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도피중이던 지난해 12월 긴급 체포됐지만 혐의를 완강히 부인해 6개월 동안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아왔다. 그 사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던 시아버지 윤아무개씨(75)는 수술이 늦어지는 바람에 병원에서 “퇴원하라”는 사실상의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인 것으로 밝혀졌다.
시어머니 이아무개씨(69)가 며느리 김씨를 고소한 것은 지난해 11월. 6개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김씨를 구속하게 된 경찰은 “시아버지가 죽어가는 데도 계속해서 거짓 진술을 하는 김씨의 태도가 괘씸해 혐의를 꼭 밝혀내야겠다는 심정으로 매달려 왔다”고 토로했다. 이씨가 18년 동안 고부 인연을 맺어온 며느리를 고소한 사연은 이렇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이씨가 평생 일궈 온 농지와 가축을 처분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95년경. 남편의 교통사고로 혼자서 농사일을 도맡아 왔던 이씨는 지칠 대로 지쳐 남은 여생을 편히 살자는 마음으로 논과 밭, 가축 등을 팔아 노후대책금 6천만원을 마련했다. 평생 큰 돈을 만져보지 못해 겁이 났던 이씨는 이 중 5천만원을 큰 아들에게 맡겨왔다.
그러던 중 이씨의 넷째 아들이자 피의자 김씨의 남편인 윤아무개씨(43)가 “아파트 매물이 싼 값에 나왔다”고 해 큰 아들과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5천만원을 주었다는 것.
몇 년 후 아파트 값은 몇 배로 올랐고 윤씨는 2003년 5월 이 아파트를 1억9천만원을 받고 되팔았다.
이후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이씨의 남편은 ‘위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다행히 의사로부터 “수술을 받고 회복기만 잘 견뎌내면 살 수 있다”란 소견을 들은 이씨는 아들 윤씨에게 “아버지 수술비용으로 써야 하니 맡긴 돈을 갖고 오라”고 했지만 며칠 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됐다. 며느리 김씨가 시어머니 명의의 통장과 도장을 갖고 집을 나갔다는 것.
수소문을 해도 김씨의 행방은 찾을 수 없고 돈이 없어 수술이 미뤄지자 결국 시어머니 이씨는 다급한 심정에 경찰서까지 찾게 된 것.
휴대폰을 이용한 실시간 위치 추적 등 경찰의 수배 작전 끝에 한 달 만에 긴급체포된 김씨. 그러나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해 48시간 만에 풀려났다. 그녀는 “당시 아파트를 매입할 때 쓴 6천만원은 시어머니가 준 것이 아니라 우리 부부가 운영하던 주점을 정리하고 남은 돈이었다”며 “남편과 내가 모은 돈을 쓴 것 뿐인데 무슨 죄가 되느냐”고 강력히 항의했다. 김씨는 시어머니 명의로 된 아파트 매매 계약서와 통장에 대해서도 “우리가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어 어머니 명의를 빌린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남편 윤씨는 “전세금 4천만원을 뺀 1억5천만원을 어머니 명의의 통장에 넣어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었다”며 “어머니가 준 자금으로 재테크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어머니 돈이다”고 상반된 진술을 했다.
이 때부터 장장 5개월 동안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한 남편 윤씨와 아내 김씨의 팽팽한 공방이 이어졌다. 수사 당시 웃지 못할 해프닝 하나는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한 수사가 오히려 아내 김씨에게 유리하게 돌아가 무혐의 처리 쪽으로 기울게 됐던 것.
거짓말 탐지기를 설치한 후 남편 윤씨에게 “아파트를 매입할 때 쓴 6천만원이 어머니 돈이 맞나”라고 묻자 윤씨는 “예”라고 대답했지만 탐지기 판독결과 거짓이라는 결과가 나왔던 것. 반면 “시어머니 돈이 아니라 우리 돈이었다”고 말한 아내 김씨의 대답에는 오히려 ‘진실’이라는 반응이 나타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 상황은 다시 반전됐다. 남편 윤씨의 평소 다소 말을 더듬고 긴장을 잘하는 등 소심한 성격임을 간파하고 거짓말탐지기가 잘못 작동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결국 아내 김씨의 통장 계좌추적 등 끈질긴 재수사 끝에 그녀는 자신의 죄를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 부부의 그동안 사업 내역과 최근 몇 년간의 거래 통장 내역을 샅샅이 훑은 결과, 단돈 몇 백만원 밖에 자산이 없는 이들 부부가 갑자기 6천만원이란 돈을 들여 아파트를 살 여력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이 같은 점을 집중 추궁하자 결국 김씨가 시어머니 돈을 빼돌렸음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계좌 추적 결과 드러난 며느리 김씨의 비윤리적 행각은 여기서 그치질 않았다. 빼돌린 1억5천만원 중 1억여원에 달하는 돈이 그녀의 내연남으로 추정되는 김씨와 그 주변인물들의 계좌로 이체된 것이 확인됐던 것.
더군다나 위암에 걸린 시아버지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도 아내 김씨는 지속적으로 김씨에게 계속 돈을 건넸던 것으로 밝혀져 수사관계자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아내 김씨는 “돈이 건네진 김씨는 우리 부부가 운영하는 주점의 단골 손님인데 사업이 어렵다기에 이자를 받을 생각으로 빌려줬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남편 윤씨는 내연남으로 추정되는 김씨에 대해 “평소 아내와 자주 어울리는 등 불륜의 관계가 틀림없다”고 주장했으나, 아내 김씨는 “불륜은 절대 아니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가 경찰과 검찰에서 팽팽한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는 동안 시아버지 윤씨는 결국 수술 시기를 놓쳐 시한부 판정을 받고 말았다.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윤씨는 “몸이 안 좋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며느리에 대한 언급은 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취재를 마친 기자에게 경찰 관계자가 전해준 수사 후일담은 또 한번 비정한 세태를 보여주는 듯했다.
“수사 상황이 점차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판단을 한 아내 김씨가 구속 직전 부쩍 남편 윤씨에게 접근하는 듯했다. 막상 김씨가 구속되자 그동안 아내의 비리와 불륜을 강력히 주장해오던 남편 윤씨의 태도가 바뀌는 듯한 양상이다. 면회도 자주 간다고 한다. 아내로 인해 정작 돈을 빼앗긴 자신의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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