은 신규 사업을 위해 증손회사를 세우거나 인수했다가 이 규정으로 인해 매각하거나 과징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 증손회사 지분요건 완화로 지주사들의 새로운 투자기업 설립, 인수뿐만 아니라 지주사 전환을 위해 준비 중인 기업들도 수혜를 볼 것으로 보인다.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증손회사의 100% 지분을 보유하기 위해 확보해야하는 자금이 줄어들어 지배구조 전환이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율 규제로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못하거나 피해를 봤던 기업들의 리스크가 해소될 것”이라며 “증손회사 매각 문제로 오랜 시간 골머리를 썩던 기업들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SK그룹은 지난해 7월 알짜 계열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를 해외 사모펀드에 매각해야 했다. 로엔은 그룹의 지주회사인 SK㈜의 증손회사다. ‘SK㈜-SK텔레콤-SK플래닛-로엔’의 출자 구조다. 문제는 현행법에 따라 손자회사인 SK플래닛이 증손회사인 로엔의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는 규정에서 비롯됐다. SK플래닛은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울며 겨자 먹기로 보유 지분을 매각한 것이다.
당초 SK그룹은 지난 2007년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정부가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을 제어하고, 한 계열사의 위기가 다른 계열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순환출자 구조에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독려해온 데 부응한 것이다. 그런데도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들이 뜻하지 않은 규제에 발목을 잡히면서, 재계에선 ‘지주회사는 저주 회사’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돌았다.
SK플래닛이 지분 64.5%를 보유하고 있는 증손회사 SK커뮤니케이션즈도 지분율 규제로 인해 매각해야하는 상황에 놓였으나 이번 조치로 과징금 부과대상에서 벗어나게 됐다. SK는 임시방편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2015년 9월까지 지분 처리를 유예받은 바 있다.
두산그룹도 수혜를 받게 됐다. 두산은 계열사인 두산건설의 증손회사 네오트랜스 지분율이 42%에 불과해 매각해야할 처지였다. 공정위로부터 처리시한을 유예 받았지만, 주주들의 반대로 매각 작업을 진행하지 못해왔다. 두산그룹이 이 규제 때문에 지난해 공정위로부터 부과받은 과징금만 56억 원에 달한다.
CJ그룹은 2011년 지주사 CJ㈜의 손자회사인 넷마블게임즈가 증손회사 4곳의 지분 100%를 보유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4억 6200만 원의 과징금 제재를 받았다. 또 해당 규제로 인해 대한통운 자회사 11곳에 대해 처분을 고민했지만 이제는 부담을 덜게 됐다.
사실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 등 대표적인 순환출자 구조의 기업들이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은 이유는 표면적으론 지분 정리 비용이 막대하다는 점이 꼽히지만, 실제론 지주회사의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 규제 때문이라는 게 재계의 대체적 분석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삼성그룹에서 지난 5월 삼성증권이 삼성선물을 100% 자회사로 통합하도록 한 것은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경우 삼성선물이 증손회사가 될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라며 “지주회사의 지분율 규제는 지배구조 개편에서 가장 부담스런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주회사 형태의 기업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대기업들은 앞으로 적은 자본으로 신규 회사 설립에 나설 수 있게 되면서 투자 확대에 나설 수 있을 전망이다. 반면 앞으로 대기업들이 적은 자본으로 신규 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되면서 문어발식 사업 확장 행태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의당은 29일 정책논평을 통해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재벌의 경제력 집중문제가 심화될 우려는 물론 특정 대기업에 대한 특혜의 소지마저 있다. 재벌의 소유구조와 순환출자 고리를 단순하게 하기위한 지주회사제도 도입의 취지마저 형해화(形骸化·부실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번 규제완화에는 경제자유구역 개발계획의 변경이 실시계획 변경을 수반하는 경우에 두 계획을 통합 심의할 수 있도록 하고, 준공업지구의 개발계획 변경 시에도 국토계획법상 지구단위계획 변경 없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간소화했다.
이에 따라 울산공장 시설 효율화 작업을 추진하는 에쓰오일, 청주에 태양광 모듈공장을 신설하는 한화솔라원 등 노후 공장을 재건축하거나 신규 공장을 설립하는 기업들의 수혜가 예상된다.
또 스마트카 연구 활성화를 위해 시험운행에 한해 자율조향장치나 자율명령조향기능 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 개정도 추진된다. 이를 통해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업계는 전기차와 스마트카 등 미래자동차 개발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